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6일 금요일

140. 미움에 대하여

너는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이웃을 인하여 죄를 당치 않도록
그를 반드시 책선하라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하라
나는 여호화니라

(레위기 19장 17절~18절)

139. 말을 많이 하지마라

그(랍반 가므리엘)의 아들 심온이 말한다.
내 평생 현자들 사이에서 자랐으나 
성한 몸을 위해 
침묵보다 나은 것은 보지 못했다.
성서해석이 근본이 아니라 행함이다.
말을 많이 하는 자는 죄를 일으킨다.
(선조들의 어록 1장17)

말을 많이 하는 곳에 
사악함이 끊이지 않는다.
(잠언 10장9절)

여러분은 말을 할 때
예는 예라고
아니오는 아니오라고 하시오.
여기에 더 보태는 것은
악함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37 절)

2013년 11월 23일 토요일

138.어느 선배 예수쟁이의 충고

멋있고 존경받는 
교인(church member)이 되려고 하지 말고
그냥
예수 믿는 사람(christian)이 되어라 

2013년 11월 16일 토요일

137. 위대한 수수께끼


고난 중에서 사랑의 눈물을 흘리고
고통 중에서 행복을 설명하시는 분

굶주림 속에서 하늘나라를 증거하고
질병 속에서도 영생을 확신하시는 분

높은 곳을 원하는 자에게
무릎꿇어 디딤돌이 되어주고
깊은 곳을 원하는 자에게
곡괭이가 되어주시는 분

자전거를 타고와서
자동차을 타고 온 사람에게 복을 빌어주시고
좁은 골방에서 자고 나와
더 큰 아파트 당첨되게 축복해주시는 분

하도 많이 맞은 왼뺨 대신 오른 뺨을 돌려대려니
다치고 아픈 목때문에 얼굴을 돌리지 못하시는 분

겉옷을 달라는 이에게 벗어줄
속옷 살 돈이 원래 없는 분

숨이 넘어가는 순간에도
다른 사람의 행복을 축원해 주시는 분

왜?
왜?
왜?

그분은 과연 누구였을까?
누구였을까?

136. 明德有新과 道


강원대학교 대학원장을 끝으로 은퇴한
친구 이희경 교수의 오피스텔에 들렸습니다.

10여평되는 방안 벽에는 책장이 꽉 들어차있고
그 안에는 많은 책들이 차고 넘쳐
책상과 의자 주변에까지 쌓여있었습니다.

커피를 나누며 한 참 이야기를 하다가
봉투에서  서예가 竹峰 黃晟現 님의 글을 두장 꺼내놓더니
한장을 택하여 갖으라는 것입니다.

유명한 서예가의 글을 값을 따지지 않고
내게 선듯 주는 것은
그가 나를 글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는
明德有新 이라고 쓰여있고
다른 하나는
道라고 쓰여있었습니다.

明德有新 :
맑고 깨끗한 덕이 있는 사람에게서
미래를 위한 새로운 것을 찾을 수 있다.
는 뜻입니다.

현재 가정이고 사회고 교회를 막론하고
지도자는 있으나
정말 맑고 깨끗한 사람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미래를 위하여 새롭게 발전하려고 하니
지루하게 제자리 걸음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저는 明德有新 대신 道를 택하였습니다.
종교인으로 살아가기 위하여서는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길을
참고 견디며 가는 자세가 필요할 것 같아서 입니다.

그러다 보면
明德有新에 이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明德有新의 장소는
우리가 목적하고 있는 하늘나라라고 생각해봅니다.

道를 택한 나에게
친구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 사람아!
明德有新은 내가 노력하는 것이지만
道는 정말 어려운 것인데....

이 세상에서
참되고 바른 길을 어떻게 찾는단 말인가?

135. 왕과 신하


어느 모임이든지
무슨 이야기를 하려면
모인 사람들의 인격과 성품에 따라
그 내용이 다르게 마련이다.

종교인들의 모임에는 선과 악이 주제가 되고
법률가들의 모임에는 의와 불의가 주제가 되고
예술가들의 모임에는 아름다움과 추함이 주제가 된다.

육체의 힘이 있는 사람들은 대결하는 이야기
부자들의 모임에는 재물을 모으는 비상한 재주에 관한 것 등

그러므로
나라를 다스리는 왕의 주위에는
아무나 있어서는 않된다.

종교인은 아니더라도
의와 불의에 대한 개념이 뚜렷하고
삶의 철학이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자가 아니라
이웃의 평안을 늘 생각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 신하들과 매일의 삶을 사는 동안
왕은 그런 이야기들을 하게 될것이고
그런 결정으로 백성을 행복하게 할수 있는 것이다.

왕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자가 아니고
백성의 유익을 위하여 일하는 자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134. 덕수궁 중화전


덕수궁 중화전은
왕의 즉위식이나 큰 행사를 할때에 사용하던 곳이다.

그 앞 돌로 된 뜰에는
동쪽과 서쪽에 품계석品階石이 있는데
동쪽 반열에는 문관이, 서쪽반열에는 무관이 도열해 섰었다.
이른바 양반이라는 말이 이곳 품계석에서 나온 말이다.

임진왜란으로 의주로 피란갔던 선조가
왕족이 살던 이곳을 임시 왕의 거처로 사용하다가
왕궁이 되었다고 한다.

부귀영화
그 모든 것이 있던 곳이다.
사람을 죽이고 살리고
귀하게도 하고 천하게도 하며
권력을 주기도하고 빼앗기도 하던
무한 권력이 있던 곳이다.

오늘도 그 무한 권력과 부귀영화를 향한 사람들은
옛날과 대동소이하다.
모양과 스타일만 다를뿐..

돌로된 품계석은 말없이 서있다.
그는 마음이 없는 돌이다.
옛날에 그 앞에 서있던 사람들도
돌과 같은 존재들이었을 것이다.

마음이 없는 돌처럼
그 위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이
시키는대로만 하면 되었을 터이니까..

왕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
우리는 그것을 나라를 위하는 충성이라고 가르치고 배웠다.
과연 무엇이 나라를 사랑하고 위하는 충성인가

품계석의 돌이 마음이 있다면
말해 주련만...

133. The Kingdom of Heaven


영화의 제목이 나를 이끌었다.
하늘의 왕국
하나님의 나라

어떤 곳으로 표현하였을까?

성지 예루살렘을 두고
십자군과 이스람국가들과의 쟁투를 그린영화이다.

유럽에서 온 십자군과 현지 중동 이스람국들과의
끔찍한 전쟁을 그리고 있다.

내용은
어느 영주의 피를 갖고 태어난 한 대장장이가
아버지를 따라가 영주의 대를 잇고 전쟁을 한다.

성을 공격하던 이스람국은 많은 군사들이 있지만
사상자를 많이 내고 성을 함락시키지 못한다.
결사항전을 하던 십자군 장군은
군인들과 성안의 모든 백성을 안전히 피신케하여준다는
조건으로 협상을 성공시키고 성을 내어준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의 믿음과 마음속에 있다고 믿는다.
어떤 명목으로도 고귀한 인간의 목숨과 바꿀 수는 없다고 믿고
부하들과 성안 백성들의 목숨을 살리고는
성을 포기한다.

이스람 왕은 성을 정복했다는 명분을 얻었고
십자군 수비장군은 백성들의 생명을 보장받는 실리를 얻는다.

누가 진정한 승리자인가?

협상을 성공시킨 이스람왕은
성지 예루살렘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한편 자기의 모든 것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즉 국가경영을 위하여서는  별 쓸모 없는 곳이지만
백성을 뭉치게하고 통치하기 위한 수단으로
꼭 필요하기도 하다는 말이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는 어떤 곳인가?
중동은 지금도 전쟁중이다.

영국의 아서왕이
십자군으로 성지회복을 위하여 대장간을 지나면서
옛 장군인 대장장이에게 함께할 것을 권유하지만
그는 자기는 대장장이라고 하면서 동행을  거부한다.

아름다운 인생

그는 영주도 장군도 포기하고
왕의 동생이었던 아내와
대장장이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132. 철학적으로 접근할 수 없는 믿음


철학자 Wittgenstein은 『진리함수적 논리』를 설명하면서
『이상적인 언어는 일체의 애매성과 다의성이 배제되고
한 언어적 표현의 문법적 형식이 그것의 논리적 구조와
일치하는 언어체계이어야만 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의 『분석철학』은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신학적 명제와 윤리적 명제를 부정함으로써
Wittgenstein에 있어서
철학과 종교는 공존 불가능하다고 믿고 있었다.
...........................................................................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기독교인들은 이 대 명제로부터 모든 것을 시작한다.
그러나 철학자들은 하나님을 증명하지 못하므로
그 이상을 나아가지 못한다.

우리는 기독교 사상이라는 이름으로
믿음의 철학적 접근 노력을 볼 수가 있다.
그러나 합리적인 것 같은 이론도
다른 철학자에 의하여 그 논리가 공격 당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
성경에서는
이 세상의 철학이나 과학 등 모든 학문을
초등학문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이 세상의 어떤 경험이나 지식으로도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너무나 크신 분이기 때문에
스스로 표현하시지 않는 한 알 수가 없다.
우리는 그것을 계시라고 말하며
계시를 통하여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을 뿐이다.

하나님은 누구신가?
철학적으로
세상의 학문으로 설명하고 정의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하나님은 체험적으로 누구나 만날 수 있는 분이다.

그것이 믿음이다.

2013년 11월 15일 금요일

131. 우주 속의 나와 인간의 행복


작성일: 2005.4.20.

(고교동창들의 모임인 수요회 참석)
식사 후 옆에 있는 커피숍으로 옮긴 우리는
식사하면서 못 다한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마침 오경환 교수가 그리는 그림의 주제가 우주라
그림의 내용을 물었다.
우주를 보면서 우주 속에 있는 존재인 나를 발견한다는 것이다.

그 광활한 우주를 보고 있는 순간
우주 속의 나를 본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작은 물질 속에서 우주를 발견하고
그 곳에 존재하는 생물인 나를 발견한다고 하는데
오경환 교수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내용』은
우주인 것이다.
얼마나 크고 통쾌한 일인가...

동석한 이희경 교수는
오경환 교수가 한번 낮에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밤이 맞도록 계속 마셔야 한다고
웃으면서 이야기 한다.

어떻게 취할 수가 있는가..
우주를 그 마음 속에 담고
우주 속에 사는 큰 사나이가
어찌 술이 취하게 할수가 있겠는가...

그러면
참된 행복이란 무엇인가?

이희경 교수가 강의를 하였다.
심리학에서는 3종류의 행복을 설명한다고 한다.

1) euphoria(다행감)
2) exaltation(성취감)
3) ecstasy(극치의 희열)

그런데 위의 3가지 중에서
ecstasy의 내용이 중요한데 다시 3가지로 분류한다고 한다.

1) 마약에 의한 ecstasy
2) 종교적 ecstasy
3) sex에 의한 ecstasy

각자의 행복을 추구하는 내용과 방법에 따라
그 사람의 삶과 인격이 만들어 진다는 것이다.

나는 그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내 스스로를 반성해 보았다.
과거의 나의 삶은 다분히
종교적 ecstasy를 추구했던 경향이 있다.

과연 무엇이 바람직한 인간의 행복일까?

euphoria인가?
exaltation인가?
ecstasy인가?
 

2013년 11월 14일 목요일

130. 월요일의 기도

주님
월요일이 되었습니다.

어제 주님의 날
주님께 예배드리면서 받은
주님의 은혜를

어두운 곳에 햇빛을 비치는
달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고대하는 이들에게
전하게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하여 대신 죽으신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129. 토요일의 기도

주님
토요일이 되었습니다.

사람은 죽어 자기의 근본인 흙으로 돌아가는 것을
모두 뻔히 알면서도
살아있는 동안 행복하게 살지 않고
시기와 질투, 원망과 다툼으로
스스로를 불행하게 하고 있습니다.

주님
우리가 흙으로 돌아가기 전
우리 곁에 늘 계신 주님과 사귀며
기쁜 하루하루를 살아가게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위하여 대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128. 금요일의 기도

주님
금요일이 되었습니다.

금같이 귀한 날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우리의 삶이
어느 한 날이라도 귀하지 않은 날이 업겠지만

주님이 나를 위하여 대신 죽으신
이 날이
나의 삶 속에서
가장 귀한 금같은 날임을 고백합니다.

오늘을 살면서
나를 위한 주님의 희생을 묵상하며
금같이 귀한 삶을 살아가는
하루가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나를 위하여 대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127. 목요일의 기도

주님
목요일이 되었습니다.

나무는 10년이 되면
쓸모있는 재료가 되어
집도 짓고 배도 만들고 상자도 만드는데

사람들은 10년, 20년,
수십년이 되어도
아무 쓸데가 없는 사람들이 있군요

사랑의 주님
믿음이 점점 커지고 자라서
주님 보시기에 합당한 재료가 되어
주님나라 사역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126. 수요일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수요일이 되었습니다.

온 세상에
시기와 질투, 원망과 분노가 가득찼군요.
세상 모두
주님의 사랑으로 물같이 덮이게 하여 주시옵소서

깊은 바다 속에 모두가 잠기듯
모든 분요가 멈추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에 참 사랑을 가르쳐 주시고
희생당하신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125. 화요일 밤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불같은 성령을 기다리는
화요일 밤이 되었습니다.

