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4월~6월까지 만 두달 동안
신병 치료의 목적으로 기도를 하기 위하여
철원에 있는 대한수도원에 가있었습니다.
대한수도원에는 유명한 회개바위가 있는데
그 회개바위 가는 길가 큰 바위에 잠언의 말씀이
음각으로 크게 씌여있습니다.
보라
의인도 이 세상에서 보응을 받겠거든
하물며 악인과 죄인이리요
자신의 사정을 주님께 아뢰기 전에
자신이 의인인지 악인인지 먼저 살피고
기도의 자리에 임하라는 뜻의 말씀입니다.
저는 신병을 치료받기 위하여 기도하려고
회개바위를 향하다가 문득 그 말씀을 대하고
저 자신을 살피며 회개를 시작하였습니다.
한달 쯔음 기도를 하고 있을 때
어느 날 팔순이 넘은 노인 전도사님이 오셔서
저와 한방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자 전도사님은 많이 계서도 팔순의 남자 전도사님은 히귀한 경우여서
기회를 보아 한번 여쭈어 보았습니다.
전도사님은 몇세에 목회를 시작하셨나요?
의외로 전도사님은 조금 늦은 30대에 목회를 시작하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래도 궁금하여
그런데 왜 아직 목사님이 못되셨냐고 여쭈어 보았습니다.
그 전도사님은 30대에 소명을 받을 때에
성경학교만 나오고 어느 교단에서 전도사님으로 임명되셨다고 합니다.
자기는 전도의 사명이 하나님이 주신 사명으로 생각하고
교회가 없는 곳에 가면 기도처를 정하고 열심히 전도하여
교인이 몇십명 뫃여 교회의 모습을 갖추면 좋은 목사님을 청빙하여
그 교회를 맡겨드리고 자기는 다시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
자리를 정하고 다시 전도를 하곤 했다고 말해 주셨습니다.
전도사님이 말씀해주시는 교회의 이름들 중에는
유명한 교회가 여러개 있었습니다.
목사님이 되실 생각은 안하셨었느냐고 여쭈어보았습니다.
전도사님은
하나님이 자기를 전도사로 사용하여 주신 것만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고 하시면서
한번도 목사가 되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전도사님께서는
지금까지 16교회를 개척하였다고 하면서
자기를 사용해 주신 것에 감사하여 매년 5월 자신이 소명을 받은 달이 되면
꼭 기도원에 와서 일주일씩 하나님께 기도를 한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 때 3일 금식 중이었는데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계란 노른 자에 들기름을 타서 잡수시면서
냄새를 피우는 노인이 좀 미운 마음이 들었었습니다.
그런데 그 전도사님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으로 옷깃을 여미며 마치 예수님을 만난 마음으로
그 전도사님과 일주일을 보내었습니다.
저는 평생토록 편하게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끔씩 문득문득 그 전도사님 생각이 날때마다
아무 한일이 없는 신앙생활 때문에 죄책감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그 전도사님은 물론 지금쯔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을 것입니다.
요즈음 교회 안밖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보면서
인자한 모습의 그 팔십대 전도사님을 떠올려 봅니다.
그 전도사님이 요즈음의 이야기들을 들으시면
무엇이라고 말씀해 주실까
오래 전에 그 전도사님의 이름을
잊어버렸습니다.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왠지
그 전도사님의 모습이
자꾸만 머리 속에 떠오르고 있습니다.
2007년 10월 8일 월요일
13. 양로원의 사모님
1980년 전후 크리스마스 기간에
교회 남선교회에서 어려운 이웃 돕기를 하였습니다.
그때 문득
어렸을 때 유아세례를 받았던
김진호 원로목사님의 사모님이 생각났습니다.
사모님은 청운양로원에 계셨습니다.
저는 다른 교우와 함께
사모님을 찾아 뵈었습니다.
우리는 사모님에게 절을 하며
오랫동안 찾아뵙지 못하여 죄송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전해 드리는 작은 위로금은 제쳐두시고
나를 위하여 기도 좀 해주세요
너무 외로워요
늙어 이렇게 혼자 고아처럼 있게될 줄 몰랐어요
하며 손을 붙들고 울고 계셨습니다.
우리는 사모님의 손을 붙들고
함께 울며 기도를 하였습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사모님을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가까운 곳에 있는 궁정교회 청년들이
사모님이 돌아가실 때 까지
매주 예배가 끝나면 사모님을 찾아뵙고
우리가 할머니의 손자에요
하면서 함께 놀아드렸다고 합니다.
