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12일 화요일

63. 한기모 목사님

한기모 목사님
삼청교회의 옛날이야기

최준호 목사님이 사임하시고 교인들의 뜻대로 이번에는 은혜스러운 목사님으로 천안지방에서 감리사를 지내신 한기모 목사님이 부임하시었다.
늘 인자한 웃음을 웃으시며 많은 가족과 함께 생활을 하시었다.

큰 따님은 결혼하여 군목으로 계신 남편 장기천 목사님(감독회장 역임)과 사택 끝방을 쓰셨으며 둘째 따님 병숙 누님은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를 다니던 미인이었고 큰 아드님 병일이와 둘째 병삼이는 배재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으며 막내 병칠이는 온 가족과 교인들의 사랑을 받는 귀염둥이 이었다.

한목사님은 옛날 분으로는 드물게 나팔을 잘 불으셨다.
부임하시는 날 코넷(트럼펫 보다 작은 나팔)으로 찬송가를 연주하셨는데 참 아름다운 연주를 해주셨다.
그리고 둘째 따님의 특별찬송은 그때까지의 삼청교회 음악을 업그레이드 시키고 말았다.
그 누님 덕에 비로소 발성을 생각하게 되었으며 모든 청년들이 멋있는 성악가의 음악을 흉내내게 되면서 성가대도 발전하게 되었다.
한병일의 베이스는 멋있는 저음으로 성가대에 안정감을 주었으며 누님과 함께 성가대가 처음으로 모양을 제대로 갖추게 되었었다.

가끔 군목으로 계시던 장기천 목사님이 외출나오시면 설교를 해주시곤 했는데 우리는 그때 처음으로 본훼퍼, 니체 등 신학자나 사상가의 이름과 사상을 들으며 뭔가 알듯말듯 아리송해 하면서도 어떤 새로움을 느끼곤하였다.
장기천 목사님은 감리교 신학대학을 1등으로 입학하고 1등으로 졸업했으며 미국유학을 마친 감리교 준재였다.
그러나 교회가 화재를 당했을 때 공부한 노트가 모두 타버려 퍽 애석해했다.
책은 다시 살 수 있으나 노트는 다시 구할 수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 후 목사님의 설교에서 신학자나 신학사상 얘기는 거의 사라졌으나 오히려 설교는 더 은혜로워져서 평동교회를 크게 부흥시켰고 동대문교회에서 사역하시며 감리교 감독회장 까지 하게되신 것은 아이러니컬 하게도 모든 설교자료가 소실 된후 성경과 기도에만 매달린 이유때문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한기모 목사님은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 시신을 기증하시었다.
지금도 목사님의 뼈가 의과대학에 보관되고 있다고한다.
삼청교회를 떠나시고 삼선교회를 거쳐 청량리교회 에서 마지막 목회를 하시었는데 삼선교회 수석장로인 문억 장로는 자기가 고등학교 때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 한 목사님에게서 세례를 받았다고 하면서 삼청교회 이후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막내 한병칠이 목사님이 되었다는 얘기는 들었으나 아직 만나지 못하였고, 사모님은 큰아들 한병일이와 미국 쌘프란시스코에 사시면서 우리 어머님이 그곳을 방문했을 때 크게 반가워 하시면서 삼청교회 근황을 물으셨고 병일이는 친구의 어머니가 오셨다고 어머니를 모시고 나가서 미국식 큰 잔치를 베풀어 준 일이 있었다.
그러나 90을 훨씬 넘기신 사모님이 아직 생존해 계신지 여부는 무심한 죄인 삼청교인은 안부를 모른 채 또 다른 새 봄을 기다리며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