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대한감리회는 몇번의 개혁운동이 있었습니다.
6.25. 이후 1950년대의 호헌운동과 1970년대의 성화운동
그 후에도 몇번의 시도가 있었습니다.
두번은 총회를 별도로 조직하고 교단분리까지 시도하였으나
모두 도중에 화해하고 도로 통합하고 말았습니다.
그 전부터 지금까지 개혁을 웨치는 소리는 항상 있어 왔습니다.
김정복 목사님이 권사가 되었을 때
담임목사님이 분리된 교단의 초대 감독이 되었습니다.
교단이 분리되고도 싸움이 그치지 않아
목사님은 교단일로 늘 바쁘게 다닐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교인들은 그 소용돌이를 싫어하고
하나 둘씩 빠져나가 많은 교인들 중
50~60 명만 남게 되었습니다.
담임목사님은 자기의 하는 일이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최선을 다하였으나
교회가 황폐해 지는 것을 보고는
스스로 목회에 실패한 사람이라고 자책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교회학교장, 재정부장, 성가대장, 청년부장 등을
겸임하고 있던 김정복 권사는
모든 것이 기도가 부족해서 생긴 일이라고 믿고서
교인들과 함께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교회학교 교사들과 일주일
성가대원들과 일주일
청년들과 일주일
가까운 임마누엘기도원에 가서 기도에 매달렸습니다.
한달이 지났을 때
교회는 평안을 되찾았고
모든 교인들은 담임 목사님과 함께 힘을 내어
은혜스러운 교회로 새출발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김정복 권사는 CCC 간사로 있으면서
대학생들을 상대로 성경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교회가 안정을 되찾고 다시 부흥하기 시작하였을 때
은행대리로 있던 김정복 권사는 미국선교사로
미국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 후 자주 만나지 못하고
년말이면 크리스마스 카드를 주고 받는 정도로 있었는데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된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십여년 전 TRES DIAS 관계로 미국 LA를 방문했을 때
전화번호라도 알고 있으면 목소리라도 들을 수 있을 터인데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호텔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다가
그곳에 마침 은행직원들과 아침성경공부를 하러 왔던
김정복 목사님과 극적인 만남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김정복 목사님은 지금 기도학교 교장이 되어
세계 여러 곳에 다니며 기도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계십자군선교단을 조직하여
청년들과 함께 일주일, 보름 혹은 한 달 일정으로
아프리카 오지를 다니며 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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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복 목사님은 지금 기도에 대하여 가르치며
스스로 선교사가 되어 복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그의 집은 궁정동 1번지
지금 청와대 본관이 있는 자리였습니다.
그는 구 한말 김홍집 총리의 직계 종손입니다.
그는 지금 기도를 가르치는 선교하는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 모습이 고대광실 큰 집에서 명문가의 후손으로
상류사회에서 활동하는 모습보다
아주 훨씬 더 훌륭하고 성공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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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에 한 두 번씩 귀국하여
기도학교를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나오면
교단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합니다.
그의 답은 뻔합니다.
그는 웃으면서 이렇게 이야기 할 것입니다.
이 사람아
뭘 그리 걱정하나
모두 하나님께 맡기고 열심히 기도하세
하나님이 다 섭리해 주실 것일세
다 우리가 기도가 부족해서 생기는 일들일세
그래도 이번에 나오면
한 번 꼭 물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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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LA에서 기도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선교사 김정복 목사님은
청운초등학교 동창입니다.
청운초등학교 동창들 9명이 55년째 만나고 있는데
김정복 목사님은 해외에 있는 고정 멤버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 교단이 갈라져서 싸울 때
개혁을 외치면서 분리되 나간 교단에 소속되어
교우들과 함께 고생하며 눈물을 흘리던 공통점이 있습니다.
의를 위한 투쟁은 있어야 겠지만
그 와중에 교인들이 다 떠나가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교인들이 다 떠난 텅 빈 예배당에는
더불어 의를 위하여 토론할 사람이 남아있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