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13일 수요일
81. 가난한 크리스천
믿음의 궁극적 관심은 부귀영화인가?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이 성공한 신앙인의 모습인가?
큰 교회에서 웅장한 성가대의 음악을 들으며 예배를 드리는 모습은 참 멋이있다.
그런데 어쩐지
말구유에서 태어나 목수의 아들로 성장한 후 십자가에서 희생당하신
예수님의 제자의 모습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그 보다는
농촌에서
바닷가에서
비록
겨우 호구지책을 해결하고
교회의 모습이나 강도상의모습이나
어느 것 하나 멋있어 보이는 것이 없어도
십여명 옹기종기 모인 시골 노인들이 어색한 곡조의 노래를 불러도
그곳에서 성도의 거룩함을 느끼게 됨은 왜일까?
눈물로 지새우는 가난한 목회자
하루의 끼니와 그날의 건강을 소원하는
가난한 크리스천에게서
믿음의 진실을 보게됨은
나의 편견 때문일까?
80. 위대한 예수
김진홍 목사님의 [두레성서공부]를 하러 다닐 때이다
[나는 영생구원이 없어도 예수의 제자가 되어 목사노릇을 할 것이다
그 분의 가르침과 생애가 얼마나 훌륭한가?]
김진홍 목사님의 이런 강의는 내게 퍽 충격적이었다.
예수님은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분은 가정의 장남이었다.
그러나 그런 조건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역활도 충실히 지켰고
인생의 최고 목표를 자신의 공명과 가정의 부귀를 추구하는데 두지 않았고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자신의 삶을 기꺼이 희생시켰다.
신의 사명이 아니더라도 남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한다는 것은 위대한 일이다
하물며 인간의 몸으로 태어난 신으로서
피조물인 인간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시킨다는 것은
기독교에만 있는 신의 인격이다
피조물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시키는 신은 기독교 이외에서는 볼 수 없다
그 희생의 정신을 배우고 실천하고 전하는 일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김진홍 목사님은 계명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한 후 강의까지 하다가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신 분이다
인간의 참된 의미 -
그 분은 위대한 예수에게서 그 해답을 찾았다고한다
79. 신앙의 문제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삶 속에 신앙 아닌 신앙이 자리를 잡고 뿌리를 내리려 하고있다.
신앙이란 무엇인가?
『이 세상은 하나님이 만드셨고 하나님의 법대로 살지 않으면 죄인이 되고
죄인이 죽지 않고 살려면 구세주를 믿어야하고 우리의 육신은 다시 부활하여
영생을 얻게 된다는 사실』
을 믿는 것이다.
즉, 신앙이란
이 세상에서 주님의 가르침대로 살다가 영생구원을 얻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이다.
그런데
지금 성경에서 예언한 대로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있다.
닥아올 천국 보다는 이 세상에서의 행복추구를 너무 강조하고 있다.
주님이 이 땅에 계실 동안 행하신 기사와 이적은 복음의 확실성을 강조하시기 위함이었지
이 땅에서의 부귀공명을 위함은 아니었다.
결과는 어떤가?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부귀공명을 가르치고
내 몸을 희생하여 남의 생명을 구원하는 아가페는 가르치지 않고 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어디로 갔는가?
교회에서 그리스도의 사랑과 영생구원을 빼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재래 한국 무속종교와 혼돈의 상태이다.
78. 종교간의 갈등
2002년 5월 20일
오늘 이 시간 현재
세계 각처의 대부분의 전쟁과 분쟁과 갈등은 종교간의 갈등에서 비롯되었다.
중동에서의 유태교와 이스람교의 갈등
인도에서의 힌두교와 이스람교의 갈등
영국의 기독교 구교와 개신교의 갈등
우리나라의 불교와 기독교의 갈등 ..................
갈등의 이유인즉
서로 배타적이다
모든 종교는 스스로의 종교 이외의 종교를 인정치 않고 있다.
종교란 무엇인가?
종교를 표시하는 한자의 뜻은 가장 크고 최고의 가르침이란 뜻을 갖고 있다.
