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12일 화요일

58. 겨울에 여름이야기

겨울에 여름이야기
삼청교회의 옛날이야기

1950년 3월1일
3.1.절 기념행사가 동대문 운동장에서 있었다.
기념행사가 끝난 후 종로 화신 앞까지 시가행진이 있었는데 3.1.절이라고 하여 <3 .1.="">이 선두에 서게 되었다. 
<3 .1.=""> 중에서도 북부단부(삼청동,팔판동)가 호르라기를 하나씩 입에 물고 
호르라기를 불면서 지휘자의 지휘봉 싸인에 맞추어 제일 선두에서 행진하였다.

머리에는 붉은 글씨로 3.1.정신이라고 쓴 흰띄를 두르고 3.1.운동가들의 고생을 생각하자며
발에는 짚신을 신었다.
대열은 동대문운동장에서 종로 화신백화점 앞까지 이어졌었다.
가슴을 쫙 펴고 행렬의 제일 앞에 섰던 우리는 무슨 이상한 기분과 보람같은 것을 느꼈다.

1949년 여름 나는 동네 아이들과 함께 <3 .1.="">에 입단했다. 
임광남 장로가 교회 큰길 건너편 골목 유명한 복주우물 근처에 살았던 팔판동 토박이이니까
어쩌면 이 일을 혹시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매일 저녁 지금의 총리공관 앞에 있던 구미집에 방 하나를 빌려 쓰던 사무실에 모여서
군가를 배우고 마당에서 제식 교련도 하였다.
가끔 비상나팔을 불면서 비상소집 훈련도 했었다.
1950년 봄이 되면서 소년단 복장이 나온다고 하였다.
그 중 중대장 노릇을 하던 중학생이 하나 입고 왔는데 카키색 유니폼에 색실이 달린
호르라기를 달고 미군이 쓰는 것 같은 <할로모자>(챙없는 모자를 우리는 그러케 불렀다)를
쓴 모습이 퍽 근사해 보였다.
그런데 공짜로 줄줄 알았던 유니폼이 적잖은 돈을 내야한다는 바람에 모두 실망하고 있었다.

그해 여름은 무척 더웠다.
모두들 땀에 절어 옷을 짜서 입을 정도로 더운 여름이었는데 6월 25일 드디어 전쟁이 터졌고
점심은 평양에서 먹고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는다고 큰소리 치던 정부는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가 버린 채 서울은 3일 만에 공산군 세상이 되어 버렸다.
그해 여름, 3.1소년단의 비상나팔은 한 번도 울리지 않았다.
하기야 중대장으로 있던 예비역 소위도 숨어버렸을 때이니까 누가 나팔을 불라고
지시할 사람도 없었다.

곧 <팔판동 인민위원회>가 조직되고 팔판동에서 제일 큰 집에 살던 30대의 젊은이가
위원장에 취임하였다.
그리고 <여성동맹위원장>에는 우리 아래 집에 살던 산파가 취임하였다.
거의 매일 이런 저런 회의가 소집되었고 모든 집회는 금지되었다.

그날부터 삼청교회 예배가 중단되었다.
그 때 할머니(길영숙 권사)께서는 주일이 되면 한복을 깨끗이 갈아입고 전 처럼
성경과 찬송을 들고 예배당에 가시었다.
예배당에 가실 때마다 가족들과 여러차례 싱강이가 벌어졌다.
<집에서 예배드리세요>
<집에서 기도해도 하나님은 다 들으실거에요>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하시면 할머니의 대답은 단호하였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무엇이 나쁘다고 못하게 하는지 모르겠다.
막지마라. 사람이 한번 죽기밖에 더하겠니?>
할머니는 빈 예배당에서 혼자 기도하고 찬송하고 성경읽고 하시면서 한 시간의 예배를
드리고 오곤 하시었다.
우리는 할머니의 찬송소리가 밖으로 들릴까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다리곤 하였다.
어떤때는 교회에서 나오시다가 그들에게 발각된 적이 있었다.
<할머니 지금 뭐하다 나오시오?>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나옵니다>
<할머니 예배를 금지시킨 것 모르시오?>
<압니다. 그러나 나는 예배를 중단 할 수가 없어요>
<할머니! 젊은 사람이 그런 소리를 했으면 벌써 목에 칼들어갔오!!>

더운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
며칠을 우당탕 거리면서 총알과 파편이 쌩쌩거리고 날아다니는 바람에 지하실에
몸을 피해야했던 우리는 중앙청에 태극기가 걸린 것을 보고서야 국군이 입성한 것을 알았다.
그리고 석 달후 1월 4일 우리는 온 가족들이 보따리를 이고지고 피란 길에 올랐다.

5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또 1월4일이 다가온다.
산에서도,들에서도, 얘배당에서도, 기도원에서도 우리는 마음 껏 소리질러 기도 할 수 있고
내 힘껏 재주껏 소리질러 주님을 찬양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걱정이 되는 것은

을 보면서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 때와 입장이 달라진 것은, 내게는 많은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삼청교회 교우들과
많은사랑하는 친구들과 이 땅에서 복받고 살아야 할 아들과 딸과 사위와 손자가 있기 때문이다.
모쪼록 주님의 은혜로 평안한 날들이 우리에게 계속 주어져야 할 터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