나의 마음 속에 임하사
나를 감화시켜 주옵시고
나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여
주님 앞에 성별된 믿음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124. 오늘을 건너 내일을 마중나갈 때에도


주님
밤이 되었습니다

이제 잠을 잘 시간인데
잘 수가 없습니다

그 많은 세월동안
그 많은 기회와 은혜를 주셨는데도
하나도 성취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도
늘 새 날을 주시고
한 없이 참아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을 건너
내일을 마중나갈 때에도 함께 하여 주옵시고
깰 때에 주 안에서 찬양케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03.11.23.

123. 서로 헐뜯는 사회


하나님 아버지
또 토요일이 되었습니다.

지나간 일 주일 동안
우리의 삶을 반성해 보니
너무 엉망진창이었습니다.

정치가도 종교인도
서로를 헐뜯고 있어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서
대신 죽어 주셨는데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용서해 주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라고 기도하면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용서해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여
우리의 심령을 성령께서 성별시켜주사
주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게하여 주시옵소서

이 세상은

구원받은 사람과 구원 받을 사람이 있고
사랑받는 사람과 사랑받을 사람만이 있음을
알게하여 주시옵소서

그것이
구원받은 우리 모두의 삶의 도리임을
알게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나를 위하여 대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122. 아주 추운 가을날에


주님
어제 밤은 아주 추웠습니다.

거리에서 잠자는 사람들이
밤을 어떻게 견디었는지 모르겠네요

추운 밤
전철에서 내리기 싫어
계속 눈치를 보면서 앉아 있는 사람들이 있고

추운 밤이 싫어
전철역에서 빙빙 도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저는
따듯한 방에서 잠을 청하며
그들의 모습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주여
그들에게도
같은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를 위하여 대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121. 궂은 날의 기도


주님
날이 밝았으나 아직 어둡군요
밝은 햇빛을 구름이 가리고 있어요

모두들
어두움보다는 환한 빛을 좋아하는데
하늘과 나 사이에서 구름이 방해를 하는군요

그러나 그 구름이
우리에게 필요한 물을 가져다 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밝은 날이나 궂은 날이나
모두 다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축복임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오늘을 축복하신 우리 주님께
감사를 드리오며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03.2.21.

120. 비오는 날의 기도

주님
비가 나리네요
주님의 눈물인가요?

주님의 사랑을 몰라주는
죄인들을 생각하며 흘리시는
주님의 고통인가요?

오 주여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사랑을 느끼옵니다.

지붕에도 뜰에도 거리에도 나리는
비의 뜻은
온 천지에 가득한 주님의 사랑을
깨우쳐 주심임을
믿습니다.

주님 흘리시는 눈물을 생각하며
열심히
힘차게 살겠습니다.

이 모든 말씀을
나를 위하여 대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119. 오늘을 위한 기도


주님
오늘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어제 만났던 사람중에
오늘
없는 사람이 있고
나도
그들 중 하나일 수 있었는데
오늘 살아서
주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고마우신 주여
오늘
주께서 찾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언젠가
잠에서 깨었을 때
이 세상 사람들이 볼 수 없는
다른  오늘에
주님의 얼굴을

뵈올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에
먼저
십자가의 그 사랑을
감사할 수 있게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나를 위하여 대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03.1.30.

118. 11월의 기도


가을이 깊어저 겨울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불을 때주는 보일러가 없으면
견디지 못하는 계절이 되었어요.

아직도 길거리와 지하도 여기저기에는
쓰러저 밤을 밝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주님
어떻게 하지요?

내가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되나요?

주님
더 추운 겨울이 닥치기 전에
그들에게도
추위를 피할 곳을 허락해 주세요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117. 한밤의 기도

자정이 넘도록 생각을 하다가 주님께 아뢰고 있습니다.
 
심히 괴로울 때는 안 계신 것 같다가도
손을 내밀면
이렇게 잡아 주시는 주님
 
사람과 부딪칠 때면 실망 속에 있다가도
이렇게 주님의 말씀을 듣노라면
다시 온 몸에 층만한 행복을 느끼고 있습니다
 
과거의 그 십자가처럼
변함이 없으신 주님을
의심하곤 했던 이 죄인
주여
용서해 주시옵소서
 
밤이 새도록
주안에서 안식케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116. 한낮의 기도

주님
해가  높이 떴네요

산보다 높이 뜬 구름을 부러워 했었죠
구름 저 멀리 높이높이  아주 높이 떠 있는
저 태양과 그 빛

따스한 그 빛을 느끼며
주님의 사랑을 감사합니다

오가는 사람들과 일하는 사람들
그들 속에  섞여 먹고 숨쉬며
오늘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해가 지기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있어요
아직 못 다한 일들을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뜻대로 열매맺을 수 있도록
나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115. 새벽기도

날이 밝는군요
주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날이군요

오 감사하신 주여
이 날을 어떻게 살아 갈까요
순간순간 계시하여 주옵시고
일 거수 일 투족 동행하여 주옵소서

날이 저물어 잠들 때까지
나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13년 11월 13일 수요일

114. 도전과 비움의 철학

대부분 종교의 가르침은
무욕과 무소유를 통한 가벼움에 이르는 것이다.

욕심이 없으니 불만도 없고
소유한 것이 없으니 지킬 것도 없다.
그러니 걱정할 것도 없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그 몸과 마음의 삶이 천국과 같게 될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과연 무욕과 무소유가 행복할 수 있을까?

무소유는 나눌 것도 없다.
불쌍한 사람들을 위하여 해줄 수 있는 것은
그를 위하여 기도를 해줄 수 있을 뿐이다.

삶을 위하여서는
무소유 자는 소유자를 위한 일을 해주고
분깃을 얻어 쓸 수 밖에 없다.

비움의 철학은 얼핏 멋있어 보이기는 하지만
그대로 실천하면서 살다가는
가족들과 함께 걸인의 신세를 면키 어렵다.

결국 모든 인간의 삶은
가족과 함께 삶을 영위하고 이웃과 나눌 것을 위하여
삶을 위한 소유를 위하여 도전할 수 밖에 없다.

모든 도전에는 경쟁자가 있고
경쟁자와 승리하기 위하서는 양보할 수 없다.

하여
삶 속에는
미움, 다툼, 시기, 질투가
본질적으로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면
비움과 존재의 가벼움에 이르는 철학은 무엇을 말함인가?

그것은
처음부터 소유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 않고 무위도식하는 것을 뜻함이 아니다.

삶을 위하여 도전과 극복을 해야 하지만
때로는 양보하고, 때로는 손해를 보면서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말함이다.

살아있는 동안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서는
끝없는 도전과 극복이 있어야한다.

그러나
가진 자가 더 많이 가지려고 욕심내지 않고
힘이 있는 자가 더 많은 힘을 독점하려고 욕심내지 않는 것이
참된 의미의 비움과 가벼움에 이르는 철학이다.

삶을 영위하기 위한 도전과 극복,
그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끊임 없는 노력,
그 중에 작은 희생을 감수하는 자를 일컬어
우리는 마음이 가난한 자라고 말하고 있다.

113. 목동 Gyges의 마법 반지 이야기

목동 Gyges는 마법 반지를 갖고 있었습니다.
자기가 끼고 있는 반지를 안으로 돌리면
자기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목동 Gyges는 이 반지를 이용하여
왕궁에 들어가 왕을 죽이고 왕이 됩니다.
그리고 평생 부와 영화를 누리며 살았다는 내용입니다.
.........................................................................
이 이야기는 플라톤의 국가 2권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플라톤은 이 이야기를 통하여 문제를 제기합니다.

사람이 악행을 저지르고도 붙잡히거나 처벌받지 않고
오히려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다면
우리가 선하게 살아가야할 이유가 무엇인가?

플라톤은 이 문제를 통하여
도덕성의 본질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
우리 교회는 요즈음 감사절을 앞두고
일주일 동안 특별새벽기도회를 갖고 있습니다.

금년에도 많은 주님의 은혜 속에 살아왔음을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반성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평생을 통하여
나의 삶 속에서도 목동 Gyges의 마법 반지가 있었음을 깨닫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것은 나의 믿음생활 속에
관습으로 숨겨져 있었습니다.
.....................................................................................
세상사람들은 죄를 지으면 반드시 죄값을 치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회개의 기도로 용서함을 받고
의인으로 인정되어
다시 구원에 합당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평생의 삶을 통하여
그런 일들이 반복되어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보았을까?

잘못을 저지르고도 부끄어워할 줄 모르는
뻔뻔스러운 철면피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
우리는 믿음의 생활을 통하여
구원에 대한 기쁨과 감사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 행복 속에
목동 Gyges의 마법 반지는 과연 없었는지
하나님께 감사의 조건을 찾는 이 기간에
더 깊이깊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나의 이 행복의 조건들이
회개해야할 조건들인지
감사해야 할 조건들인지 기도해보아야 하겠습니다.
...........................................................................
온전한 나의 믿음을 위하여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112. 쏠라피데와 파르헤지아


기독교는 캐논인 성서에 대한 쏠라 피데(오직 믿음)로
개인의 신앙과 구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푸코의 주체적 태도/파르헤지아는
우리 기독교의 고백과는 대립관계에 있는 말이다.

파르헤지아는 라틴어의 libertas인데
말의 자유, 솔직히 말하기,
상대방을 동요시키는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를 말하며
실존의 스승의 말이 갖는 태도를 특징짓는 말이기도 하다.

실존의 스승이란
현명하게 처신하는 법을
배우는 제자들에게 강의를 하는 賢者(현자)를 말한다.

미셸 푸고에 대하여 다른 사람들이 쓴 책인
『진실의 용기』에 보면
푸코는 감옥정보그룹(GIP)을 만들고 이 모임을 통하여
소외된 감옥 속에서 일어난 불법적인 일들에 대하여
일반사회에 알려지게 하는 역활을 하고 있었다.

그것이 진실의 용기이며
파르헤지아의 어원이다.

지식인인 푸코가 하고 싶었던 일들은
미래에 대한 예언적 진실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 속에서 발생되고 있던 바를 파악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

우리는 가끔 기독교 자체 속에서
파르헤지아를 보고 있다.

그러나 푸코의 경우처럼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모두에게 알리는 것은 좋지만
그 결과를 특정지으려는 것은 기독교적이라고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일반적인 방법은 그 답이 하나일 수 밖에 없지만
기독교의 방법은 두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의 조직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나쁜 일들은
반드시 알려지고 시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처리방법은 상식과 다르게 결정될 수가 있다.

모든 죄인은 벌을 받고 마땅히 죽어야 한다.
그것이 구약이고 하나님의 법이다.
비록 의인이라도 이 세상에서 그 보응을 다 받아야 한다는 것이
구약의 가르침이다.

그러나 신약성서에서 말하는 교회의 죄인에게는
또 하나의 방법이 있다.
회개와 용서라는  아가페가 있기 때문이다.

그가 진심으로 회개하였는지 누가 알수가 있겠는가?

그것은 객관적이지 않다.
그것은 하나님과 죄인과의 만남 속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잘못을 지적할 때에도
잘못을 시정할 때에도
파르헤지아가 아닌 쏠라 피데(오직 믿음)로만 행할 수 있는 것이
우리 기독교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죄을 지은 사람이 우리들 앞에서
거짓으로 회개한 척 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와 우리 모두는
거짓 회개에는 용서도 물론 없고
영원한 삶도 없으며 영원한 저주 속에 산다는 것이
우리가 믿고 알고 있는 쏠라피데이다.

믿음의 대상도
회개의 대상도
영원히 함께 살아야 할 대상도
오직 한분 뿐이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
미셀 푸코(Michel Foucault, 1926~84)

111. 하늘나라에 가는 비용



사람이 죽으면 염을 하게 되는데
죽은 사람의 입에 쌀을 넣으면서 소리를 지른다.

입 왼쪽 에 쌀 두어개를 넣으면서
일천석이요~
또 오른 쪽에도 쌀 두어개를 넣으면서
일천석이요~
가운데 쌀 두어개를 넣으면서
일천석이요~
하면서 얼굴을 가리고 염을 끝낸다.

하기야
죽은 사람이 한알을 넣었는지 두알을 넣었는지
알수야 없겠지만
저승가는 길에 굶주리지 말고 잘 먹으라는 뜻일 것이다.

이것은
재래식 한국의 장례풍습이다.

그런데 기독교는 어떤가

하나님나라에 가면 각기 바친 것만큼의 집과 재산이 있어서
각기 그것을 쓰면서 영원히 산다고 한다.
도대체 영원히 살기 위하여서 1년 생활비가 얼마가 필요할까

그곳은 죽음도 없으니
적게 바친 사람은 영원히 헐벗고 굶주리면서 살게 될 것이다.

도대체
하늘나라의 개념과 너무나 맞지가 않는 모습이다.
그것이 어찌 하늘나라이겠는가....
..........................................................................................

그렇게 바쳐진 헌금이 하늘나라로 가지 못하고
돈이 되어 쌓이는 바람에 문제가 되고 있다.

왜 하늘나라로 가지 못하고
타락과 죄의 자료가 되는 것일까?

하나님께 바쳐지는 것은
흠 없고 티 없는 죄를 짓지 않은
어린 양이라야 한다고 했다.

그것은
그런 마음을 의미하는 것이지
죄 없는 산 짐승을 무참이 죽여
덤테기를 씌우라는 뜻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을 창조하신 조물주의 뜻으로 풀지를 않고
선악과를 따먹고 불순종한 카인의 후예의 지혜로 풀면
늘 엉뚱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하나님이 그렇게도 무정하고 무심하며
소갈딱지가 없고 까달스러운
외고집의  변덕쟁이 노인이란 말인가?

