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12일 화요일

72. 임병학 장로님

임병학 장로님
삼청교회의 옛날 이야기

이재은 목사님이 부임하시고 교회땅을 화재때문에 점령당했던 사람으로부터 되찾고 보니
할 일이 태산같았다.
교회 땅은 다시 찾았으나 건물은 다 타서 없어지고
사찰집사가 살던 작은 방 하나가 남아 있었다.
그 방은 교회화재로 집을 잃은 강씨댁 노인이 교회 땅에 상추, 파 같은 것을 기르며 거처하던 곳인데
겨우 모습만 갖추고 있었다.

모두 그냥 처다만 보고 있는데
목사님이 웃옷을 벗어 던지고 삽과 곡괭이를 들고 땅을 고르기 시작하자
모두 들러 붙어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 때 눈에 띄는 분이 한 분 있었다.
원래 원서동교회에 계시다가 오신 분인데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앞장서서 척척 하시는 것이었다.
흙 일도 목수 일도 무엇이든지 익숙하게 처리하시었다.
김도영 권사님이 돌아가시고 노인 김장로님은 천주교로 개종하신 후 남자 장년이 없던 때에
임병학 장로님은 교회의 중심에 서서 헌신적으로 일하시었다.
못 박는 일에서 부터 페인트칠하는 것 등
교회 구석구석 장로님의 손길이 안다은 곳이 없었다.
마치 내 집을 가꾸듯이 교회를 가꾸시었다.

대개의 경우 교회에서 하는 일이 많으면 공치사를 하게되고 그것을 빌미로 큰 소리 치게 되기가 쉬운데
그 분은 늘 겸손하게 마치 일하러 온 분처럼 열심히 봉사만 하시었다.
언제나 몸으로 봉사하는 사람들은 늘 낮은 곳에서 일한다.
장로로 피택될 때도 늦게 되었지만 교인들의 마음 속의 존경을 받으며 묵묵히 봉사하시었다.
그 봉사하는 열정의 근원은 무엇인가?
그 것이 몹시 궁금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감리교 신학대학에 2학년까지 다니다가 사정이 있어 중퇴하신 분이었다.

생각해 보면
임병학 장로님은 목회하는 심정으로 평신도생활을 하신 듯하다.
장로가 되신 후로는 부흥회를 인도하러 나가시곤 했는데
신유은사가 많이 나타나서 이곳저곳에서 초대하는 바람에 퍽 바쁜생활을 하시었다.
끊임 없는 기도와 봉사생활. 늘 기쁜 마음으로 내조하시던 조희복 권사님...
그런 신앙 속에
늘 기쁜 모습으로 맏 아들 노릇을 한 청자, 화끈하게 일하던 정덕, 깔끔한 정숙, 굵은 목소리의 베이스 종규, 인형같이 예쁘던 은희 모두 훌륭한 신앙인들이 되었으며
아버지의 믿음을 본 받아 정덕은 목회자가 되었고, 청자와 종규는 성가대 지휘자로 봉사하고 있으며 정숙이와 은희도 존경받는 교회 지도자가 되었다.

늘 궂은 일이 있을 때는 그 현장에서 일하셨던 임병학 장로님을 생각해보면서
요즘 내 신앙생활을 반성해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