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 까지
내가 주일학교 유초등부에 다닐 때에
삼청교회에서 시무하시던 목사님입니다.
한복에 두루마기를 주로 입으시고
양복을 입으시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처럼 깡마른 체구의 목사님은
키는 작지 않은 보통키 이셨으며
머리를 기르지 않으시고 늘 짧은 머리이셨습니다.
왜 머리를 기르지 않으시고 짧은 머리를 하셨을까?
머리를 가꾸려면 시간이 많이 들어서 귀찮아서 였을까?
그보다도
일제 점령하에서
독립을 꿈꾸며 일제의 점령에 항의하고
하나님 앞에 소원을 아뢰려고
그런 머리를 하시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목사님의 삶이
그렇게 생각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멋있는 옷도 멋있는 집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의 앞에서는
아무도 목을 꼳꼳하게 들고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그분의 인격에 눌려
그분 앞에 가면 스스로 몸가짐을 조심하였습니다.
아들이 없으셨던 목사님은 은퇴 후
따님 댁에서 노후를 보내셨는데
여선교회 주관예배 때 설교를 해주시고는
택시비를 드리려는 교인들을 나무라시며
빠른 걸음으로 내빼듯 가버리시곤 하였습니다.
6.25. 이후 내가 중등부 때
이하영 목사님이 오셔서
설교하시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카랑카랑한 음성으로
하늘나라와 하나님을 말씀하실 때에는
하늘을 보면서
마치
지금 하늘의 음성을 들으면서 전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하늘을 보는 모습 속에는
하나님을 그리워하는 간절함이 있는 표정이었습니다.
듣는 우리는 모두
마치 하늘나라에 함께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을 받곤 하였습니다.
가난함이 좋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자신의 인격과 가르침을 위하여
가난을 즐기며 살고 계셨습니다.
이하영 목사님을 기억하는 모든 분들은
그분을 훌륭한 성직자=하나님의 사람 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 목사님을
가난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분을 기억하는 삼청교회 교인들은
지금도 주님을 만나려고 기도를 할 때면
꿈에 이하영 목사님이 대신 심방을 와주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가끔 지방회 행사에 참석한
이하영 목사님의 외손자이신 종교교회 김정태 장로님에게서
그분의 인자한 미소를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나는 가끔
훌륭한 인격을 가지신 김정태 장로님이
왜 목회를 계속 안하시고 장로로 머물러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마도
외조부에게서 받은 성직자의 상이 너무 엄청나서
그것을 감당하기 어려워
목사님을 도웁는 사명으로 만족하신 것 같다고
혼자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