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 8일 월요일

26. 사경회

지금은 모두 심령부흥성회라는 말을 쓰지만
6.25 전후 까지만 하여도 모두 사경회라고 했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저는
할머니와 어머니를 따라서 사경회에 참석하곤 했습니다.

지금의 부흥회는 신유의 은사를 중심으로한
방언과 통변, 예언 등의 은사중심의 집회이지만
전에는 주로 성경을 심도있게 공부하는 집회였습니다.

집회는 월요일 저녁에 시작하여서
매일 새벽기도, 아침 10시, 저녁 7시 등 세번 있었고
금요일 밤 철야집회(새벽5시까지 밤을 꼬빡 새우는 집회)를 하고 끝나거나
토요일 새벽기도 혹은 아침집회를 마치고 끝나곤 하였습니다.
그때는 12시 통행금지 시간이 있어서
그 안에 집회를 끝내거나 통행금지가 끝나는 새벽 4시 이후에
집회를 마쳐야 했습니다.

아침 10시~10시반에 시작한 집회는 오후 1시~2시까지 계속되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오후 집회는 없었고 대신 예배당 안에 숙식을 하고 있는
중환자들을 위한 안수기도가 있었습니다.

그때만 하여도
화신 뒤에 있던 중앙교회나
지금의 자교교회 이외에는 큰 예배당을 가진 교회가 없어서
의례 그 두곳 중 한곳에서 집회가 있었습니다.
(동대문교회는 동대문지방이었습니다)

일년에 여름과 겨울에는 교회별로 성경학교가 있었고
장년들은 주로 따듯한 봄이나 여름에 사경회로 모였습니다.

저녁 7시경부터 시작되는 집회는
4시 지나면서 모이기 시작하여
멀리서 온 숙식하고 있는 환자들 때문에
6시경이면 예배당 내부 자리는 벌써 없었고
그 이후에 오는 사람들은 마당에 가마니를 깔고 그 곳에 앉아야 했으며
마당에는 큰 스피커가 준비되어서
강사의 얼굴은 대면하지 못한채 예배를 드리곤 하였습니다.

병이 낳았다고 간증하는 사람은
일년에 한 두명 정도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집회를 3일로 줄여서 하고
신유간증도 많이 하는 지금보다
그 때가 더 은혜스럽게 기억되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왤까

나만 그런가 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자기들도 그렇다고 했습니다.

그때는 예배당 내부에는 의자가 없고 방석을 깔고 앉았으며
집회시간도 훨씬 길었습니다.
7시부터 시작하면 10시~11시나 되어서 끝났습니다.

그런데 가마니 위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던 그 때가
지금보다 훨씬 더 은혜스럽게 기억되고 있습니다.

왤까

아마도
그때의 강사 목사님이나 사경회 분위기가
지금보다
더 경건하고 거룩한 분위기가 아니었었나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주님을 만나고 주님과 동행하는 일은
외형상 나타나 볼 수 있는 은사와 기적 때문이 아니라

주님을 만나뵙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우리 자신들의 경건한 마음과 삶의 자세에 달려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심령을 부흥시키기 위한 집회가
물질의 풍요를 가저오게하고 물질이 교회보다 더 커지는 것보다는
성경을 심도있게 공부하고 우리의 죄를 깊이 회개하는 것이
주님을 만나고 동행할 수 있는 경건한 예배가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흔히
방언을 못하면 영적체험의 기초도 안된 사람이라고 우습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방언을 못하여도 더 은혜스러웁고 경건한 삶을 살아가는 크리스쳔들을 더 많이 볼수가 있습니다.

깊은 영적체험들이 자기 중심적인 독선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그 교만함이 오히려 교회의 평화와 질서를 무너뜨리는 원인이 되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많이 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