얼마 후
사모님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김진호 목사님과 함께
주님 곁에서 안식하시리라 믿습니다.
매년 겨울이 되면
김진호 목사님 사모님의 우시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생각해 봅니다.
다시는 그런 외로운 목사님이나 사모님이
우리 감리교회에 계시지 않아야 할터인데....
교회 남선교회에서 어려운 이웃 돕기를 하였습니다.
그때 문득
어렸을 때 유아세례를 받았던
김진호 원로목사님의 사모님이 생각났습니다.
사모님은 청운양로원에 계셨습니다.
저는 다른 교우와 함께
사모님을 찾아 뵈었습니다.
우리는 사모님에게 절을 하며
오랫동안 찾아뵙지 못하여 죄송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전해 드리는 작은 위로금은 제쳐두시고
나를 위하여 기도 좀 해주세요
너무 외로워요
늙어 이렇게 혼자 고아처럼 있게될 줄 몰랐어요
하며 손을 붙들고 울고 계셨습니다.
우리는 사모님의 손을 붙들고
함께 울며 기도를 하였습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사모님을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가까운 곳에 있는 궁정교회 청년들이
사모님이 돌아가실 때 까지
매주 예배가 끝나면 사모님을 찾아뵙고
우리가 할머니의 손자에요
하면서 함께 놀아드렸다고 합니다.
얼마 후
사모님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김진호 목사님과 함께
주님 곁에서 안식하시리라 믿습니다.
매년 겨울이 되면
김진호 목사님 사모님의 우시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생각해 봅니다.
다시는 그런 외로운 목사님이나 사모님이
우리 감리교회에 계시지 않아야 할터인데....
12. 조현제 장로님
어느날
서울 성동지방의 어느 교회에
년로하신 장로님 한분이 새로 오셨습니다.
키가 크고 인자한 모습의 그 장로님은
평생 농사를 지으시느라고 얼굴이 검게 타고
손에는 굳은 살이 박혀 있었습니다.
대개의 경우
다른 교회에서 누가 새로 이명해 오면
한 3년 동안은 정착하느라고 곤욕을 치르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 사람이 그 직분에 걸맞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모두들 주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각종 예배와 모임은 제대로 참석하고 있는지?
새벽기도는 하고 있는지?
헌금생활을 어떻게 하며 무슨 직업을 갖고 있는지?
그러다가 정착을 하기도 하고
대개의 경우에는 토박이 교인들의 텃세에 밀려 정착을 하지 못하고
1~2년 내에 또 다른 교회로 떠나가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런데
조현제 장로님은 오신지 얼마 안되어
모든 교우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게 되셨습니다.
조현제 장로님은
주일 새벽기도가 끝나고 나면
화장실에 들어가서 걸레를 빨아가지고 나와서
교회 본당과 복도와 각 사무실 등
이곳저곳을 걸레질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사찰이 따로 있으니까 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하여도
이것이 바로 내가 해야할 일이라고 하면서
주일마다 걸레질을 하셨습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은
직접 교회를 걸레로 닦는데서 부터 시작하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남자 권사님 한분이 자청하여
조현제 장로님을 따라다니며 걸레질을 같이 하였습니다.
주일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은
교회학교나 예배당 등 모든 곳에서
조현제 장로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농사지으시느라고 고생하고 사신 것이 안타까워
자녀들이 함께 살자고 하여 서울에 와서 사시던 장로님은
한 3년 후 도로 진천으로 내려가셨습니다.
가시면서
장로님을 따라다니며 배우던 권사님에게 대걸레를 물려주며
평생 이것을 놓지 말라고 당부하고 떠나셨습니다.
그 권사님은
지금도 주일이면 그 교회에서 걸레질을 합니다.
교회학교의 유년부 부장을 오래하고 있으며
어린이전도협회 이사로 봉사하고 있고
뜨레서디아스가 열리는 곳에서는 유명한 봉사자가 되었습니다.
조현제 원로장로님이
지금까지 살아계신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밖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득 조현제 원로장로님이 생각이 납니다.
과연
교회를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을 하는 것일까?
서울 성동지방의 어느 교회에
년로하신 장로님 한분이 새로 오셨습니다.
키가 크고 인자한 모습의 그 장로님은
평생 농사를 지으시느라고 얼굴이 검게 타고
손에는 굳은 살이 박혀 있었습니다.