인간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조물주의 뜻대로 살아갈 수가 있는가를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모든 종교는 공통적으로 사랑과 자비와 희생을 인간 삶의 최고의 덕으로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왜 종교의 가르침과는 반대로 끔직한 전쟁을 치르며 살상을 하는 것인가?
모든 종교는
스스로의 공동체 안에서 다른 종교를 용납치 못하게 하고 있다.
인간의 생명은 존중하되 자기와 다른 종교인은 사정없이 살생하도록 정경에서 가르치고 있다.
과연 이 세상의 신이 그렇게 명령 했을까?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신과
사랑과 자비와 희생이 없는 신과
헌물 받기를 좋아하는 신이
참된 신일까?
그런 이야기들은 너무나 인간적인 생각이다.
배타적인 것은 겸손과 사랑이 없는 것이고
헌물을 좋아하는 것은 그것으로 호의 호식과 호강을 하려는 인간의 생각과 너무나 흡사하다.
모든 종교의 정경에서 인간의 생각을 빼버릴 수는 없을까?
인간과 세상을 창조한 신은 과연 무엇을 바랄까?
우리가 자식을 낳아 기르면서
자식이 잘 되고 즐겁고 기쁘게 사는 것을 보람으로 알고 있듯이
조물주도
우리들의 즐겁고 기쁜 평화로운 삶을 원하시지 않을까?
스스로 폭탄으로 무장하고 이교도의 공통체 안에서 많은 이교도와 함께 폭사하는 일들......
과연
신이 그렇게 시킨 것일까?
인간끼리는 이교도가 있을지 모르지만
조물주에게는 똑같은 피조물일 따름이다.
인간들이
어떻게 조물주를 배우고
조물주의 규칙을 받든지간에
조물주는 스스로 지은 인간과 세상을 파괴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용서할 줄 모르고
다른 생각을 용납하지 못하고
편협한 협의의 의미의 신만이 참 신이라면
우리는 정말 끔직한 곳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같은 종교인으로 태어나지 못한 공평치 못한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자기의 종교적 신념을 바꾸지 않는 한 타 종교를 용납하고
서로 싸우지 않고 사랑하며 사는 것이 조물주의 참 된 바람이 아닐런지........
우리에게 자식을 낳아 기르도록하심은
조물주의 뜻을 깨우치려는 더 큰 은혜인지도 모른다.
하여
평화로운 세계를 이룩하도록.....................
77. 이단의 문제
기독교가 세계를 지배했던 중세 유럽 -
세계사는 그 때를 암흑시대라고 쓰고 있다.
진리와 정의가 없고 교리가 바로 진리이고 정의였다.
'지구는 둥글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
이 간단한 진리가 교리에 어긋난다며 처형하였다.
교리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실제 생활에서 지키고 살기 위한 해석과 적용의 원칙아닌가?
아무리 권위있고 성스러운 사람들이 심사숙고하여 만든 교리와 규범이라고 하더라도
그 것이 어찌
천하보다도 귀하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으며
하나님이 독생자를 희생시키면서까지 지키려하는
인간의 생명에 비할 수 있으랴?
설혹
그 것이 진리였다고 하더라도 교리에 어긋난다고 사람을 죽여야 했을까?
그 진리가 교리에 어긋난다고하여 많은 사람들을 죽게한 사제들은
과연 구원 받을 수 있을까?
사랑과 희생과 자비의 하나님을
무서운 하나님으로
진노하는 하나님으로
극히 제한된 사람만을 편애하는 분으로 만든 사람들은
과연 구원 받을 수 있을까?
무엇이 이단이고
무엇이 죄인가?
스스로
하늘나라의 비자를 발급하는 영사라도 된 것처럼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죽이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착취하고
하나님이 싫어 멀리 떠나도록
하나님과 하늘나라를 잘 못 가르치고 인도하는 사람들은 무엇인가?
우리는 그들을 무엇이라고 불러야하나......
언젠가 우리 모두 요단강을 건넌 후
그런 무서운 사제들과 교회의 지도자들이 모여 있는 곳을
낙원 -
에덴동산-
천국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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