그것은 어디까지나
얄팍한 지식과 꾀로
무식한 사람을 이용하려는 사악한 인간의 모습이다.
...........................................................................

자식의 모습으로 스스로를 희생하면서
모든 사람들(하나님의 자녀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아무 조건 없이 집으로 다시 돌아와
서로 바라보며 사랑을 나누면서 살기를 원하는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사랑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모든 사람들을
아무 대가 없이 용서하고 구원하시려는
바다보다 넓고 하늘 보다도 높은
우리 주님의 사랑

그것을
욕심 많고 얕은 꾀가 많고 죄 많은 인간이
어찌 짐작할 수 있으랴 !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기독교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로 돌아가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영원히 살기 위한  것이다.

아무 값 없이
하나님 아버지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 믿음만으로

원래 살던 본향
에덴동산에서.....

110. 칭찬과 박수



아주 오래 전
일부러 명성교회 저녁예배에 참석해 보았습니다.

설교 전 찬양순서가 5개 정도 있었습니다.
성가대, 여전도회 중창단, 목회자 중창단, 현악4중주 등

그런데 한가지 특이한 것은
한 순서가 끝날 때 마다
김삼환 목사님의 칭찬이 있었습니다.

와 ~~
내 평생 이런 아름다운 찬양은 처음 들었습니다.
정말 환상적이네요

그 말을 들은 교인들은
와~
하고 웃으면서 박수를 쳤습니다.

다음 목사님들의 중창이 끝나자 또

야....어쩌면 이렇게 은혜스러울수가 있습니까
이런 은혜스러운 찬양은 평생 처음 들어봅니다

교인들은 다시 박수를 치면서
와~ 하고 웃었습니다.

다른 중창이 끝나자
정말 천사들 같아요
이렇게 예쁘고 노래잘하는 중창단은 처음이에요
정말 은혜많이 받았습니다.

이번에는 말씀하시는 목사님이나 교인들이
함께 웃으면서 박수를 쳤습니다.

순서가  끝날 때마다 그렇게 했습니다.
그 날 설교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인들은 이미 마음문을 활짝 열고
설교를 들을 준비가 되어있었습니다.

교인들은 큰 기쁨을 갖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
우리는 칭찬과 박수가 부족합니다.
윗 사람은 아랫사람의 작은 성취를 크게 칭찬해주고
아랫사람들은 윗사람의 성공을 크게 박수쳐주고
하는 것이 부족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장하는 교회와
퇴보하는 교회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를 늘 칭찬해주는 선배나 어른이
왜 존경이 가지 않겠습니까
작은 성취에 크게 박수를 칠 것입니다.

우리는 의를 가르친다고
후배나 제자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야단치는데 익숙해 있습니다.

칭찬을 하면 교만해 져서
발전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후배는 그것을 그대로 배워서
다른 사람들의 성취에도 좀처럼 칭찬을 해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선배나 스승의 잘못에 대하여
큰 발견을 한듯이 크게 떠들어 댑니다.

그곳에는 이미
기독교의 사랑과 화해와 용서는 없습니다.

우리는 잘못된 의인의 훈련을 받아
다른 사람들의 단점을 발견하고 폭로하는데
익숙해 있습니다.

이미 그곳에는
벌거벗은 아버지 노아의 수치스러운 모습을 숨기려고 노력한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교훈은 없습니다.
.................................................................................
우리는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그리스도의 사랑과 용서와 희생을 전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끼리도 사랑하고 용서하고 화해할 수 없다면
무엇을 그들에게 전할 수 있을까요

크게 성장한 교회는
대개 그런 특별한 이유들이 있습니다.
그 성장의 비결을 연구하여 나누는 것이
그 큰 교회의 단점을 파헤쳐 정죄하는 것보다
더 유익한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109. 자아발견



왜그런지?

어떤 부분에서
스스로를 전문가인 양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특정 집단에서
전문가인 내가 없었어도 공동체는 잘 운영되는 것을 보고
퍽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세월이 훨씬 지난 후에야
내가 전문가인 것 처럼 보인 것은
어느 누가 나를 그렇게 보이도록 세워준 것인 것을 알고
아주 엄청나게 쑥스럽고 부끄러움을 느끼었었다.

하나님의 은혜는 어떠한가?

오랜 세월 교회를 다니느라고 많은 견문이 있다.
많은 견문이 있다는 것과
은혜스러운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과를 분간치 못하고
항상 스스로 독특한 신앙인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러사람과 깊은 사귐을 갖고 보니
모든 사람들의 신앙이
나보다 우월한 경지에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신앙의 깊이란 무엇일까?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여 죄 주는 것일까?
아니면 다시는 고개를 들지못하도록
망신을 주는 것일까?

죄없는 사람이 돌로 치라는 말씀으로
막달라마리아를 감싸주던 주님의 사랑이 생각난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과연 예수그리스도의 제자인가?
죄를 사함받고 영생을 기다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맞는 것인가?




108. 문제


인간의 문제는
삶과 죽음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삶의 문제는 삶의 질에 관한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살아있는 동안
문제는 항상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 삶의 질에 관한 문제는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어느 누구의, 어떤 경우라도
삶의 질을 만족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삶의 질이란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모든 고민은 삶이 끝나는 죽음에서 끝이나고
살아있는 동안 걱정과 근심은 계속되기 마련입니다.

기독교는 삶과 죽음의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는 종교입니다.
그리고 그 삶의 질을
영원한 삶을 위한 성공적인 준비기간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부귀영화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영원한 삶을 위하여 지금의 삶을 희생하는 것을
최고의 덕목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부귀영화를 추구하는 것은
너무 동물적입니다.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하여
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을 아가페라고 하며
그 사랑을 본받는 삶이
크리스쳔의 삶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역사 속에서
온전한 아가페를 이룬 분은
예수님 한 분 뿐입니다.

107. 성경


성경은 계시의 말씀입니다.
성경을 봉독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계시의 말씀은
하나님의 허락이 없으면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깨닫는 순간
나의 잘못된 삶을 회개할 수 있으며
결심과 간증으로
나의 삶을 바로 잡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계시이고
비젼입니다.

그러나
가난한 마음으로 세상 모든 욕심을 버리지 않는다면
계시의 말씀은 나를 깨우칠 수 없고
나의 삶을 바로 잡을 수 없습니다.
말씀이 내 안에 들어올 수 없도록
이미 문을 닫아 놓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과의 만남을 간증할 수 있는 것,
그것은 이미
하나님과 동행하는 천국에서의 삶이 시작된 것입니다.

106. 기독교는


기독교는
삶과 죽음의 근본문제를 다루고
해결하는 종교입니다.

그리고
인생의 행복을 가르쳐주고 있으며
그 행복은 용서와 화해를 통한 사랑으로 얻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서로 만나 사랑하고 도와주며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행복하게 살기 위하여
다른 사람을 불행하게 하는 사람은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행복한 영생을 구원이라고 하고
불행한 영생을 영벌이라고 합니다.

사랑과 용서와 화해를 통하여
온 세상 사람과 사랑하며 사는 사람만이
영원한 행복,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영생을 준다고 하여도
그런 사람끼리 영생하는 사회는
이미 지옥인 것입니다.

105. 12제자


누가 복음 9장 1~6절에서

예수님은 12제자를 부르시고
이들에게 귀신을 이기도록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전하고 병을 고쳐주라고 이들을 보내셨습니다.

우리는 크리스쳔이면서 예수님의 제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는 사람이면서
예수님의 제자로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개인으로서의 삶을 모두 포기하고
공적인 삶을 사시면서 온 세상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지고
죽으셨습니다.
스스로를 희생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고 하나님의 사랑을
완성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죄의 값을 치룬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은
구원받고 영생을 약속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제자는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고
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

크리스쳔으로서의 삶은 어떤 것이 있고
제자로서의 삶은 무엇을 행하고 있는가?
.............................................................................
12제자 중에
사회와 교회의 지도자들인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없었습니다.
모두 자기의 생업을 가진 평범한 서민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선택은
하나님의 선택입니다.

예수님께서 교회와 사회의 지도층이 아닌
서민 중에서 선택하신 뜻은
그들이 교회의 지도자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교회는 서민의 삶에서 떠나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바로 구원의 대상이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교귀족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복음이 서민 속에서 열매를 맺었듯이
교회는 모든 관심과 활동의 중심이
그들 속에 있어야 합니다.

얼마나 많이 모이는 교회인가
얼마나 건물이 큰 교회인가는
중요하지가 않습니다.

교회가 서민 가운데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크리스쳔의 삶은
참된 교회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104. 교회


교회는 썩지 않았습니다.
썩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하나님이 계신 집이고
주님이 머리가 되시며 그 집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썩었다는 말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썩었다는 말이고
엄밀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며 행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집단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고
죄인을 용서하라고 하신 가르침대로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썩을 수가 없습니다.

교회는 썩을 수 없고
그리스도인들도 썩을 수 없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우리들의 행동 때문에
교회에 썩은 냄새가 날 뿐입니다.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침
그 어느 것 하나도
교회를 썩게하는 요소가 없습니다.

교회를 썩게하는 것
그것은
시험에 빠져 죄를 짓고 사는
우리의 불신앙 때문입니다.

103. 마지막 만찬과 겟세마네


마태복음 26장에서

죽음,
그것은 삶의 최악의 상태입니다.

슬픔도 고난도 고통도 살아있어야만 느낍니다.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과 마지막으로 먹는 식사,
얼마나 목이 메었을까....

그 중 하나는 자기를 팔아먹고
자기를 부인할 것을 뻔히 알면서...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 가서
철야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마음의 심한 고통을 말하며
중보기도를 부탁하셨습니다.

무리들이 잡으러 왔을 때
저항하는 제자들을 말리시면서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를 위하여 죽어야 한다는
결심을 말하셨습니다.

그리고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를 위하여
무슨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지금 받고 있는 고난과 고통은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102. 가장 높은 사람


마태복음 18장에서

높은 사람의 개념은
어느 조직을 다스리기 위하여 최고의 권력자가 있고
최고의 권력자로 부터 그 권력을 분담한 권력 서열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높은 사람이란
사람을 복종하게 하는 힘을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즉, 마음으로부터 존경하여 그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아니고
힘으로 강제 복종케하는 자를 말합니다.

역사 속에서 권력자는 두 종류로 나누고 있습니다.
힘으로 강제하는 폭군이 있고
마음으로 존경하여 스스로 깨달아 자발적으로 행하게 하는
성군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주권이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허락받은 피조물, 인간과 하나님의 사자가
함께 있을 뿐입니다.

누가 감히
하나님과 그 권력을 나누어 가질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나라는 세상처럼 부귀공명을 다투는 곳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보다 높이 되고, 많이 갖고, 많이 아는 것을
행복으로 정의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서로 사랑하며, 서로 도와주고,
협력하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가르치심에 제일 많이 성화된 사람이
존경받는 곳도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구원받은 자가
존경받는 곳 또한 아닙니다.

죄를 용서하시고 함께 살도록 허락하신
감사가 넘치는 곳입니다.
....................................................................................

모든 인간은
하나님이 만들어 주셨습니다.
부귀공명을 위하여 세상에서 변질되지 아니한
창조의 섭리 그대로 깨끗한 자는 어린아이들 입니다.

높은 사람이 무엇인지
부자가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상태
어린아이.....

그런 심령이 된
그런 심령으로 돌아간
회복된
그런 사람만이 갈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런 어린아이 같이 성화된 심령을 가진 사람을
알아보고 존경하고 환영하는 사람...

그는 이미 영안이 열려있는 사람입니다.

땅 위에서 살면서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을 알아보고
사귈 수 있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행복한 사람이고
고귀한 인격을 가진 사람입니다.

101. 말과 말씀


사람과 사람이 서로 의사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 말이다.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전하는 말이 말씀이다.

인간의 말은 이루어지지 않고 버리는 것이 많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변함이 없고 천지 간에서
함께 이루어진다.

하나님이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말을 하도록 하시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말로
스스로를 망치고 다른 사람도 불행하게 한다.

입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도
스스로는 지키지 않고
스스로는 의인이라고 믿고 말하고 있으나
아무도 그를 의인으로 생각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무엇이 의이고
무엇이 진리인가

차라리
나를 죄인으로 고백하고
하나님 앞에 엎드린 후
모든 사람들 앞에서 겸손하게 살아가는
말 못하는 사람만도 못하다.



이 세상에서 한 모든 말에 대하여
그 내용으로
의인과 악인을 판단하는 재료로 삼을 것이라고
마태복음 12장 36절에서
말씀하시고 있다.

100. 야곱과 요한의 어머니


이 세상 모든 어머니들의 마음은
자식이
훌륭한 스승을 만나서
훌륭한 공부를 하고
그에 걸맞는 훌륭한 사람이 되어
훌륭한 대우를 받고 살기를 원합니다.

야곱과 요한의 어머니도
자식들이 훌륭한 스승을 만났으니
그 스승곁에서 훌륭한 사람으로
존경받기를 바랐습니다.
.......................................................
그런데
야곱과 요한의 어머니는
다른 사람들 처럼
예수그리스도의 구원과 희생의 뜻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영광과 존귀를 받으려고 오신 분이 아니고
우리의 죄를 위하여 고난을 받고
대신 죽으려고 오신 분 입니다.

