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4월 22일 화요일

51. 우리가 하나님께 봉헌할 수 있는 것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황선원 장로님

황선원 장로님은
연세대 신과대학 종교음악과에서 성악을 전공한 분입니다.
그분은 곽상수 교수님에게서
찬송가에 대하여 특별한 교육을 받으신 분입니다.
교회에서 성가대를 지휘하면서
항상 찬송가에 대한 이야기를 설명해주곤 하였습니다.

찬송가에 수록되어 있지 않더라도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이 있으면
그것은 찬송가이고,
비록 찬송가에 수록되어 있어도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이 없으면
그것은 찬송가라고 할 수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다니엘과 세 친구라는 남성 4중창단을 함께 하였었습니다.
4명중에 누가 다니엘이냐고 물으면 항상 서로를 가리키며
저분이 다니엘이고 우리는 세 친구라고 말하곤 하였습니다.
황장로님 부부는 학교 선생님들입니다.
장로님은 고등학교 음악선생님이었고
부인 권사님은 초등학교 선생님입니다.

황장로님은
평소에 위궤양으로 늘 약을 복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점점 악화되어 위암이 되는
바람에 위절제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몇 년이 흘렀습니다.
한 5년쯔음 되었을까?
모두 완쾌를 기다리고 있을 즈음
황장로님은 병이 악화되어 누어있게 되었습니다.

황장로님은 생명이 다하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베이스인 황장로님은 찬송가를 들고 일어나서
1장에서부터 한곡 한곡 정성을 다하여 찬송을 부르며
하나님께 봉헌하였습니다.

마지막 힘을 다하여 전곡을 부르는데는
한 열흘이 걸렸습니다.
1장 만복의 근원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여
550장 주너늘 지키시고
그리고 558장까지 8곡의 아멘을 부르고서
몇 시간 후 조용히 눈을 감고
평안한 모습으로 주님의 품에 안기었습니다.

그것을 본 그 교회 교인들은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아! 우리도 마지막 순간에
우리가 부를 수 있는 찬송가를 하나님께 봉헌하고
주님나라에 임할 수 있을까

저는 부러운 마음으로
황장로님의 마지막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의 마지막 날에
나는 과연 무엇을 주님께 봉헌 할수 있을까?

2008년 2월 8일 금요일

50. 실천하는 신앙인 J 장로님

기독교장로회 소속 J장로님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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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사태가 시작되기 전입니다.
영등포에 있는 무역회사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회사의 사장은 나와 동년배였는데
수유리에 있는 기독교장로회 소속 XX교회의 장로이었습니다.
그는 가끔 거래처 사장들과 소주 몇잔을 마시곤 하는 분이었습니다.
얼핏보면 껍데기 장로같이 보이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실제 삶의 현장에서는 정 반대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매일 새벽기도를 하였으며
매주 월요일 마다 전 직원이 참가한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전철을 함께 타고가며
전철을 탔을 때 어떻게하면 자리를 양보받지 않을 수 있는가
그 비결을 알려준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앉아있는 앞에 가서 서있으면
젊은 사람들이 앉아있지 못하고 일어서게 되니까
출입문 옆에 있으면 그런 일이 안생긴다는 것입니다.

4.19때 XXX대학교 총학생회장을 지낸 그분은
함께 학생운동을 하던 다른 대학교 총학생회장들이
대부분 정계에 진출하고 있을 때에
스스로는 그 길을 포기하고 학업과 사업에만 열중하신 분입니다.

심리학을 전공하고 모교에서 강의까지 하신분이며
미식축구도 하고 4중창단도 하던 재능이 다양한
거구의 체구를 가지신 분인데
늘 겸손해 했습니다.

길을 가다가 누구와 부딧치는 일이 있으면
무조건 먼저 고개를 숙이며
죄송합니다!
하는 것이 습관이 된 분입니다.

한번은 먼 곳에 차를 타고 다녀 온 후
그 다음날 회사에 출근하여 내게 말해 주었습니다.

