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호 목사님
임진국 목사님이 퇴임하시고 새로 최준호 목사님이 오시는 날이었다.
어머니와 나, 원복선 권사와 이구연 등
몇 사람이 새로 오시는 목사님을 기다리는데
오후 3시쯔음 웬 청년이 가방을 들고 들어 왔다.
"여기가 삼청교회 입니까?"
"녜, 어디서 오셨에요?"
"제가 오늘 부임하는 최준호 목사입니다."
우리는 황급히 일어나 목사님을 맞이하였다.
사모님은 초등학교 선생님이셨으며 돐이 조금 지난 종성이가 있었다.
사모님에게는 친정 동생들이 많았다.
7공주 집이라고들 했는데 목사님의 처제들이 교회에 오면
교회가 꽉 차는 기분이었다.
우리와 같은 또래의 이화여고 다니던 처제와 그 아래로 두명 정도가 자주 왔는데
우리와 성극도 같이하며 학생회 활동도 같이하곤했다.
수원 남양 출신의 최목사님은 젊잖은 미남이셨다.
그러나 달변가는 아니시어서 설교가 늘 부족하다고들 하였다.
그 때 옥인동 살던 한재현 선생이 성가대를 지휘하고
동부 삼청동 홍성배 선생이 주일학교를 맡았으며
청년부와 성가대에는 중동고등학교와 연대 철학과를 다닌 서성태 선생이 있었고
이대 정외과 안병숙 누님과
이구연, 김해성, 안병훈, 최광진, 임재천, 김재형, 송한규
김기숙, 조영자, 홍임선, 홍유선,김희원, 최민자, 원효정, 등이 학생회 멤버였고
교회 주택 끝방에 하숙생이 3명있었는데 그들도 청년회와 학생회에 동참하여서
중고청 합동 회의체인 [삐율라회] 총회 때는 약 60여명이 모였었다.
한동안 교회는 평안하였다.
그런데 박태선 장로와 나운몽 장로등의 부흥회가 시작되면서
각 교회는 자극과 도전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특별한 은혜는 특별한 사람들만의 것이어서
모든 사람들이 같을 수는 없었다.
(후에 박태선 장로는 천부교라는 것을 만들어서 기독교와는 전혀 다른 종교가 되었다.)
최준호 목사님이 퇴임하시고 천안지방 감리사를 지낸 한기모 목사님이 후임으로 부임하시게 되었다.
***서성태 선생은 장로를 거쳐 목회자가 되었으며,
최준호 목사님은 후에 장로교 목회자가 되시었고,
최준호 목사님은 부흥강사로 활약하시며 교단장을 역임하시고
같은 교단에서 활동하시는 서성태 목사님은 최목사님 후임으로
교단장을 역임하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