그런데
스승의 고난과 죽음은 같이 나누려하지 않고
명예와 존경만 받기를 원하였던 것입니다.
...............................................................
우리는 예수를 믿으면서도
주님의 고난과 죽음의 희생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두
강도상 뒤의 십자가처럼
높은 곳에서 존경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밝히 알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사이비 기독교 입니다.

기독교의 본질은
예수그리스도의 희생을 믿는 믿음에 의한 구원이고
영광과 존귀는 예수의 제자들의 몫이 아닙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고
사랑으로 오래 참으며
낮은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나타내는 것

그것을 위하여
성도는 부르심을 받았고
제자들은 계속 양육되고 있는 것입니다.

99. 포도밭의 일꾼


마태복음 20장의 포도밭 일꾼 이야기

포도의 계절
일이 매우 많아서
주인은 일꾼을 구하여 일찍 일을 시작하게 하고 거리에 나가보니
아침 9시가 되었는데도 일을 하지 못하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1데나리온에 계약하고 포도밭으로 보냈습니다.

12시에도, 3시에도, 5시에도
같은 방법으로 계약을 하고
포도밭으로 보냈습니다.

저녁에 일이 끝나고 임금을 계산할 때
제일 늦게 온 사람들부터 임금계산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아침 일찍 온 사람들이 이의를 제기하였습니다.
우리는 왜 더 주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
이것이 이른바 텃세입니다.
오래 다닌 사람
먼저 온 사람
주인과 잘 아는 사람

그들은 각기
특권의식을 갖고
주인으로부터 그렇게 대우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큰 착각입니다.
포도밭 주인에게는 모두가 다
포도원 일꾼일 뿐이고
그들을 차별대우 할 의사가
전혀 없습니다.
..................................................................
교회란
1데나리온에 일당 계약을 한 일꾼들 처럼
구원을 받기 위하여 신앙을 고백한
영생을 약속받은 성도들의 모임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온 성도나, 오래 다닌 성도를
특별 대우할 마음이나 계획이 전혀 없으십니다.

다만
누가 하나님의 뜻대로, 가름침대로 살아가는가
그것이 중요한 관심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관심이 없는
상하의 관계를 만들어 놓고
높은 척 해보아야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 자신
하나님의 섭리대상 일 뿐이니까요

모든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낮고 겸손한 마음과 자세가 있을 뿐입니다

98. 가난한 사람들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여덟가지의 복 가운데
첫번째 것이 가난함이다.

마음이 가난하고
부자가 아닌 정말 가난한 사람들에게
천국을 주신다는 것이다.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교훈이다.

가난함
그 자체가 이미 고난을 의미하고 있는데
어찌 그것이 복이 될 수 있단 말인가
.............................................................

어떤 목사님은 그의 저서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가난함은 그 사람의 모자란 점과
  부족한 부분을 말하는 것이다』

즉,
나는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이라는 고백이
바로 마음이 가난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5장에서 말하는 가난함이란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고백하는
겸손하고 진실한 사람을 뜻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어찌 복이 될 수가 있는가

하나님은 그런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강하게 해주시려고
가까이 닥아오신다는 것이다.

나에게 닥아오시는 주 하나님
그분이 바로 천국인 것이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너무 교만하게
자신만만하게 살아오지는 아니하였는가

반성하고
회개하고 있다.

97. 그리스도인의 죽음


모든 사람들은 죽는다.
모든 신앙인들도 죽는다.

목사님도 장로님도
권사님도 집사님도 성도들도
모두 죽는다.

신앙인들은 부활의 소망을 갖고 죽고
신앙이 없는 사람들은 절망을 갖고 죽는다.

나이가 늙어 죽음이 가까이 오면
모든 신앙인들도 죽음을 두려워한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 하면서도
모두 두려워한다.

스스로의 삶의 모습을 회고해보면
의인으로 인정받기에는
너무 죄된 삶을 살아왔기에
두려움 속에 마지막을 맞는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확실히 믿는 것은
죽음의 다음 순간이 바로
부활의 날이요 천국이라는 사실이다.

그리스도인의 죽음
모든 사람의 죽음과 방법은 똑같더라도
하나님의 약속과 십자가의 공로를
염치없이 믿으며
구원의 하나님을 소망중에 바라보며
주님의 소천에 순종하는 것이다.

96. 갈등


나의 마음 속 깊은 곳에는
하늘과 땅을 향한 갈등이 있다.

나사로와 같은 삶과
부자와 같은 삶이다.

천하게 살다가 천국에 간 나사로와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지옥에 간 부자

누가 성공한 인간인가?

나사로는 인생을 성공하여 천국에 갔지만
나사로와 고생하며 같이 살던 가족들은
어찌 되었을까?

부자인 가장을 만나
부귀영화를 누리던 부자의 가족들은
다 지옥에 갔을까?

부자는 자기의 죄값으로 지옥에 갔고
거지 나사로는 자기의 믿음으로 천국에 갔다.

그러나
그 가족들은 어찌 되었을까

많은 좌절감 속에 살던 나사로의 가족들은
삶 속에서 모두 성공적으로 인내하며
끝마칠수 있었을까
잘못된 가족들은 없었을까

그것은 나사로의 책임이 아닐까

부자는 비록 죄값으로 지옥에 갔지만
훌륭히 성장한 가족들이 마음에 갈등이 없이
좋은 일을 많이하는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면
그들은 천국에 갈 수 있지 않을까

나사로의 실패한 가족들과
부자의 성공한 가족들은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가

부자와 나사로의 갈등은
모든 남자들이 갖고 있는
보편적인 갈등이다.

가족을 평안히 살게한 지옥에 간 부자와
가족을 고생시킨 천국에 간 나사로중에서
누가 진정으로 성공한 사람인가

95. 사도행전


사도행전을 읽으면서
기독교의 핵심은 하나님이시고
생각과 행동의 주체는 성령이신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초대 기독교의 중심활동은
성령께서 행하시었다.
그러므로
현대의 기독교도 성령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시게 하여야한다.

그러나
현재의 기독교는 너무 인간적이다.
기독교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교회가 너무 인간적이다.
성령이 내주하시지 않고
성령이 주관하시지 않는 곳은
이미
교회로서의 의미를 상실하고 있다.

성령께서 어떻게 명령하셨는가?
대신
어느 목사님과 어느 장로님의 뜻인까?

이것이 우리나라 교회의 현주소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주님 앞에 서야한다.
그리고 우리의 행동에 대하여
정당한 답을 해야한다.

그것은 내 안에 계신 성령의 뜻이었습니다

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한다.

뜨거움이 있고
감격과 감사와 예배가 있는 곳
하나님의 계시가 있고
성령의 역사하심을 만날 수 있는 곳

그곳이
사도행전의 교회
참다운 기독교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94. 성도의 마음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면서
자기를 죽이고 있는 사람들을 용서하셨습니다.
바울도 목회서신에서
자기를 괴롭혔던 자들을 용서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성도의 마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되어야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몸은 성령이 내주하시는 성전이요
우리는 예수의 제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모든 문제는
편을 가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나와 친한 사람과 나를 싫어하는 사람,
부자와 가난한 사람,
유식한 사람과 무식한 사람,
귀한 사람과 천한 사람 등등....

성도의 눈에는
구원을 받은 사람과 구원을 받을 사람,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과 받을 사람 만
존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의 가치는
모든 사람들이 똑 같습니다.
즉,
구원의 대상과 사랑의 대상 뿐 입니다.

우리가 사람들을 대할 때
아직 미워하는 사람들이 있고
아직 저주의 대상이 남아 있다면
아직 온전한 성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가장 낮고 천한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사람과 내가 동일한 가치로 생각되어야
비로소 성도의 마음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 입니다.

93. 기도원에서 만났던 K씨

기도원에서 만났던 K씨

30여 년 전 병으로 고생하고 있을 때
대한 수도원에서 특별한 이를 만났다.

제대한지 얼마 안된 체격이 당당한 젊은이였다.
낮에는 힘든 일을 하며 기도원 예배당 건축일을 도왔고 밤이면 기도하면서 경건을 훈련하고 있었다.
아무 걱정이 없어 보이는 그가 밤이면 눈물을 흘리며 심각하게 기도하는 것을 오래 동안 보면서 그 고민의 내용을 물었다

그는 마음 속에 전쟁후유증을 앓고 있었다.
비록 전투중이었지만 사람을 죽였다는 자책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하나님 앞에서
과연 내가 용서 받을 수 있을까?

우리는 그에게 얘기해 주었다.
예수를 믿고 하나님께 진심으로 회개하면
하나님은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신다고 말해 주었다.

그는 심각하게 되물었다.
권사님!
아니 그게 정말입니까?
내 이 큰 죄를 하나님이 용서해 주실까요?

정말입니다.
나는 힘있게 말해 주었다
그는 희안한 표정을 하면서 기도하던 어떤 목사님에게 찾아가 똑같이 물었다.

목사님!
저 권사님이 하나님이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신다고 하는데 정말 하나님이 용서해 주실까요?
이 세상에서의 징벌은 아무렇게도 생각치 않습니다.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처리해 주실까입니다

목사님은 그를 위하여 기도해 주면서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는 그 외 몇 사람에게 똑같은 질문을 하고 똑 같은 대답을 얻었다.
얼마 후 기도원을 내려간 그는 편지를 하였다.

이제는 기쁜 마음으로 보람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얼마를 살던지 이제는 감사함으로 아름답게 신앙생활을 하면서 살아가겠습니다.

그는 기도하려고 눈을 감으면 늘 생각나는 사람이다.

92. 기도원에서 만난 비구니


비구니 출신의 한 분이 예수를 믿겠다고 대한수도원을 찾았다.
그녀는 방에서 자지를 않고 예배당의 종탑이 있는 곳 2층 마루방에서 기거하며
새벽기도와 저녁예배, 낮에는 다른 사람들 처럼 근로봉사를 하며 수도를하였다.

시간시간 성경을 열심히 읽고 틈틈이 기도를하였다.
그녀는 명문 Y대 출신으로 비구니가 되었으나
종교를 바꾸기 위하여 그곳을 찾았는데
왜 도시의 교회를 먼저 찾지 않고 그곳을 먼저 찾았는지 알수가 없었다.

4월 5월의 한탄강변은 아직 추웠다.
밤에는 군불을 때지 않으면 잘 수 없을 정도로 추웠다.
그녀는 두달을 그곳에서 기거하면서 우리가 춥지 않느냐고 물으면
괜찮다고 하면서 그곳에 머물렀다.

한번은 이질이 생겼다고 했다.
두달을 넘게 머물던 그는

예수 믿기가 참 어렵군요
도로 절로 가야겠어요

그 후 나는 그곳을 떠났기 때문에 그녀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한편
그 때 왜 좀 더 적극적으로 그를 안내하고 가르쳐 주지 못했을까
후회하고 있다.

전도라는 글을 이야기하거나 의논할 때마다
예수믿기를 포기하고 하산하겠다는 그 때 그녀의 모습이 떠오르곤한다.

91. 전쟁은 없어야 한다


한 사람이 죽어도 그 원인을 규명하며
살해 당했는지 자연사인지를 규명한다.

그리고 사람을 죽인 사람을 추격 체포하여 그를 법으로 심판한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사람의 생명이 그만큼 소중하기 때문이다.

생명의 가치는 빈부귀천이나 큰 나라 작은 나라 가리지 않고
동등하게 취급된다.
그런데
전쟁에서는 그런 모든 법과 질서와 가치가 무시된다.

수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정의의 이름으로 죽어가고 있다.
인정도 없고 사정도 없고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전쟁터에서는 서로 죽이기 위해서 존재할 뿐이다.

너무 마귀적이다.
예수께서는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대신 죽으셨는데

인간은 반대로 자기의 의를 위하여
많은 다른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
전쟁은 없어야한다.

90.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잊고 살고 있다.
아니
하나님이 안계시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종교가 없고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렇다 치고
종교지도자들 조차 평소의 언행을 보면
그건 살아계신 하나님앞에서 행하는 언동이 아니다.

언행이 문제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 신이 되어 성경을 자기 편하게 해석하고 있다.
왜 그럴까?
선한 사람들이 가난하게 살다가 맥없이 죽어가고
악한 사람들이 교회 안과 밖에서 떵떵거리고 살기 때문에
신이 안계시다고 믿기 때문일까?

아니다.
그건 착각이다.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우리를 살피며 보호하고 계시다.
왤까?

마지막 날
양과 염소를 분간할 때까지
오래 참고 또 참고 기다리시는
은혜의 하나님 이시기 때문이다.