대개의 경우
다른 교회에서 누가 새로 이명해 오면
한 3년 동안은 정착하느라고 곤욕을 치르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 사람이 그 직분에 걸맞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모두들 주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각종 예배와 모임은 제대로 참석하고 있는지?
새벽기도는 하고 있는지?
헌금생활을 어떻게 하며 무슨 직업을 갖고 있는지?
그러다가 정착을 하기도 하고
대개의 경우에는 토박이 교인들의 텃세에 밀려 정착을 하지 못하고
1~2년 내에 또 다른 교회로 떠나가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런데
조현제 장로님은 오신지 얼마 안되어
모든 교우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게 되셨습니다.
조현제 장로님은
주일 새벽기도가 끝나고 나면
화장실에 들어가서 걸레를 빨아가지고 나와서
교회 본당과 복도와 각 사무실 등
이곳저곳을 걸레질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사찰이 따로 있으니까 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하여도
이것이 바로 내가 해야할 일이라고 하면서
주일마다 걸레질을 하셨습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은
직접 교회를 걸레로 닦는데서 부터 시작하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남자 권사님 한분이 자청하여
조현제 장로님을 따라다니며 걸레질을 같이 하였습니다.
주일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은
교회학교나 예배당 등 모든 곳에서
조현제 장로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농사지으시느라고 고생하고 사신 것이 안타까워
자녀들이 함께 살자고 하여 서울에 와서 사시던 장로님은
한 3년 후 도로 진천으로 내려가셨습니다.
가시면서
장로님을 따라다니며 배우던 권사님에게 대걸레를 물려주며
평생 이것을 놓지 말라고 당부하고 떠나셨습니다.
그 권사님은
지금도 주일이면 그 교회에서 걸레질을 합니다.
교회학교의 유년부 부장을 오래하고 있으며
어린이전도협회 이사로 봉사하고 있고
뜨레서디아스가 열리는 곳에서는 유명한 봉사자가 되었습니다.
조현제 원로장로님이
지금까지 살아계신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밖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득 조현제 원로장로님이 생각이 납니다.
과연
교회를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을 하는 것일까?
11. 농촌목회하시는 김목사님의 이야기
농촌 교회 목회자 사례비 삼십만원
사모님은 좀더 받기를 바라고 목사님은 괜찮다 하고
오십만원 만 받아도 한이 없겠다 생각하는 목사님 사모님 많죠.
교회 개척하고 2년 지나 교회 이전하면서
이전 예배 겸 설립 예배드리며 오셔서 설교해 주신
존경하는 목사님에게 사례비를 십오만원 드렸었습니다.
적다 생각할 수 있겠다 생각되었지만
당시 한달 생활비로 십오만원 이상 써 본 일이 없어서
그냥 그렇게 드렸는데 늘 마음에 걸립니다.
지금도 형편은 비슷하지만
굶지 않고 견딜 수 있어 감사할 뿐입니다.
이글에
저는 이렇게 다시 답글을 달았습니다.
그 목사님은 눈물로 받으시고
늘 김목사님과 교회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
김목사님이 시무하시는 교회는
전형적인 농촌교회입니다.
보통 농촌교회의 경우
일년 예산의 절반이 추수감사절 헌금이라고하니
그 나머지 기간 동안
교회와 목사님들의 생활이 얼마나 어려우실까
짐작을 해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해 봅니다.
어차피 기독교는 대형교회나 유명한 사람들에 의하여
전승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단 한 사람의 온전한 크리스쳔을 만들기 위하여
삶의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살아가는
선지자들에 의한 것입니다.
기독교의 내용은 이론이나 지식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영적 계시를 받은 사람들에 의하여
삶으로 사랑을 실천해 보여주어야 한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이용도 목사님이나 한경직 목사님을 존경하는 이유는
그분들의 설교 내용이나 지식 때문이 아닙니다.
그분들의 삶의 모습 속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교인을 위하여
가난을 무릅쓰고
그 영혼을 위하여 도고하며 목회하시는 소형교회 목사님이나
수만명의 교인들을 목회하시는 대형교회 목사님의 모습 속에서
같은 거룩함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같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많이 뫃여
얼마나 웅장한 예배를 드렸는가 보다
그 예배를 통하여
우리가 주님을 만날 수 있었는가가
더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라고 묻기 전에
내가 먼저 솔선수범을 하는 것이
주님의 제자인 크리스쳔들이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모님은 좀더 받기를 바라고 목사님은 괜찮다 하고
오십만원 만 받아도 한이 없겠다 생각하는 목사님 사모님 많죠.
