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 5일 금요일

4. 현동완 선생님

함석헌 선생님이나 한경직 목사님은 잘 알아도
현동완 선생님은 많이 알려지지 않은 분입니다.

그러나
6.25. 직후에는 이승만 대통령에 의하여
몇번 장관직에 초빙될 만큼 유명한 분이었습니다.

그분에게는 교회의 직분이 없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분 밑에서 교육을 받은 제자들에게도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데 감사함으로 할것이지
교회의 직분이 왜 필요하냐고 하시면서
교회에서 직분을 갖지 말고 봉사하라고 가르치셨다고 합니다.

6.25. 전쟁으로 종로에 있던 YMCA건물이 파괴되었을 때
그 뒷 마당에 요즘의 콘테이너와 비슷한 것으로 지은
작은 건물이 몇개 있었는데
지금의 새 건물이 지어질 때 까지 그곳에서 활동들을 하였습니다.

그 당시
소년부에서는 6.25. 전쟁으로 어려움을 당한 아이들을 뫃아
난지도에 Boys Twon을 건설하여 수용하였고
지금까지 그 사업이 이어지고 있으며
매주 일정한 시간 모여서 성경을 배우고 예배를 드리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아주 엄하게 가르치시면서도
욕을 사용하는 일이 없으셨고
「그 사람 참 몹쓸 사람이군」
이 제일 큰 꾸지람이었다고 합니다.


큰 스승님의 언어에는 욕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보다고 여름 수련회를 갔을 때면
밤새 제자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가며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소리를 듣고
더욱 마음으로 부터 신뢰와 존경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때 현동완 선생님에게서 교육을 받은 소년들은
후에 사회 지도자들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때의 제자들 약 20명이 가끔 뫃여
선생님의 가르침을 회고하며 옛정을 나눈다고 하는데
그 중 교육자 한분과 사업가 한분이 장로가 되어서
모두 그들을 보고
자네들은 선생님의 유훈을 지키지 않은 사람들이야
라고 웃으며 이야기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 두분 이외에는 모두 집사가 된분도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교회와 사회사업 분야에서 많은 일들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분은 총무 은퇴 후
경기도 어느 농촌 단칸 방에서 혼자 사시다가 별세하셨는데
너무 가난하여
제자들이 직접 염을 하여 인근 산에 모셨다고 합니다.

그분은 생전에
자기가 죽거든 아무 비석도 세우지 말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내가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무슨 큰 일을 한것이 있다고
비석을 세우느냐 절대 비석을 세우지 말아라
라고 하셨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후세 사람들을 위하여
아주 작은 비석을 세워 선생님의 산소를 표시해 놓았다고 합니다.

현동완 선생님에게는 목사님이신 아드님이 계시다고 합니다.
그러나 미국에 이민을 보낸 후 총무이실 때에도
일체 아들에게 도움을 주지 않아서
아주 어렵게 고학을 하면서 공부를 하였다고 합니다.

현동완 선생님은 함석헌 선생님과 함께
이상재 선생님의 문하에서 공부를 하셨다고 합니다.

왜 갑자기
현동완 선생님이 생각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중학교 때 직접 보고 들은 이야기와
현동완 선생님의 제자 서울 금호동 서민약국 주인과
YMCA에서 활동하시던 숙부님에게 들은 이야기를 종합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