89. 성령 하나님 그리고 악령에 대하여


30여년 전 기도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 기도원의 영적지도자 한 분이 어느 환자를 진단(영적)하면서
양신역사 하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드니 그의 몸(영과 육)속에서
성신과 악신이 같이 있는 상태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정신이상의 상태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그 후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나는 이 문제를 곰곰 생각해 보았습니다
성신과 악신이 어떻게 동시에 존재할 수가 있을까?
성신 즉 성령은 하나님이고 악신 즉 악령은 타락한 천사인 피조물인데
어떻게 동격으로 표현하고 있을까?
그 기도원은 많은 영적인 기적으로 유명한 곳이었으나
나는 이 기본적인 문제에 의문을 갖고 더 이상 그곳을 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신앙이란 어떤 기적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내 믿음의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하나님과 피조물을 동격으로 표현하는 이 모임에
더이상 머물지 않고 관계를 단절하였습니다

그 후 나의 모든 신앙생활에서 내가 믿을 수 없는 것은 '아멘'하지 않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입에서 나오는 '아멘'이 바로 내 믿음의 고백이며
영생을 향한 내 고백의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10년 전 devil 공포증으로 고생하는 친척을 보고 과감히 증언한 일이 생각납니다
devil은 가상의 단어이지 실존하는 존재가 아니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심지어는 우리의 육체까지도 일시적인 모습일 뿐
참된 존재인 실존하는 분은 하나님 한분 뿐 이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는 지금 미국의 대학에서 공부하며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지금도 나는 우리 주위에 신비주의란 이름으로 이런 악령들을 실존화 내지는 하나님과의 동격으로 다루는 언어들을 비판합니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유일하신 참된 존재이시며
피조물인 이 세상의 어떤 유한한 존재 내지는 꾸며낸 상상의 것 들과 비교할수 없는 거룩하신 분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88. 종교의 지도자


모든 사람들은 지도자의 가르침대로 살아가게 된다.
그러므로 지도자를 잘못 만나면 삶을 그릇치게 된다.

우리는 나면서부터 부모의 지도를 받으며
생존에 필요한 기초지식을 배우게 된다.

자라면서 또래의 친구들과 만나면서 사귐을 배우고
스승에게서 미래를 향하여 도전할 수 있는 학문을 배우게 된다.
그래서 모두들 인생을 성공하기 위하여
좋은 스승이 있는 좋은 학교를 가려고 경쟁을 하게된다.

종교는 삶의 궁극을 결정하고
삶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깨닫게 해준다.
그러므로
종교생활에서도 훌륭한 지도자를 만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누가 종교의 지도자인가
성직자들인가
년륜이 쌓인 신자들인가

스스로 지도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바른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모두들 그 사람을 본받으려 하기 때문이다.

87. 다원주의 시대의 신앙


참된 신이신 한 분의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이 만드신 많은 사람들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서로를 희생하며
서로를 사랑하고 살도록 가르치셨다.

그러나
힘이 있고 꾀가 많은 한 사람이
모두를 억압하고 지배하며
하나님 대신 군림하였다.

이제 우리는 눈을 떠
이 세상에는
나 이외에
많은 사람들이 있음을 깨달아야한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나와 똑같은 가치를 갖인
하나님의 소중한 자녀임을 인정하여야한다.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86. 십자가와 제자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
바로 나의 죄와 구원을 위해서 희생당하셨다.

그런데
나는 그 십자가 앞에서 복을 구하고 있다.
영생을 주신다는 분에게
생명대신 돈을 달라고 간구하고 있다.

지금도
십자가에서 내려 오지 못하고 피를 흘리고 계신 주님은
내가 회개하고 성별된 사람이 되기를 기다리신다.

교회에는 십자가가 있고
십자가의 도를 따르는 제자들만이 있다.
자신을 희생하여 세상을 구원하신 주님은
온 세상에 이 소식을 전해달라고 유언하셨다.

주님은 우리에게 희생적 사랑을 가르치셨고
우리는 주님의 제자라면서 돈을 구하고 있다.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느냐고 하시면서
오늘도 주님은 피를 흘리신다.

85. 부자와 거지 나사로


한국의 기독교는 부자 기독교이고
북한의 기독교는 거지나사로와 같은 기독교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북한의 기독교는
외형적으로 나타난 형식적인 거짓 기독교가 아니라
지하에서 기도하고 수용소에서 죽어가고 있는 실질적인 기독교를 말한다.

우리는 북한을 위하여 기도하며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도와 주고 있다.
그런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북한에 있는 기독교도들은 남한에 있는 기독교인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고한다.

남한에 있는 기독교인들도 꼭 천국에 같이 가게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그들의 먹을 것을 위하여 기도하는 동안
그들은 우리들의 영생을 걱정하고 있다고한다.
즉 , 그들은 우리들을 구원받지 못할 타락한 가짜 기독교인들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천국은 어떤 곳인가?

천국은 부자들이 모이는 곳인가?
천국은 고위권력자 출신들만 가는 곳인가?
천국은 목사와 장로, 교황과 신부들만 가는 곳인가?
천국은 세계적인 강대국 기독교인들만 가는 곳인가?

흑인들의 영가가 다시 생각난다.

오 주여
저 백인 성자들이 천국문에 들어 갈 때에
나도 함께 가게 해주세요

나사로 교인들의 노래가 들린다

오 주여
저 성공한 부자장자들이 천국갈 때
나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84. 건물이 큰 교회와 믿음이 큰 교회


작은 교회는 늘 큰 교회를 부러워한다.

눈꼽딱찌만한 목사님의 사례비를 집행 못하고 늘 죄스러워하는 작은 교회의 교인들은
큰 교회가 되어 차를 타고 다니며 집회를 인도하러 다니시는 목사님의 모습을 상상해 보곤한다.

수 십년이 지나는 동안 교회는 성장하고 수 백명의 교인들이 함께 예배를 보며
큰 스피커에서 나오는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며 근사한 차를 타고 다니시는 목사님을 보며
감사해한다.

그런데
기도하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작은 교회에서는 지하도에 돗자리를 깔고 서로를 위하여 기도해 주었고
가족같은 서로를 위하여 금식하며 기도해 주었었다.

그런데
아무도 기도하지 않는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금기시 되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외식하는 자로 따돌림 받는다.

어떤 것이 큰 교회인가?
건물이 크면 큰 교회인가?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큰 교회인가?
헌금 액수가 많으며 큰 교회인가?

기도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온유와 겸손이 넘치는 교회......
그것이 큰 교회가 아닌가?

누가 하나님의 의로운 손을 움직이게 하는가?

83. 영적인 눈


무릇
모든 신앙인들에게는 두가지의 눈이 있다.
하나는 보통 사람으로서의 눈이고
다른 하나는 신앙의 관점에서 보는 영적인 눈이다.

신앙생활의 초기에는 목사와 만나는 시간이 별로 없어서
대심방 기간이 아니면 가까이에서 만날 수가 없고
예배드릴 때 예배의 집례자와 설교자로서 만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집사, 권사, 장로의 직분자로서 목사와 자주 만나다 보면
예배 때와는 또 다른 인간적인 모습을 보게된다.
그리고는 평신도와는 다른 아주 엄격한 신앙의 잣대로
그 모습을 평가한다.
그리고는 시험에 든다.

여기에서
나는 신앙인의 눈을 새롭게 강조하고자 한다.

우리가 교회에서 서로 만나 신앙생활을 할 때에는
목사가 어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나?
그 분을 통하여 하나님이 내게 주신 계시는 무엇인가?
를 생각하면 된다.
신앙생활을 목적으로 서로 만나서
개인적인 일로 신앙의 본질인 영적인 것을 훼손시킬 수는 없다.

영적인 눈
그것은 평범한 인간의 삶속에서 역사하시는
주님의 발자취를 찾는 안목이다.


82. 진실한 크리스천


교회의 지도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천국에서 만나면 섬뜩할 것 같은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는 그런 사람들을 만나는 곳은 천국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하나님과 예수님의 속성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인격체........
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예수의 인격체라고 말 할 수 없다.
돈과 명예에 눈이 어두어 진실을 보지 못한다.
그런 인격의 상태로 다른 사람을 지도하고 평가하고 정죄한다.
설득력이 없는 혼자만의 소리들....

만나면 반가운 사람....
오래오래 같이 있고 싶은 사람...
말하면 할수록 은혜가 되는 사람...
가만히 같이 있기만 하여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사람....
바로 그런 사람이 예수의 인격체를 갖인 진실한 크리스천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진실이란 무엇인가?
해가 해로 보이고
달이 달로 보이고
별이 별로 보이는 눈 ......

그런 진실한 눈을 갖인 사람이 진실한 크리스천의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81. 가난한 크리스천


믿음의 궁극적 관심은 부귀영화인가?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이 성공한 신앙인의 모습인가?
큰 교회에서 웅장한 성가대의 음악을 들으며 예배를 드리는 모습은 참 멋이있다.
그런데 어쩐지
말구유에서 태어나 목수의 아들로 성장한 후 십자가에서 희생당하신
예수님의 제자의 모습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그 보다는
농촌에서
바닷가에서
비록
겨우 호구지책을 해결하고
교회의 모습이나 강도상의모습이나
어느 것 하나 멋있어 보이는 것이 없어도
십여명  옹기종기 모인 시골 노인들이 어색한 곡조의 노래를 불러도
그곳에서 성도의 거룩함을 느끼게 됨은 왜일까?

눈물로 지새우는 가난한 목회자
하루의 끼니와 그날의 건강을 소원하는
가난한 크리스천에게서
믿음의 진실을 보게됨은
나의 편견 때문일까?

80. 위대한 예수


김진홍  목사님의 [두레성서공부]를 하러 다닐 때이다
[나는 영생구원이 없어도 예수의 제자가 되어 목사노릇을 할 것이다
그 분의 가르침과 생애가 얼마나 훌륭한가?]
김진홍 목사님의 이런 강의는 내게 퍽 충격적이었다.

예수님은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분은 가정의 장남이었다.
그러나 그런 조건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역활도 충실히 지켰고
인생의 최고 목표를 자신의 공명과 가정의 부귀를 추구하는데 두지 않았고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자신의 삶을 기꺼이 희생시켰다.

신의 사명이 아니더라도 남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한다는 것은 위대한 일이다
하물며 인간의 몸으로 태어난 신으로서
피조물인 인간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시킨다는 것은
기독교에만 있는 신의 인격이다
피조물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시키는 신은 기독교 이외에서는 볼 수 없다

그 희생의 정신을 배우고 실천하고 전하는 일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김진홍 목사님은 계명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한 후 강의까지 하다가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신 분이다
인간의 참된 의미 -
그 분은 위대한 예수에게서 그 해답을 찾았다고한다

79. 신앙의 문제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삶 속에 신앙 아닌 신앙이 자리를 잡고 뿌리를 내리려 하고있다.

신앙이란 무엇인가?
『이 세상은 하나님이 만드셨고   하나님의 법대로 살지 않으면 죄인이 되고
  죄인이 죽지 않고 살려면 구세주를 믿어야하고  우리의 육신은 다시 부활하여
  영생을 얻게 된다는 사실』
을 믿는 것이다.

즉, 신앙이란
이 세상에서 주님의 가르침대로 살다가 영생구원을 얻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이다.
그런데
지금 성경에서 예언한 대로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있다.
닥아올 천국  보다는 이 세상에서의  행복추구를 너무 강조하고 있다.
주님이 이 땅에 계실  동안  행하신 기사와 이적은 복음의 확실성을 강조하시기 위함이었지
이 땅에서의 부귀공명을 위함은 아니었다.

결과는 어떤가?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부귀공명을 가르치고
내 몸을 희생하여 남의 생명을 구원하는 아가페는 가르치지 않고 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어디로 갔는가?
교회에서 그리스도의 사랑과 영생구원을 빼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재래 한국 무속종교와 혼돈의 상태이다.

78. 종교간의 갈등


2002년 5월 20일
오늘 이 시간 현재
세계 각처의 대부분의 전쟁과 분쟁과 갈등은 종교간의 갈등에서 비롯되었다.

중동에서의 유태교와 이스람교의 갈등
인도에서의 힌두교와 이스람교의 갈등
영국의 기독교 구교와 개신교의 갈등
우리나라의 불교와 기독교의 갈등 ..................

갈등의 이유인즉
서로 배타적이다
모든 종교는 스스로의 종교 이외의 종교를 인정치 않고 있다.

종교란 무엇인가?

종교를 표시하는 한자의 뜻은 가장 크고 최고의 가르침이란 뜻을 갖고 있다.
인간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조물주의 뜻대로 살아갈 수가 있는가를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모든 종교는 공통적으로 사랑과 자비와 희생을 인간 삶의 최고의 덕으로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왜 종교의 가르침과는 반대로 끔직한 전쟁을 치르며 살상을 하는 것인가?

모든 종교는
스스로의 공동체 안에서 다른 종교를 용납치 못하게 하고 있다.
인간의 생명은 존중하되 자기와 다른 종교인은 사정없이 살생하도록 정경에서 가르치고 있다.
과연 이 세상의 신이 그렇게 명령 했을까?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신과
사랑과 자비와 희생이 없는 신과
헌물 받기를 좋아하는 신이
참된 신일까?

그런 이야기들은 너무나 인간적인 생각이다.
배타적인 것은 겸손과 사랑이 없는 것이고
헌물을 좋아하는 것은 그것으로 호의 호식과 호강을 하려는 인간의 생각과 너무나 흡사하다.

모든 종교의 정경에서 인간의 생각을 빼버릴 수는 없을까?
인간과 세상을 창조한 신은 과연 무엇을 바랄까?
우리가 자식을 낳아 기르면서
자식이 잘 되고 즐겁고 기쁘게 사는 것을 보람으로 알고 있듯이
조물주도
우리들의 즐겁고 기쁜 평화로운 삶을 원하시지 않을까?
스스로 폭탄으로 무장하고 이교도의 공통체 안에서 많은 이교도와 함께 폭사하는 일들......
과연
신이 그렇게 시킨 것일까?

