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12일 화요일

62. 임진국 목사님

임진국 목사님
삼청교회의 옛날이야기  

6.25 전쟁중 1.4 후퇴 후 서울이 다시 수복 되면서 오신 목사님이 임진국 목사님이다
6.25 전에 계시던 이하영 목사님과는 반대의 이메지를 가지신 분이다.
이하영 목사님은 깡마른 체구에 머리는 중머리를 면할정도로 짧게 깍으셨고 한복을 즐겨 입으셨는데
임진국 목사님은 늘 정장에 흰테안경을 쓰시고 체구는 넉넉해 보이셨든 분 이시다
인진국 목사님의 아드님이신 임한익 선생님은 청운초등학교음악선생,
boyscout 지도자, 어린이 음악가로 활동하신 분이다.

그 당시 서울에는 임시로 도강증(한강을 건늘 수 있는 허가증)을 받은 사람들만 출입이 허락 되었는데
전쟁의 상황이 유동적이어서 또 후퇴할 일이 생길 때를 위하여
주민의 수를 통제하기 위한 대책이 아니었나 추측된다.
교인은 30명을 넘지 안은 것으로 기억된다.
교회학교 교사회의나 간단한 모ㅎ임을 우리집 안방에서 열곤했는데
임진국 목사님은 예배를 드릴 때나 각종 모임을 시작할 때마다 반드시 부르는 찬송이 있었다.
<이 몸의 소망 무엔가 우리주 예수 뿐일세 우리 주 예수 밖에는 믿을 이 아주 없도다
굳건한 반석 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많은 찬송가 중에 왜 유독 그 찬송만을 부르셨는지 우리는 그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노인 목사님이 곡조를 아는 찬송이 별로 없으셔서 그런가보다고 웃곤 하였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그 찬송은 내가 고난 중에 기도할 때마다
주님의 음성으로 내 심령에 들려지고 있다.
고난중에 인자한 모습으로 내게 오셔서 말씀해 주시는 예수님은
<이 몸의 소망 무엔가 우리 주 예수 뿐일세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를 불러 주신 임진국 목사님의 모습이었다.

고성균 장로님은 임진국 목사님 계실 때 세례를 받았다.
김동성 권사의 막내 삼촌 김명한 선생과 친구사이로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다녔으나
아마 교회를 다니지 않으셨던 엄하신 부모님의 허락이 없어서 세례받는 일이 늦지 안았나 추측해 본다.
겨울 크리스마스 때면 학교 제자들을 행사에 참석케하여 교회가 아이들로 꽉 차고 넘쳤던 일이 기억난다.

노인목사님 이시면서도 새벽송을 꼭 하시었다.
그 연세에 어떻게 견디셨는지 궁금할 정도로 열심이셨다.
그러나 세월이 가고 서울에 사람들이 다 들어오게 되었을 때 교인들은 교회의 발전을 위해서는
젊은 목사님이 오셔야 한다고 하여 후임으로 최준호 목사님이 부임하게 되었다.
임진국 목사님은 삼청교회를 사임하면서 완전히 은퇴를 하시었는데
아드님이신 임한익 선생과 같이 살면서 여생을 보내신다는 말을 전해 들으면서도
돌아가실 때 까지 찾아 뵙지를 못하고 말았다.

그러나 지금도 고난을 위한 기도를 할 때면 신사복차림의 인자한 모습을 하신 임진국 목사님이
<이 몸의 소망 무엔가 우리 주 예수 뿐일세>를
예수님의 모습으로 들려주시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