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청교회의 옛날이야기
삼청교회의 역사에 빼노을 수 없는 인물이 최광진이다.
교회학교 유년부장을 오래하였고 교회주보를 원지를 가리방으로 긁어 등사판으로
밀어서 만들 때 오래동안 그 일을 맡았었으며 언제나 우리 모임의 선두에 있었다.
휘문중학교 다닐 때 중등부 회장을 지냈고 고등학교 2학년 때 입산하여
약 1년간 철학 서적을 읽고 하산 하였다.
만화를 잘그려서 만화가로도 활약했으나 교제하는 힘이 부족하여
만화가로 대성하지 못하고 많은 고생을 하였다.
가끔 교회 종탑을 사무실 삼아 몇달씩 칩거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 때는 출품할 만화를 그릴 때 이었다.
그는 신앙토론을 할때는 늘 선두이었고 사상을 얘기할 때에도 늘 독보적 이었다.
그의 영향으로 우리 모두는 소위 철학이라는 단어에 빠져들었다.
우리는 설익은 철학이라는 뜻으로 개똥철학이라고들 하였다.
그는 기도를 잘하였다.
실제로 많은 기도를 하는 것을 보았다.
그의 서모는 집에서 술장사를 했는데 이 것이 싫어서 집보다는
교회에서 생활을 많이 하였다.
책을 몇권 싸들고 교회에 와서 공부를하고 책을 읽다가 교회에서 잠든 그를
쉽게 볼 수 있었다.
교회에 있는 시간이 남보다 많던 그는 교회일을 많이 하였다.
홍성배 선생님처럼 그도 많은 봉사를 하였다.
어떤 때는 장사 잘되게 해달라고 집에서 굿을 했다.
그러면 그는 자기 방에서 큰소리로 찬송가를 불렀다.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데서 맑은 가락이 울려나네
하늘 곡조가 언제나 흘러나와 내 영혼을 고이 싸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그러면 무당이 서모에게 부탁을 한다는 것이다.
저 학생이 찬송가를 불러서 신이 안 내리니 찬송가를 못 부르게 하라고.
그러면 그는 더 크게 부르곤 하였다.
예수 믿는 것을 싫어했던 서모는 예배를 드리고 돌아와서 밥을 먹는 그의 밥상에
신발을 던지며 나무랐다.
그래도 그는 술취한 서모에게 대들지 않고 신발을 밥상에서 내려놓고
그 밥을 다 먹었다.
그는 가정을 선교지로 생각하고 기도를 해왔고 온 가족이 교회를 다니는 우리 집을
매우 부러워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목수였다.
어쩌면 그 친구도 예수님과 같이 복음을 선포하는 일에
전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고행하는 스님처럼 많은 고생을 하였고 중년에 서모와 사랑으로 화해했으며
결혼하여 성남에 살고 있으면서 금자탑 학원의 국민윤리 강사를 했었는데
침뢰교단에서 목사를 하라고 권한다는 얘기를 들은 후
지금까지 근 십년 간 행방을 알 수가 없다.
환진갑이 다 지난 최광진의 찬송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하다.
그가 평생을 사랑하던 찬송가
~~내 맘속에 솟아난 이 평화는 깊이 묻히인 보배로다
나의 보화를 캐내어 가져갈 자 그 누구랴 안심일세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