인간끼리는 이교도가 있을지 모르지만
조물주에게는 똑같은 피조물일 따름이다.
인간들이
어떻게 조물주를 배우고
조물주의 규칙을 받든지간에
조물주는 스스로 지은 인간과 세상을 파괴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용서할 줄 모르고
다른 생각을 용납하지 못하고
편협한 협의의 의미의 신만이 참 신이라면
우리는 정말 끔직한 곳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같은 종교인으로 태어나지 못한 공평치 못한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자기의 종교적 신념을 바꾸지 않는 한 타 종교를 용납하고
서로 싸우지 않고 사랑하며 사는 것이 조물주의 참 된 바람이 아닐런지........

우리에게 자식을 낳아 기르도록하심은
조물주의 뜻을 깨우치려는 더 큰 은혜인지도 모른다.
하여
평화로운 세계를 이룩하도록.....................



77. 이단의 문제


기독교가 세계를 지배했던 중세 유럽 -
세계사는 그 때를  암흑시대라고 쓰고 있다.

진리와 정의가 없고 교리가 바로 진리이고 정의였다.
'지구는 둥글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
이 간단한 진리가 교리에 어긋난다며 처형하였다.

교리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실제 생활에서 지키고 살기 위한 해석과 적용의 원칙아닌가?
아무리 권위있고 성스러운 사람들이 심사숙고하여 만든 교리와 규범이라고 하더라도

그 것이 어찌
천하보다도 귀하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으며
하나님이 독생자를 희생시키면서까지 지키려하는
인간의 생명에 비할 수 있으랴?

설혹
그 것이 진리였다고 하더라도 교리에 어긋난다고 사람을 죽여야 했을까?
그 진리가 교리에 어긋난다고하여 많은 사람들을 죽게한 사제들은
과연 구원 받을 수 있을까?

사랑과 희생과 자비의 하나님을
무서운 하나님으로
진노하는 하나님으로
극히 제한된 사람만을 편애하는 분으로 만든 사람들은
과연 구원 받을 수 있을까?

무엇이 이단이고
무엇이 죄인가?

스스로
하늘나라의 비자를 발급하는 영사라도 된 것처럼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죽이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착취하고

하나님이 싫어 멀리 떠나도록
하나님과 하늘나라를  잘 못 가르치고 인도하는 사람들은 무엇인가?

우리는 그들을 무엇이라고 불러야하나......
언젠가 우리 모두 요단강을 건넌 후
그런 무서운 사제들과 교회의 지도자들이  모여 있는 곳을
낙원 -
에덴동산-
천국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

2013년 11월 12일 화요일

76. 한재현 선생님


2005.11.6.
1953년에서 1957년 사이에 삼청교회 초대성가대 지휘자였던
한재현 선생님이 원로목사님이 되어 돌아왔다.

한재현 선생님은 감신대를 중퇴하고 있다가
최준호 목사님 시절 중간 쯔음에 교회성가대 지휘자로 오신 분이다.
그 이전에는 가끔 설교 전 특별찬송이 있기는 하였지만
성가대라는 것이 생긴 것은 한재현 선생님이 지휘자로 오면서 부터였다.

중키에 꼽슬머리인 미남형의 한재현 선생님은
옥인동의 전통 한옥에 살았는데 부모님과 위로 형님이 한분 계셨는데
감신대를 왜 중퇴하였는지 아무도 묻지도 않았고
또 스스로 말한 적도 없다.

우리보다 10년 년상이니까 금년 76세이시다.
지금이나 그 때나 목회가 쉬울리가 없다.
신앙적인 자기완성이 있어야 하고
하나님의 소명이 확실하여야하며
복음을 위하여 생명을 바칠 각오가 있어야한다.

그 당시는 지금보다 더 어려운 목회환경이었다.
목회지는 구할 수 있으나
보수가 거의 없는 교회가 대부분이었다.
목회는 곧 가난한 삶이라는 것이 상식이었던 시대라
그 어려움을 아는 사람들은 감히 그 길을 가려고 하지 않았다.

어쩌면 한재현 선생님은 음악목사를 꿈꾸었는지도 모른다.
지금처럼 음악목사 제도가 있었다면 감신대를 마치고
음악목사가 되었을 것이다.

눈은 늘 밝고 파란 색을 띄고 있었으며
미소를 띈 얼굴은 늘 불그레한 빛이 있었다.
정열적인 모습의 한재현 선생님은
마치 영화배우와 같은 인기가 있었고 대원들의 존경을 받았다.

한 때
중등부, 고등부, 청년부를 합하여 『삐율라회』라는 이름으로
통합 운영된 적이 있었다.
『삐율라회』총회를 할 때면 약 70여명의 회원들이 앉아서 회의를 하였다.

우리는
안병훈(전 조선일보 부사장), 김재형(용의눈물 PD), 송한규(아나운서)등과 함께 중고등부였고
한재현 선생님은
홍성배 선생님(원로목사), 서성태 선생님(원로목사), 김명환 선생님(김동성 권사 삼촌)등과 함께 청년부였다.

『삐율라회』에서는 가끔 신앙토론회를 하였다.
토론회는 주로 쳥년부에서 리드를 하였는데
조금도 양보를 하지않고 열띤 토론들을 하였다.
한재현 선생님은 그런 토론회가 있을 때는
토론회의 주멤버였다.

서성태 선샌님은 연대 철학과 였고 김명환 선생님은 연대정외과 였으며
안병훈의 누님 안병숙은 이대 정외과 등 모두 쟁쟁한 사람들이었으므로
토론은 아주 활발히 진행되었다.

한 시간씩 길게 진행되던 토론회는 아무도 지루하게 생각하지않고
흥미있게 들으며 참가를 하였었다.

한재현 선생님은 교회를 떠난지 얼마 후
고등학교를 갖졸업한 지금의 사모님과 결혼을 하였다.
그리고는 배화여고 정문 근처에서
부부가 작은 문방구를 운영하였다.
우리가 신혼가정을 방문하였을 때
부부가 머리를 맞대고 동전을 헤아리며 하루 장사한 것을
결산하는 것을 볼수 있었다.

그 삶의 모습이 마치 동화에 나오는 그림과 같이 아름다워 보였다.
봄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세검정으로 가족 나드리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한재현 선생님은 성경속에 있는 유토피아를
현재의 삶속에서 찾고 있었다.
그리고 수십년 소식이 없었다.
....................................................................................
한재현 선생님은 오관석 목사님이 시무하시는 서울중앙침례교회의
부목으로 시무하시다가 은퇴하시고 지금은 원로목사가 되시었다.

같이 예배를 드린 한재현 원로목사님은 축도를 해주시었다.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여기에 모인 모든 이들에게 함께하실 지어다....

예배가 끝난 후 장로교 보수교단 출신의 어떤 교인이
이의를 제기하였다.
어떻게 하나님에게 [~지어다] 명령어를 사용 할 수 있읍니까

이 축도 [~지어다] 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위탁받은 예언자로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말씀하는 것이지
인간의 자격으로 하는 것이 아니니 당연하다는 의견과
오래동안 장로교 교파간의 싸움이 있어 왔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독특한 자기의 길을 가던
꼽술머리 미남의 한재현 선생님...
지금은 다시 고집스런 하나님의 선지자가 되어
자기 소신껏 복음을 증거하고 있다.

75. 채수인 장로님

채수인 장로님

교회가 낡은 판자집에 생철지붕이었을 때에는
동네사람들도 잘 오지 않았었다.

낡은 마루바닥에 헌 방석 밖에 없었으니
손님이 와도 어디 앉기가 불편하였다.

그런데 벽돌로 지은 교회건물이 생기고
의자를 놓게 되자 많은 교인들이 모이게
되었다.

그 중 눈에 띄는 분이 몇분 계셨는데
대법원에 다니시던 채수인 장로님이시다.

하도 가난한 교회인지라 힘이 있는 교인이 별로 없어서
힘이 있는 특히 남자 교인이 오면 모두에게 힘이 되고
일꾼을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었다.

최민자 장로님이 살던 집 근처에 살던 채장로님은
유학자이셨던 아버님의 큰 가르침 속에 살아오셨기 때문인지
언행에 늘 절제가 있었고
교회의 일을 할 때에는
마치 잘 모르는 사람처럼 늘 겸손하시었다.

한번은 당회때에 권사를 추천해야 하는데
대상은 여러분인데 자리가 모자랐다.
그러자 부인이신 한남순 속장님을 빼고 다른 분을 먼저
추천하도록 목사님에게 강권하시었다.
그 바람에 한남순 권사님은 다른 분들보다
조금 늦게 되시었다.

채수인 장로님이 장로로 취임하시고 얼마 안있어
이사하신 집에 화재가 나서 집이 전소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채수인 장로님과 온 가족들은
예전 처럼 여전히 웃으면서 교회에 나와
주일예배를 드리었다.

장로가 되자마자 집이 불에 타버렸으니 시험에 들법도 하건만
장로님과 장로님 가족들 모두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그랬다고 하면서
웃으면서 지내시었다.

청년들은 채장로님을 만나면 늘 어려워 하였다.
전산초 장로님처럼 말이 별로 없으시지만
그분의 반듯한 신앙생활이 거울이 되어
나를 비추는 것 같아
채장로님 앞에 가면 몸가짐을 조심하곤 하였다.

병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 남기신 말씀 중에
삶을 통하여 아무 한이 없지만
하나님이 만일 4년만 더 기회를 주신다면
직장생활 때문에 마음껏 하지못한 하나님 일을
열심을 다하여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었다.

평생을 살면서
채장로님의 마지막 남기신 그 말씀이
나의 신앙생활 속에서 나를 채찍질 하는 말씀이 되어있다.

74. 박웅천 목사님

박웅천 목사님

90 여년의 삼청교회 역사에서 가장 비중 있는 분이 박웅천 목사님이시다.

집없는 은퇴 목사님의 숙소인 주안 감리교 원로원의 총무를 지내신
박창국 목사님의 장남이시다.
아버님이 만주와 평양 등지에서 목회하실 때 유소년기를 보내신 박웅천 목사님은
철저한 독립지사의 아들로 교육되었으며
실수로 집에서 모르는 결에 일본어를 사용했다가는
아버지에게 반 죽도록 매를 맞았다고 한다.

박웅천 목사님은
감신 재학중 서울 수표교회에서 성가대를 지휘하며 전도사로 목회실습을 하셨고
군목으로 입대하여 6.25 전쟁을 겪으며 수많은 전투를 경험하면서 전쟁의 참혹함을 경험하였다.

유명한 백마고지 전투때는 연대장이
"목사님!
 정말 어려운 전투를 하고 있습니다.
 나는 부하들과 목숨을 걸고 전투를 할터이니
 목사님은 전투에 이기도록 하나님께 기도해 주세요"
초 저녁부터 시작된 전투는 밤을 새면서 계속되다가
새벽녘에 들리는
"만세~~   만세~~"
소리를 듣고 전투가 끝난 것을 확인하였다고 한다.
유명한 김형욱 정보부장은 당시 같은 연대의 작전과장이었다고 한다.

주월사령부 군종참모로 있을 때 권총을 차고 다니는 군목들에게
총을 끌르라고 지시하면서 목사는 군복을 입었어도 성직자 이므로
아무리 위험에 처하여도 총을 쏘아서는 안된다고 가르첬다고 한다.

법과 대학을 나오고 감신대를 나온 박웅천 목사님은
항상 원칙이 뚜렸하였다.
지방회나 년회를 할 때에는
교회법의 유권적 해석을 하는 위원회의 책임을 맡곤하였다.
한참 왈가왈부 하다가도
박웅천 목사님이 교회법의 유권적 해석을 하고 나면
더 이상 논란들이 멈추곤 하였다.

그래서인지
박웅천 목사님은 분당이 있고 편싸움이 있을 때는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않으셨다.
감리교단이 두번째 다시 갈라져 싸울 때
삼청교회는 무소속으로 어느 편에도 가담치 않았다.
그리고 지방회에도 년회에도 참가하지 않고 교단이 통합될 때까지 기다렸다.

감리교 본부에서 일하시는 어떤 목사님은
박목사님에 대하여 이렇게 말해 주셨다.

"박웅천 목사님은 감리교회에서 전설적인 인물입니다.
 그분의 이력서는 석 줄 밖에 없어요.
  1. 감리교 신학대학 졸업
  2. 육군군목 제대
  3. 삼청감리교회 목사"

"박웅천 목사님은 모든 목회의 표본이십니다"

서울 문래동교회
이기덕 원로목사님은 이렇게 말해 주셨다.

"그분은 감리교회의 거물입니다.
 교단의 직책을 맡은 일이 없고
 부흥회를 다닌 일도 없고
 책을 써 낸 적도 없지만
 모든 후배 목사들의 사표가 되고 있습니다."

수유리에 있는 박웅천 목사님을 찾아 뵈었을 때
근황을 말씀해 주셨다.

"요즘은 평신도 훈련을 하고 있어.
 담임목사가 이취임을 할 때면
 원로목사라고 인사를 오는데
 당신은 내 담임목사이고 나는 그 교회 교인이니
 식사는 내가 대접해야한다고 하며
 식사값을 내가 내곤 했지."

"요즘 평안하세요?"

"처음에는 좀 이상하더라구.
 오는 전화도 없고 전화 할데도 없고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찾아갈 사람도 없고.
 온 갖 스트레스에서 해방되니까 살것 같아...
 얼마나 마음이 편안한지
 아~  이런 세상도 있구나 하며
 전혀 새 세상에서 사는 기분이야."

