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12일 화요일

66. 감신 4중창단 고흥배 목사님

감신 4중창단 고흥배 목사님
삼청교회의 옛날이야기

1959년 군에 입대하면서 천막교회 주일학교는 정덕용(장로) 혼자서 맡아하게 되었다.
다행히 그는 올갠을 칠줄 알아서 올갠반주를 하면서 아이들을 가르치려니
퍽 능율적(?) 이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로부터 두달 후 논산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치고 나온 나는 깜짝 놀라게 발전한
교회의 모습을 보고 경탄을 금할 수 없었다.

교회학교는 교사들로 꽉 차서 분반 공부를 하고 있었고 신학교에 다니는
웬 날씬한 미남자 하나가 교회학교 부장 겸 성가대 지휘자로 맹활약하고 있었다.

그는 감신 4중창단 멤버인 고흥배(현재 부평 부광감리교회 목사)선생 이었다.
고선생은 우리보다 3~5살 나이가 많으면서도 늘 우리와 함께 어울리면서
청년부, 교회학교, 성가대에서 활동하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때의 일이 아마 목회실습 겸 실습전도사 시무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고선생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웃음이 그치질 않았고 청년부나 교회학교나 성가대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봉사를 하게 만들었다.
그때나 이때나 전원이 청년부회원, 전원이 교사, 전원이 성가대를 하면서
주일날은 아침에 나오면 모두 저녁 밤이 늦어서야 헤어지곤 하였다.
그러면서도 모두들 즐겁게 일할 수 있었던 것은
고선생의 리더쉽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고선생은 27살에 동갑인 지금의 사모님과 결혼하셨는데 집이 먼고로
주일날 일이 늦게 끝나면 청년들과 같이 아무데서나 눈을 붙이곤 했었는데,
한번도 고선생의 얼굴에서 힘들다거나 지친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늘 무슨 일을 하던지 즐겁고 기쁜 모습으로 일을 처리하였다.

고흥배 목사님은 지금 부평에서 제일 크고 감리교회서 몇번째 갈
큰 교회(건평 약2,500평)를 증측중에 있다.
교회가 그렇게 크게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미루어 짐작해 보건데 그분의 중창단 활동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감리교 신학대학에는 학번별 4중창단이 있었는데 고선생이 활동할 때
몇년간은 대학 중창단 콩클대회에서 우승을 도맡아하곤 했다.
대학부의 감신 4중창단은 고등부의 숭실고등학교중창단과 함께
쌍벽을 이루고 있었다.

중창단의 무엇이 고선생을 성공적인 지도자로 만들었을까?

---다른 사람의 소리와 다른 사람의 감정과 다른 사람의 호흡에
내가 조화를 이루어 가는것---

고선생이 계신동안 온 교회가 평안하고 조화를 이루었으며 지금도 만나보면
여전히 함박꽃 웃음으로 우리를 맞이하시면서 입을 열면
금방 무슨 즐거운 소식이 쏟아져 나올 것만 같은 기다림을 갖게하는 목사님이다.

그 때 그 4중창단이 지금 다 생존들하고 계신지 알 수 없으나
그분이 좋아하면서 같이 불러주던 4중창 찬송가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는
늘 웃음이 활짝 핀 고흥배 목사님의 얼굴과 함께 내게 기쁨을 갖어다 주는 찬송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