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 5일 금요일

5. 임진국 목사님

6.25.전쟁 중
서울은 1950년 6월~9월, 1951년 1월에서 수개월
두 차례 공산군의 점령하에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국군이 서울을 재탈환 하고서도
한강 이남 지역은 자유왕래를 허락하고
한강 이북 지역은 수개월 동안 통행을 제한하였습니다.

나는 중학교에 입학하게 되어
가족들 중 대표로 먼저 서울에 들어와서
은행에 다니시던 숙부님과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그때 삼청교회의 담임목사님은
원로목사님이시던 임진국 목사님이셨습니다.

체구가 좀 크시고 미성의 음성을 가지셨으며
늘 넉넉한 미소로 교인들을 맞아 주시곤 하셨습니다.

청운초등학교 선생님이셨고 보이스카욷에서 활약하시던
임한익 원로장로님의 밝고 환하게 웃는 모습과
장로님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생각해보면
아버님이신 임진국 목사님의 모습을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당시는 교회의 숫자보다 목사님의 숫자가 적어서
목사님 한분이 여러교회를 함께 치리하시는 경우가 많았었는데
서울이 완전 자유왕래가 허용되기 전이라
원로목사님이시던 임진국 목사님이 삼청교회를 치리하고 계셨습니다.

목사님은 찬송가 중 이몸의 소망 무엔가를 자주 부르셨습니다.
주일 예배시간에도, 저녁 예배시간에도, 수요일과 속회 시간에도
소년부 예배시간에도 이몸의 소망 무엔가를 자주 부르셨습니다.

그당시 우리는
목사님이 노인이시라 다른 찬송은 잘 모르셔서
그 찬송만 자주 부르시는 모양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보니
한참 전쟁 중이던 때
언제 다시 피난보따리를 메고 피난을 하게 될지도 모르고
삶의 미래를 계획할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던 때에
이 찬송처럼 가장 은혜가 되는 찬송이 없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임진국 목사님께서는
어떤 어려운 환경에서도
소망중에 주님을 믿고 기다리자는 말씀을
찬송가를 통하여 전하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그 후 삼청교회 교인들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임진국 목사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소망의 찬송가
이 몸의 소망 무엔가를 부르며 다시 힘을 얻곤 합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그 찬송을
모든 분들과 함께 부르고 싶습니다.

1)
이 몸의 소망 무엔가 우리 주 예수 뿐일세
우리 주 예수 밖에는 믿을 이 아주 없도다

후렴)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2)
무섭게 바람 부는 밤 물결이 높이 설렐 때
우리 주 크신 은혜에 소망의 닻을 두리라

3)
세상의 믿던 모든 것 끊어질 그날 되어도
구주의 언약 믿사와 내 소망 더욱 크리라

4)
바라던 천국 올라가 하나님 전에 뵈올 때
구주의 의를 힘입어 어엿이 앞에 서리라

우리들은 그때 부르던 이 찬송 속에
엠마오로 함께 걷고 있던 주님이 제자들에게 해주시던
사랑의 말씀이 들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때의 임진국 목사님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우리 곁에 오신

상수리나무 밑에서 아브라함이 만났던 주님의 사자

그리고
모세에게 떨기나무에서 음성으로 들려 주셨던 분

바로
우리 주님의 임재이셨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때의 그 주님이
지금 우리와 동행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