교회 개척하고 2년 지나 교회 이전하면서
이전 예배 겸 설립 예배드리며 오셔서 설교해 주신
존경하는 목사님에게 사례비를 십오만원 드렸었습니다.
적다 생각할 수 있겠다 생각되었지만
당시 한달 생활비로 십오만원 이상 써 본 일이 없어서
그냥 그렇게 드렸는데 늘 마음에 걸립니다.
지금도 형편은 비슷하지만
굶지 않고 견딜 수 있어 감사할 뿐입니다.
이글에
저는 이렇게 다시 답글을 달았습니다.
그 목사님은 눈물로 받으시고
늘 김목사님과 교회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
김목사님이 시무하시는 교회는
전형적인 농촌교회입니다.
보통 농촌교회의 경우
일년 예산의 절반이 추수감사절 헌금이라고하니
그 나머지 기간 동안
교회와 목사님들의 생활이 얼마나 어려우실까
짐작을 해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해 봅니다.
어차피 기독교는 대형교회나 유명한 사람들에 의하여
전승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단 한 사람의 온전한 크리스쳔을 만들기 위하여
삶의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살아가는
선지자들에 의한 것입니다.
기독교의 내용은 이론이나 지식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영적 계시를 받은 사람들에 의하여
삶으로 사랑을 실천해 보여주어야 한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이용도 목사님이나 한경직 목사님을 존경하는 이유는
그분들의 설교 내용이나 지식 때문이 아닙니다.
그분들의 삶의 모습 속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교인을 위하여
가난을 무릅쓰고
그 영혼을 위하여 도고하며 목회하시는 소형교회 목사님이나
수만명의 교인들을 목회하시는 대형교회 목사님의 모습 속에서
같은 거룩함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같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많이 뫃여
얼마나 웅장한 예배를 드렸는가 보다
그 예배를 통하여
우리가 주님을 만날 수 있었는가가
더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라고 묻기 전에
내가 먼저 솔선수범을 하는 것이
주님의 제자인 크리스쳔들이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2007년 10월 5일 금요일
10. 새성전을 봉헌하는 어느 목사님
197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저는 교회학교 청년부와 대학부 부장으로 봉사하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거리의 데모를 보면서
젊은이들의 웨침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낮에는 거리에서 그들의 웨침을 들으며 따라다녔고
저녁에 교회에 와서는 데모를 하다가 혹 누가 다칠까봐
우리는 몸으로 하지 말고 기도로 하나님께 아뢰자고
그들을 붙들었습니다.
친구들은 거리에서 다치고 죽고 하는데
우리는 이렇게 기도만 하고 있으면 되겠느냐고 하면서
울고들 있었습니다.
그때 이웃교회에 있던 전도사님 한분은
그때의 일들로 옥고를 치른 후
교회가 교회다운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고 실망하면서
교회를 떠났습니다.
노동자가 되어 일하시던 그분은
친구의 소개로 신학교 후배와 결혼하여 생활하던 중
전도사였던 아내의 권유로 다시 신앙생활을 시작하고
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비록 못생기고 병든 교회이지만
그 교회를 사랑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아
나도 교회를 사랑하리라 결심하고
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교회를 개척한지 약 20년이 채못되어
그 목사님은 새 성전을 건축하고 얼마후면
봉헌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지금 영성훈련 지도자로
모든 이들의 존경을 받으며 활동하고 계십니다.
지금도 불의한 일을 보면
의분을 참지 못하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그 목사님은 더 이상
교회를 비판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들 자신이 바로
교회의 겉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열심히 기도하며
우리들 자신을 채찍질하여 경건한 모습의 크리스쳔이 되었을 때
우리교회는 아름다운 교회가 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
군 생활을 하면서 3.15 부정선거와
4.19를 경험하였습니다.
학보병으로 제대하고 복학하였을 때
5.16 군사혁명을 보았습니다.
나는 그들이 사회정의를 꼭 실천할 줄 알았습니다.
학교에 복학한 나는 새로운 마음으로 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소수의 국가재건최고회의가 입법,사법,행정을 모두 통제하는 것은
소련의 소비에트와 같은 것이 아니냐고 교수에기 질문하고
이를 변명하는 교수와 다투다가
진리가 아닌 학문은 배울 필요가 없다고 학교를 그만두고 말았습니다.
