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변대회
삼청교회의 옛날이야기
1950년대 중반 삼청교회 삐율라회(중등부, 고등부, 청년부 연합기관)주관으로 웅변대회가 있었다.
작은 양철지붕의 판자집교회였으나 서울 시내 여러교회에 공문을 보내어 접수를 받은 결과
약 20여교회가 참가하였다.
작은 교회가 어떻게 그런 행사를 주관하였을까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나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 당시 회원들 중에는 중동고를 졸업하고 연대 철학과에 재학중이던
서성태(현재 그리스도교 목사)선배와 사촌 서성국, 후에 아나운서로 이름을 날린
선린상고의 송한규, 서울고의 안병훈(현 조선일보 부사장), 성동고의 이구연, 용산고의 김해성
등이 있었는데 모두 다니는 고등학교에서 웅변으로 일가견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 중 서성태 선배는 박정희시대 공화당 공천으로 국회의원에 출마하여 명연설을 하기도 했었다.
그럴 정도니 교회만 작았지 웅변대회를 주최할만큼 당당한 실력들이 있었다.
물론 1등은 삼청교회출신이었느데 누구였는지 기억이 나지 안는다.
아마도 송한규가 아니었나 추측된다.
연사로 참가했던 이강소(현 도봉교회 장로)선배는 교회에서 제일 인기가 있던 수도여고 출신
조영자 선배와 연애결혼을 하게되었으니 결국 웅변대회가 연분을 맺어 준 셈이었다.
그 때 심사위원으로 오신 분이 있었는데 나중에 총평을 해 주면서 한 사람씩 장단점과
고칠점을 얘기해 주었다.
내게는 그 때 얻은 상식이 직장생활 할 때와 권사로 설교를 하게 될 때 큰 도움이 되었다.
송한규가 아나운서가 되었을 때 일이다.
그는 <이 주일의 노래>란 프로를 맡았었는데 여기서 이주일은 코미디언 이주일이 아니고
매 주일 한 곡씩 방송국에서 선정한 새 노래를 소개하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방송이 시작되면 아나운서가 시그널 뮤직과 함께 <이주일의 노래>란 멘트가 나오는데
송한규는 웅변하듯 인토네이션이 너무 강하여 우리는 그것을 웅변을 하던 습관 때문이라고들 하였다.
그 후로는 웅변을 하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1회로 끝나고 후로는 개최되지 안았다.
그보다 제일 큰 이유는 군사정부시절 말하는 것이 통제되는 사회였으니 누가 웅변을 좋아하드래도
감히 웅변대회를 열자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오늘 날 우리 사회는 토론하면서 생각을 해야할 일이 너무 많다.
서로 자기의 소신과 주장을 펼치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 논리적으로 토론해 보는 것,
그것은 바로 민주주의 연습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