얼굴은 아름답지 못하여도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이 있고
삶의 모습은 누추하여도
삶의 내용에 향기가 나는 사람이 있다
초가삼간에 살면서도
영생을 얻는 사람이 있고
고대광실의 웃음 속에서
영생을 잃어버리는 사람도 있다
하나님을 기뻐 찬양하는 삶이 있고
두려워 도망치는 삶도 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아루어집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늘 기도로 대화하면서 사는
그렇게 엄청난
아름다운 삶도 있다
2018년 5월 30일 수요일
Hug
교회에서의 Hug는
용서와 화해와 사랑의 의미로 사용된다.
1980년대 Tres Dias 영성훈련에서 중요 프로그램으로 보급되어 Tres Dias에 참가한 교회 중심으로 기독교적인 표현으로 사용되어왔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교회에서는 그 의미가 많이 퇴색하여 버리고
오히려 교회 밖에서 더 활발하게 사용되는 것을 보고 마음에 그늘이 지는 것을 느낀다.
不俱戴天之怨讐로 지내던
남과 북의 지도자들이 만나 Hug하는 모습에 모두가 박수를 치며 기뻐하고 있다.
교회에서는 왜 저렇게 할수 없을까 서글픈 마음이든다.
교단과 교회들의 많은 泥田鬪狗를 보면서 깊은 반성을 해본다.
우리는 왜
저렇게 할 수 없을까?
용서와 화해와 사랑의 의미로 사용된다.
1980년대 Tres Dias 영성훈련에서 중요 프로그램으로 보급되어 Tres Dias에 참가한 교회 중심으로 기독교적인 표현으로 사용되어왔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교회에서는 그 의미가 많이 퇴색하여 버리고
오히려 교회 밖에서 더 활발하게 사용되는 것을 보고 마음에 그늘이 지는 것을 느낀다.
不俱戴天之怨讐로 지내던
남과 북의 지도자들이 만나 Hug하는 모습에 모두가 박수를 치며 기뻐하고 있다.
교회에서는 왜 저렇게 할수 없을까 서글픈 마음이든다.
교단과 교회들의 많은 泥田鬪狗를 보면서 깊은 반성을 해본다.
우리는 왜
저렇게 할 수 없을까?
2018년 5월 21일 월요일
2018년 5월 18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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