"일주일에 한번씩 성경공부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안할래~
 아 나도 이제는 마누라하고 여생을 보내야지
 또 그런 스트레스르를 다시 왜 받아.
 그냥 쉬게 내버려 두라구...."

부목사는 고사하고 전도사나 사무원 한 사람도 없이 30년을 혼자 견디신
박웅천 목사님의 헌신적인 목회는
삼청교회를 오늘의 아름다운 교회로 하나님께 봉헌되도록 하였다.

73. 심재현 Story

심재현 Story
삼청교회의 옛날 이야기

1960년 군에서 제대할 즈음
교회에 멋있는 사람이 나타났다.

육군 하사 였는데 육군본부 정훈감실에서 근무하면서 성균관대학 야간을 다니고 있었다.
그는 진천 출신으로 정덕용 장로를 따라서 나오기 시작했다.
심재현은 늘 주위에 사람들이 많이 따라서 친구인 임수웅, 조명래, 안계갑 등이 나왔고
한신대에 다니던 정권모도 합세하여 삼청교회 청년부의 부흥을 맞게 되었다.
후에 목사가 된 코메디언 곽규석 씨의 동생도 따라 나왔고
임수웅을 따라 윤정순, 이성녀, 나근용의 트리오(파인트리)도 나왔으며
본교회 출신 청년들과 함께 약 30여명의 일군들이 교회학교, 성가대, 청년부 등에서 봉사하였다.

나는 심재현을 따라 다니며 여러 이름있는 문인들을 만날수 있었는데
KBS 인기 방송작가 윤혁민 씨, 신태양사 편집장 등과 명동과 시청 앞 다방에서 만나며
삶과 이상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태권도, 배구, 음악, 문학 등에 발군의 소질이 있던 그는 나중에 홍익대학교로 옮겨
김은우 교수의 부인 김정숙 교수 밑에서 조각을 공부했는데
졸업 후 홍익대 교수로 재직하다가 도미하여 20여년 살다가
수년 전 귀국하여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국적을 회복하였다.
미국 LA에서 SIMONSON(LACA)화랑을 경영하느라고 본업인 조각을  못하다가
귀국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는데
그의 평생 쌓은 인생경험, 믿음생활, 문학, 철학, 음악 등이
마치 화산이 폭발하듯 작품으로 분출되기 시작하여 근래 보기드믈게 그의 작품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최근작으로는
광주 상무대의 5.18 민주항쟁 기념관, 대구 섬유공원 탑, 시청 앞 신동아 빌딩 조형물,
영등포 롯데백화점 앞 스카이보드 타는 아이 조형물,
목동 기독교 방속국 앞 기념탑(발강, 노랑, 파랑 색) 등 여러 작품들이 있다.
그의 조각과 친구 9 명중 7명이 미술대학장을 지냈으며
대학장을 지내지 않은 조각가 조성묵은 세계적인 조각가로 칭송받고 있다.

그는 현재 명성교회의 장로로 있으며 경희대 미대에서 강의도 하고 바쁜 작품활동으로 만년을 보내고 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부할 때나 가난할 때나  병들었을 때나 건강할 때
늘 그의 곁에는
손피득 목사님의 셋째 따님인 음대 출신 손미자 권사의 웃음 띤 내조가 큰 역활을 했음은 물론이다.
[아내의 학]을 가르치는 대학이 있다면  교수로 추천하고 싶은 분이다.

72. 임병학 장로님

임병학 장로님
삼청교회의 옛날 이야기

이재은 목사님이 부임하시고 교회땅을 화재때문에 점령당했던 사람으로부터 되찾고 보니
할 일이 태산같았다.
교회 땅은 다시 찾았으나 건물은 다 타서 없어지고
사찰집사가 살던 작은 방 하나가 남아 있었다.
그 방은 교회화재로 집을 잃은 강씨댁 노인이 교회 땅에 상추, 파 같은 것을 기르며 거처하던 곳인데
겨우 모습만 갖추고 있었다.

모두 그냥 처다만 보고 있는데
목사님이 웃옷을 벗어 던지고 삽과 곡괭이를 들고 땅을 고르기 시작하자
모두 들러 붙어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 때 눈에 띄는 분이 한 분 있었다.
원래 원서동교회에 계시다가 오신 분인데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앞장서서 척척 하시는 것이었다.
흙 일도 목수 일도 무엇이든지 익숙하게 처리하시었다.
김도영 권사님이 돌아가시고 노인 김장로님은 천주교로 개종하신 후 남자 장년이 없던 때에
임병학 장로님은 교회의 중심에 서서 헌신적으로 일하시었다.
못 박는 일에서 부터 페인트칠하는 것 등
교회 구석구석 장로님의 손길이 안다은 곳이 없었다.
마치 내 집을 가꾸듯이 교회를 가꾸시었다.

대개의 경우 교회에서 하는 일이 많으면 공치사를 하게되고 그것을 빌미로 큰 소리 치게 되기가 쉬운데
그 분은 늘 겸손하게 마치 일하러 온 분처럼 열심히 봉사만 하시었다.
언제나 몸으로 봉사하는 사람들은 늘 낮은 곳에서 일한다.
장로로 피택될 때도 늦게 되었지만 교인들의 마음 속의 존경을 받으며 묵묵히 봉사하시었다.
그 봉사하는 열정의 근원은 무엇인가?
그 것이 몹시 궁금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감리교 신학대학에 2학년까지 다니다가 사정이 있어 중퇴하신 분이었다.

생각해 보면
임병학 장로님은 목회하는 심정으로 평신도생활을 하신 듯하다.
장로가 되신 후로는 부흥회를 인도하러 나가시곤 했는데
신유은사가 많이 나타나서 이곳저곳에서 초대하는 바람에 퍽 바쁜생활을 하시었다.
끊임 없는 기도와 봉사생활. 늘 기쁜 마음으로 내조하시던 조희복 권사님...
그런 신앙 속에
늘 기쁜 모습으로 맏 아들 노릇을 한 청자, 화끈하게 일하던 정덕, 깔끔한 정숙, 굵은 목소리의 베이스 종규, 인형같이 예쁘던 은희 모두 훌륭한 신앙인들이 되었으며
아버지의 믿음을 본 받아 정덕은 목회자가 되었고, 청자와 종규는 성가대 지휘자로 봉사하고 있으며 정숙이와 은희도 존경받는 교회 지도자가 되었다.

늘 궂은 일이 있을 때는 그 현장에서 일하셨던 임병학 장로님을 생각해보면서
요즘 내 신앙생활을 반성해 보고 있다.

71. 선생과 제자 그리고 선배와 후배

선생과 제자 그리고 선배와 후배
삼청교회의 옛날이야기

얼마 전, 기도원에서 190cm의 큰 키에 늘 반달 웃음을 웃는 정종혁 군을 만났다.
그는 song team 중에서도 기타보다는 drum을 특별히 잘치는 청년인데
그의 노래 반주하는 모습을 보면 동그란 알의 작은 안경을 쓰고
늘 기쁜 모습으로 drum을 치곤한다.
그는 언제나 싱글벙글 웃으며 즐겁고 밝은 표정을 유지하고 있다.
그를 보고 있노라면 인생은 참 행복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그를 잘 아는 같은 교회의 장로님은 그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그 장로님의 걱정과는 달리 늘 밝고 명랑하였다.

도대체 누가 그를 가르치고 키워 놨을까?
한번은 그에게 직접 물어 보았다.
[주일학교 때 선생님이 누구셨니?]
그는 서슴치 않고 대답하였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은 조세형 목사님이구요
중고등부 때 선생님은 서승직 목사님이에요  
그 두분 목사님이 어렸을 때 내 신앙의 기초를 만들어 주신 분들 이에요]
조세형 목사님은 현재 용두동 교회 교회학교 담당 부목사님이고
서승직 목사님은 삼선교회 교회학교 담당 부목사님이다.
두 분 다 청년들을 위한 집회에 강사로 활동하고 계신 감리교 목사님들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우리 교회를 생각해 보았다.
우리 교회 청년들은 어떻게 생활하고 있나?
우리 교회 믿음의 후배들은 ?

교사가 학생에게 가르쳐 주고 선배가 후배를 지도해 준다.
교회학교 교사는 선생이면서 동시에 믿음의 선배이기도 하다.
나는 어떤 믿음을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었나?
나는 후배들에게 어떤 하나님을 소개해 주었나?
나로 인하여 실족한 후배는 없었나?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세상의 지식은 선배에게서 배울 수 있지만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체험하지 않고는 알 수 없다고...
결국 믿음이란 먼저 체험한 자가 체험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안내해 줄 수밖에 없다.
누가 스승이고 누가 선배인가?
늘 기쁨 속에 살 수 있는 정종혁 군 같은 형제, 늘 확신 속에 후배를 지도할 수 있는
30대 조세형 목사님과 서승직 목사님 같은 분...
나이와 관계없이 그 분들은 모두 나의 스승이고 선배라고 생각한다.
내가 주님 안에서 기쁨과 참 평안을 얻지 못하는 한 ,
그들은 영원히 나의 스승이고 선배일 수 밖에 없다.
특히 하나님 앞에서.....

70. Marian Anderson의 Deep River와 임재천

Marian Anderson의 Deep River와 임재천
삼청교회의 옛날이야기-

1950년대 중간 이후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정착하기 시작했을 때 미국 유명 앨토 가수 Marian Anderson이 한국에 다녀갔다.
지금은 믿기지 않는 얘기이지만 그런 유명가수가 오면 대개 이화여자대학교 대강당에서 공연을 하였고
강당은 꽉 차서 발디딜 틈이 없었으며 복도까지 앉아서 들을 정도로 열성들이었다.
그가 다녀간 후 한국 전체에는 Spiritual 전성기에 들어간다.
교회는 말할 것도 없고 미 8군 에서 활동하던 Jazz가수를 중심으로 극장이나 라디오 어디를 가도
Spiritual은 온 나라에서 불려지게 되었다.

Marian Anderson의 Deep River와 Nobody Knows my troubles I've seen은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Louis Amstrong의 Saints come marchin' in등 많은 Spiritual이 교인이거나 아니거나
주로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퍼져 나갔다.

깊은 강 내 고향은 요단강 저편에 있네
오 주여 나 저 강을 건너 안식에 들어가고 싶어요

아무도 내가 당하는 고통을 모르네
오직 주님만 아시네

오 성자들이 저 천성문을 향하여 들어 갈때
주여 나도 그들중 하나가 되게하소서

Spiritual이 유행하면서 흑인 문학전집들을 활발히 읽게 되었고 노예생활에서 해방을 갈망하며
백인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노예들의 하나님도 되심을 믿고 부르는 노래가 Spiritual이라는 사실도 알게되었다.
이 Spiritual은 Jazz와 Blues로 발전하였는데 Spiritual에서 하나님을 향한 갈망의 광적인 표현이 Jazz이고
노예생활의 슬픔을 깊게 표현한 것이 Blues가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Jazz나 Blues를 이해할 때 그 배경에 있는 기독교의 영적표현을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수박 겉할기가 되고 만다.
오늘 날 많은 종류의 리듬과 템포로 음악의 다원화 시대를 이루고 있으나
그 시조가 되는 Jazz와 Blues가 Spiritual에서 파생된 것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요새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이라고 하여 모든 종류의 장르에서
크리스천 음악을 적용하려는 노력은 가상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음악은 Spiritual이나 Classic을 막론하고
모두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노래한 것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기억해야한다.
Spiritual이 그랬던 것 처럼 Classic의 원조인 중세 바로크 음악도 바로 교회음악이 그 중심이라는 것을 주목해야한다.

Deep River- 오늘 날 우리나라 경제적 현실은
많은 사람들을 건널 수 없는 Deep River 건너편에서 고민하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강 건너에서 호화스럽게 천국처럼 살고 있는 상류사회를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기도하게 만들고 있다.

Deep River, My home is over Jordan
Deep River, Lord! I want to cross over into the camp ground

Nobody knows my troubles I've seen
Nobody knows but Jesus
Nobody knows my troubles I've seen
Glory Hallelluia

Oh, when the saints come marching in
Lord I want to be in that numbers

모든 노래는 인간과 하나님이 음악으로 대화하는 또 다른 종류의 기도이다
미국 뉴욕에서 작고한 임재천 장로는 청년시절에 Deep River를 항상 즐겨 불렀고
우리들로 하여금 그 노래를 좋아하게 만들었다.

69. 전산초 장로님

전산초 장로님
삼청교회의 옛날이야기

찬송가 305장 [사철에 봄바람 불어 잇고]는 시편 112:1-3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자의 후대가 복이 있으리로다
부요와 재물이 그 집에 있음이여 그 의가 영원히 있으리로다)
을 생각하시면서 쓴 전산초 장로님의 아버님이신 전영택 목사님의 시편이다.