MYF 지방연합회와 전국연합회 임원으로 있을 때에는
다른 임원들과 함께 총회를 참관하면서 흥분하기도 하였었습니다.
그 후
수십년의 세월이 흐르고
직장에서 은퇴를 하였습니다.
교회의 직분도 몇년 후면 시무를 그만두고
은퇴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내 자신을 돌아보면서
과연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위하여
내가 한 것이 무엇이 있는가를 반성해보고 있습니다.
............................................................................................
아직도 세상은 혼란스럽고
세상을 아름답고 의롭게 사는 지혜를 구하는 교우들에게
제대로 설명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의 삶이
주님의 사랑과 의를 설명하기에는
너무 부끄러운 삶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고난 중에도 믿음을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간
목사님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것 뿐입니다.
감사한 것은
우리 감리교회에는 우리가 본받을 만한
많은 훌륭한 목사님들이 계신 것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의로운 10명의 목사님들이 계신 한
우리 감리교회는 발전할 것이고
우리나라는 소망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목사님들이 저에게 들려주신
예언의 말씀들입니다.
저는 교회학교 청년부와 대학부 부장으로 봉사하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거리의 데모를 보면서
젊은이들의 웨침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낮에는 거리에서 그들의 웨침을 들으며 따라다녔고
저녁에 교회에 와서는 데모를 하다가 혹 누가 다칠까봐
우리는 몸으로 하지 말고 기도로 하나님께 아뢰자고
그들을 붙들었습니다.
친구들은 거리에서 다치고 죽고 하는데
우리는 이렇게 기도만 하고 있으면 되겠느냐고 하면서
울고들 있었습니다.
그때 이웃교회에 있던 전도사님 한분은
그때의 일들로 옥고를 치른 후
교회가 교회다운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고 실망하면서
교회를 떠났습니다.
노동자가 되어 일하시던 그분은
친구의 소개로 신학교 후배와 결혼하여 생활하던 중
전도사였던 아내의 권유로 다시 신앙생활을 시작하고
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비록 못생기고 병든 교회이지만
그 교회를 사랑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아
나도 교회를 사랑하리라 결심하고
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교회를 개척한지 약 20년이 채못되어
그 목사님은 새 성전을 건축하고 얼마후면
봉헌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지금 영성훈련 지도자로
모든 이들의 존경을 받으며 활동하고 계십니다.
지금도 불의한 일을 보면
의분을 참지 못하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그 목사님은 더 이상
교회를 비판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들 자신이 바로
교회의 겉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열심히 기도하며
우리들 자신을 채찍질하여 경건한 모습의 크리스쳔이 되었을 때
우리교회는 아름다운 교회가 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
군 생활을 하면서 3.15 부정선거와
4.19를 경험하였습니다.
학보병으로 제대하고 복학하였을 때
5.16 군사혁명을 보았습니다.
나는 그들이 사회정의를 꼭 실천할 줄 알았습니다.
학교에 복학한 나는 새로운 마음으로 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소수의 국가재건최고회의가 입법,사법,행정을 모두 통제하는 것은
소련의 소비에트와 같은 것이 아니냐고 교수에기 질문하고
이를 변명하는 교수와 다투다가
진리가 아닌 학문은 배울 필요가 없다고 학교를 그만두고 말았습니다.
MYF 지방연합회와 전국연합회 임원으로 있을 때에는
다른 임원들과 함께 총회를 참관하면서 흥분하기도 하였었습니다.
그 후
수십년의 세월이 흐르고
직장에서 은퇴를 하였습니다.
교회의 직분도 몇년 후면 시무를 그만두고
은퇴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내 자신을 돌아보면서
과연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위하여
내가 한 것이 무엇이 있는가를 반성해보고 있습니다.
............................................................................................
아직도 세상은 혼란스럽고
세상을 아름답고 의롭게 사는 지혜를 구하는 교우들에게
제대로 설명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의 삶이
주님의 사랑과 의를 설명하기에는
너무 부끄러운 삶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고난 중에도 믿음을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간
목사님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것 뿐입니다.
감사한 것은
우리 감리교회에는 우리가 본받을 만한
많은 훌륭한 목사님들이 계신 것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의로운 10명의 목사님들이 계신 한
우리 감리교회는 발전할 것이고
우리나라는 소망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목사님들이 저에게 들려주신
예언의 말씀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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