어제 참 멍청한 일을 저질르고 왔어요
네거리에서 우회전하는데 다른 차와 작은 충돌이 있었습니다.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신호를 제대로 지켰고
그 사람이 잘못을 한 것인데
내가 무조건 먼저 내려 그에게 사과하고 배상을 약속하고
명함까지 주고 왔어요
어떻게 하지요?

나는 웃으면서 대답해 주었습니다.
장로님다운 처리를 하고 오셨군요.^^
할 수 없지요 뭐.
평생 그렇게 살아오신 것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수금하러 갔던 젊은 직원이 수금한 돈을
친구들과 술을 먹고 출근을 며칠째 안하니까
오히려 자기를 질책하고 있었습니다.
자기가 윗 사람으로 본을 보이지 못하고
직원의 생활비를 책임진 사장이
월급을 너무 적게 주어서 그런 일이 생겼으니까
다 자기의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그 때나 지금이나 술을 한잔도 먹지 못합니다.
크리스쳔의 양심으로 금주한 것이 아니라
체질에 맞지 않아서 배우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J 장로님은 항상
자기는 엉터리이고 나를 좋은 신앙인이라고 추켜새우곤 하였습니다.

장로가 된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사업을 하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매일 새벽 하나님 계신 곳에 나아가
싫것 눈물을 흘렸지요
그랬더니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하는
신앙좋은 사람이라고 장로를 시켜주더군요.
그 일을 생각하면 부끄러워 못견디겠어요.

J 장로님은 헌금을 많이 내서 장로가 되신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새벽에 눈물을 흘리며 기도한 것이
목사님과 모든 교인들에게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

나는 그 J 장로님을 만나면서
신앙에 대하여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면서 사는 사람은
아무리 겸손해 하며 자기를 낮추어도
그 삶의 모습이 돋보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교회의 중한 직분을 가졌어도
삶의 현장에서 말씀대로 실천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멋있는 말을 많이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 잘못이 자꾸 들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참된 신앙인이란 어떤 모습의 사람일까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모든 사람들과 살아갈 때에
마치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것처럼
그 하는 말을 늘 조심하고
주님의 가르침을 겸손하게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2008년 1월 21일 월요일

49. 화도 월성교회

화도휴게소 근처 월성교회 김풍호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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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청평 방향으로 가다가 화도휴게소 근처에 가면
왼쪽으로 논과 밭이 보이고 그 가운데 작은 교회 건물이 보입니다.

그곳은 김풍호 목사님이 시무하시는
통합측 장로교회 월성교회입니다.

넉넉한 체구의 목사님은 늘 웃음이 떠나지 않고 있으며
누구와도 아주 편하고 쉽게 이야기를 나누곤 하시는 분입니다.

언젠가 웃으면서
농담하듯 깊은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농촌 목회자의 아들로 태어나신 목사님은
졸업 후 절대로 농촌목회는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셨다고 합니다.
그 가난과 비젼 없는 농촌의 생활이 싫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졸업을 앞두고 목회지를 위하여 기도를 할 때에
농촌 목회자의 아들이 농촌을 버리면
누가 농촌으로 갈것인가 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농촌 목회를 택하셨다고 합니다.

그 교회는 농촌교회로는 비교적 큰 교회로
150명 정도의 교인들이 있는 교회입니다.
목사님은 지금도 농촌을 목회지로 택한 것에 대하여
불만이 없다고 합니다.

단지 노회나 총회가 있을 때에
도시목회를 하는 친구들은 단 위에 앉아 있고
농촌목회를 하는 자기는 단 아래에 앉아 있는 차이를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럴때면
내가 과연 바른 선택을 했는가 생각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저는 즉시 말씀드렸습니다.

김풍호 목사님은 진정한 목사님입니다.
왜냐하면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 소명에 따르셨기 때문입니다.

모든 성도들은
목사님같은 분들을 진정한 마음으로 존경합니다.

목사님은 웃으면서
정말입니까
나를 위로 하려고 일부러 그러시는 거지요

아닙니다
모든 성도들이 같은 대답을 할 것입니다.
못 믿으시겠으면 아무나 붙들고 물어보세요
나와 같은 대답을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