(사철에 봄바람 불어 잇고 하나님 아버지 모셨으니
믿음의 반석도 든든하다 우리집 즐거운 동산이라
고마와라 임마누엘 예수만 섬기는 우리집
고마와라 임마누엘 복되고 즐거운 하루하루)
이 시를 쓰신 목사님의 심령에는 이미 천국이 임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시사철 주님의 사랑으로 가득한 봄바람이 부는 가정;
그것은 예수를 섬기는 믿음의 가정에서만 있는 일이다.
우리는 흔히 죽어서 가는 곳을 천국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천국은 금은보화가 있어서 천국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신 곳이 천국이라는 믿음을 갖어야한다
금은보화가 아무리 많아도 하나님이 안 계신 곳은 천국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말씀과 시와 믿음은 전산초 장로님의 인생관이 된 듯하다.
우리가 젊었을 때 전산초 장로님이 남편되시는 분과 팔장을 끼고 다정히 걸으시며
퇴근하여 집으로 가시는 것을 많이 보았다.
우영 인영 희영 문영 4형제는 그런 사랑으로 가득한 부모님 밑에서
늘 밝고 자신 있는 모습으로 자라서 성인이 되었다.
네 형제 누구를 보아도 어머님의 그 인자하고 사랑스런 미소를 닮은 얼굴과
자랑스러운 크리스천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교회가 어려울 때에는 집을 예배처소로 선듯 내놓으셨고
늘 교회에서는 상하전후좌우를 사랑으로 연결시켜 주셨다.
우리는 가끔 성경말씀과 신앙적인 열정만 가지고 장로님께 어필하려 하다가도  
예수님의 모습을 하신 장로님의 웃음띈 얼굴에서 모든 해답을 얻고 스스로 녹아지곤 하였었다.
우리 또래의 청년들을 여러 사람 직장을 알선하여 주셨으며 늘 모든 사람의 어려움을 걱정해 주곤 하시었다.
청년들이 아무리 잘못하는 일이 있어도 화난 얼굴로 나무라시는 일이 없었고  
빙그레 웃음 띈 얼굴로 바라보시는 것 만으로 스스로 회개를 하게 만드시었다.
그도 인격자이니 내가 구태여 구체적인 지적을 안하더라도 알게 된다는 말씀이었다.
물론 이런 교육에는 솔선수범하는 삶의 자세가 필수적이다.
너무나 인격적인 분이시기에 바라보는 눈빛만으로도 교훈이 되었던 것이다.

전산초 장로님을 우리보다 하나님께서 더 사랑하셨나보다.
장로님의 무덤 옆에는 연예인 출신 문오장  목사님의 묘가 나란히 있는데
장로님은 육신이 지고서도 목사님의 벗이 되어 부활의 날을 이야기하고 계신듯 하다.

68. 염애경 권사의 부흥회

염애경 권사의 부흥회
삼청교회의 옛날이야기

한기모 목사님이 계셨을 때 염애경 권사의 부흥회가 있었다.
지금은 부흥회라고 해도 주일 저녁이나 월요일 저녁 시작하여 목요일 새벽기도까지가 보통인데
그 당시는 월요일 저녁부터 시작하면 토요일 새벽에 끝났고 마지막 금요일에는 철야기도를 하면서
은사집회를 갖는 것이 보통이었다.
보통 부흥강사는 다 각각 특징이 있었는데 염애경권사는 입신 시키는 것이 특징이었다.

입신의 원래 의미는 하나님의 신이 임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인데
은사집회에서는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것을 의미한다.
입신한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
하늘나라를 보고 왔다는 사람도 있고 장래의 일을 예언적으로 보고 왔다는 사람도 있었다.
염애경 권사의 메씨지 중심은 종말론이었다.
주예수의 강림이 가까웠으니 예수를 잘 믿어야한다는 요지이었다.
집회 때면 <주 예수의 강림이 불원하니 저 천국복 얻을 자 회개하라 ~~>라는 찬송을 자주 불렀다.

그러면 찬송을 하다가 눈이 감키는 사람이 있으면 염권사가 가서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면서 밀면
잠자듯 드러누워서 입신에 들어가게 된다.
입신은 찬송을 하다가 하기도 하고 설교를 듣다가 하기도 하는데
짧게는 15분 정도 에서 한 시간을 넘게 입신하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믿음이 없어서 인지 찬송도 열심히 부르고 기도도 열심히 하고 설교도 열심히 들었으나
입신 경험은 하지 못했고 삼청교회 교인보다는 다른 교회 교인들이 입신을 더 많이 하였다.
그 때 국회관사에 살던 40대 후반의 김도영 권사님이 있었는데 믿음이 좋은 인테리였다.
내 바로 앞에 앉아서 열심히 기도하면서 찬송을 부르고 있었는데 드디어 입신을하였다.
보통 30분 이내에 깨어나서 입신중에 본것을 간증하곤 했는데 권사님은 두시간이 넘도록 깨어나지를 않았다.
강사 염권사는 아마 천당을 많이 구경하고 계신가보다고 하면서 깨어나시기를 모두 기다렸다.

하나님이 계신 하늘나라 천당은 과연 어떤 곳일까?
모두 궁금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드디어 권사님이 깨어나셨다.
그날 입신했던 사람들이 한 사람씩 나가서 간증하는데 김도영 권사님 차례가 왔다.
그런데 권사님은 우리에게 실망을 주었다.
권사님은 입신해서 천당을 구경한 것이 아니라 옆에 사람이 기도하면서 마루장을 꽝꽝 두드리는 바람에
입신이 되다가 깨어나고 입신이 되다가 깨어나고 그러다가 두시간이 지났다는 것이다.
그러니 다음부터 입신한 사람 옆에서는 기도할 때 조심해야 한다는 광고의 말씀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그런 넌센스가 없다.
하나님의 계시가 마루장 두드리면서 기도하는 바람에 중단되다니 참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그러나 그 당시는 6.25. 이후 전쟁의 앙금이 채 가시지 안은 상태에서
어떤 모양으로던지 하나님과의 만남을 갈급하던 때였다.
김도영 권사님은 중앙청 공무원으로 계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분이 성경지식이나  기독교 상식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하나님의 뜻이 아닌 우리의 의지로 억지로 체험하려 할 때
그런 오류에 누구나 빠지게 된다.

하나님이 창조해 주신 이 천지간에 하나님이 준비해주신 사람과 사는 이곳;
지금 이 시간이 바로 하나님의 품 천국임을 느낄 수 있어야한다.
비록 삶이 아무리 고달프더라도
이 곳은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준비해주신 에덴동산임을 믿을 수 있어야한다.

67. 이재은 목사님

이재은 목사님
삼청교회의 옛날이야기
                                               
우리가 목사님을 뵈오러 교회를 찾아가면 늘 문이 열려 있었고 문에 달린 방울 소리를 듣고는
사모님이 활짝 웃는 모습으로  
<어서와요>
하고 나오시며 방으로 맞아주셨다.
그러면 조금 있다가
<누가 왔어?>
하면서 서재에서 책을 보시던 목사님이 우리를 반겨주셨다.

서재에 안 계실 때에는 예배당에서 기도하다가 나오시었다.
목사님은 등이 거북이 등이라고들 했었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책을 많이 읽고  
기도를 많이 하시느라고 등이 구부러저서 그런 모습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이재은 목사님이 부임하신 후,  불타버린 교회의 폐허 위에 천막을 치기 위해 터를 닦을 때,  
러닝 셔츠 차림으로 삽을 들고 땀을 흘리며 일하시던 모습은 모든 교인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목사님은 설교를 하고 심방 하면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나 해주시는 거룩한 분으로만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그 거룩한 분이 우리와 함께 땀을 흘리며 일하고 있는 것이었다.

교회를 잃고 실의에 빠져 있던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사자가 우리와 함께 우리의 방법으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은 감격적이었다.
앞장서서 일하시는 목사님의 모습에서  교인들은 새 힘을 얻게 되었고
천막을 친지 얼마 안되어 새 교회를 짓게 되었으며 교회는 다시 부흥할 수 있었고
교회를 통하여 많은 일군들을 배출하게 되었다.

목사님은 항상 힘차고 자신 있게 일하시었다.
우리는 그 힘과 용기를 어떻게 갖게 되신 것인지 매우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목사님은 중학교(6.25전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분리되지 않고
6학년까지 있었음) 대대장이셨다고 한다.
지금은 학교 대대장이라고 하면 조회 때 앞에서 차려, 경례를 큰소리로 외치는  
덩치가 큰 학생정도로 생각하고 있지만 6.25 이전의 학교 대대장은 격이 지금보다 높았다.
군대 편제를 갖춘 학도호국단의 지휘자로 유사시 군대의 대대 편제를 갖출 수 있는 그런 조직의 지휘자이었다.

목사님께서는 학교 소년단원(Boyscout) 30여명을 인솔하고 개성서 피난을 나오셨다고 한다.
30여명의 단원들을 인솔하고 부산까지 내려가신 목사님께서는 은영극장에 있는 피난민 수용소에서
봉사를 하면서 단원들의 숙식을 해결하셨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도 신학을 공부하시고 군목이 되어 육군사관학교 교목으로 계시다가 전역하시었다.

목사님께서는 교회행정에 있어서 매우 조직적이시었다.    
교회에 나오는 사람은 모두 기관과 속회와 선교회에 소속되게 하시었다.
그래서 누구나 교회에 나오면 해야할 일과 직책이 있었다.
우리는 거의 매일 저녁 식사를 마친 후 교회 뜰이나 주택에 모여
우리가 좋아하는 목사님과 이야기하면서 시간을 보내었다.  
그때의 시간들이 자연스러운 카운슬링이 되었고 각자의  미래를 생각하는 중요한 시간들이 되었으며
후에 청년속회로 발전하게된 기초가 되었다.

그 때 목사님과 나눈 이야기의 내용은 다양하였다.
한 인간으로 살아가야 할 인생철학에서부터 국가관, 시국관, 동양철학, 서양철학,
심지어 젊은이들을 위한 사랑의 문제도 다루었다.
목사님께서는 우리가 아무리 말 같지 않은 말을 하더라도 누구의 말이든지 진지하게 들어 주셨다.
목사님의 설교 말씀은 항상 그 평소 하던 이야기의 연장선상에 있었고
우리가 평소 토론하던 문제들을 성경을 통하여 해답을 주곤 하시었다.

그 때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누구 하나도 가난이나 무식한 것에 대하여 생각한 적이 없었고 모두 교회를 통하여
사랑과 용기와 보람을 느끼고 살았다.
우리는 목사님과 함께 하던 그 시절을 유토피아로 생각하고 있다.
그때의 청년들은 지금 모두 60이 넘었거나 가까이된 사람들이지만 그 즐거웠던 낙원을 생각하며
가끔 모임을 갖고 있다.
그 때의 청년들은 목사와 장로와 권사들이 되었지만 지금도 무슨 어려운 일을 만나면
<이재은 목사님이라면 어떻게 해결하실까>
생각해 보며 힘을 얻고 있다.

언젠가는 수요예배를 막 시작하려고 하는데 목사님께서 위경련이 일어나셨다. 배를 웅켜 잡고  방을 데굴데굴 구르고 계셨다                                  
수요예배를 드리려고 온 교인들은 모두 어쩔 줄을 몰라서 쩔쩔매고 있었다.
교회에서 약 50미터도 채 안 되는 곳에 병원이 있었는데 아무도 그리로 모시고 갈 생각은 않고
모두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 때 침을 잘 노으시던  권사 님이 오시었다.
그 당시만 해도 수요 예배에 참석하는 남자어른이 별로 없던 때라
모두 권사님만 쳐다보고 일을 해결해 주기를 바랐다.
권사 님은 목사님을 진맥하시더니 장경련이라고 하면서 시간이 되었으니 먼저 예배를 드리고
목사님께 침을 놔드려야겠다고 하시면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권사 님이 대신 인도하신 수요 예배는 30분만에 끝났다.

예배가 끝나자 권사 님이 침통을 꺼내어 목사님의 이곳 저곳에 침을 찌르더니  
얼마 후 목사님의 통증이 멈추고 안정을 되찾게 되었다.
그러나  교인들은 이 일로 두고두고 하나님께 회개하며
이재은 목사님에게 큰 빗을 진 사람의 심정으로 지내게 되었다.

<우리가 만약 그렇게 아파서 방을 데굴데굴 구르고 있었으면
목사님이 예배부터 드리고 천천히 권사님을 찾아 침이나 놔주도록 하셨을까?>
목사님께서는 분명 얼른 들쳐업고 병원으로 뛰어 가셨을 것이다.
<침을 먼저 놓고 나서 목사님이 안정되시는 것을 보고
시간이 좀 늦게 예배를 드리었다면 하나님이 노하셨을까?>
<목사님의 병원비를 교회재정에서 감당할 수가 없을 정도로 우리는 가난하였나?>
<예배를 먼저 드리다가 그 사이 목사님이 잘못되셨으면 어쩔 번하였나!>
우리들은 전형적인 바리새인 이었다.
교인들은 그 때 일을 늘 부끄러워하였고 자랑하던 신앙에서 겸손해지는 신앙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목사님은 교회음악을 사랑하시었다.
교회가 작을 때에도 늘 성가대와 특별 찬송 순서가 있었고 심지어 다른 곳으로 설교를 하러 가실 때에도
설교전에는 꼭 특별찬송 순서가 있었다.
목사님께서는 종로경찰서 경목이셨기 때문에 매달 유치장 설교를 하시었는데
가끔 목사님의 설교 전에 나는 특별찬송을 했었다.

1960년대 초 어느 겨울이었다.
목사님께서 온양 지방 현충사 부근 어느 교회에서 자비량 부흥회를 인도하실 때가 있었는데
목사님의 설교 전에 특별 찬양을 한 적이 있었다.
온양역에 마중 나오신 전도사님을 따라 하얀 눈길을 걸으며 시골교회까지 가던 일,
새벽기도와 오전성경공부와 저녁예배 시간에 특별 찬송을 하던 일,
냉방이었던 담임 전도사님의 숙소에서 잠을 못 이루고 뒤척이던 일,  신령과 진정으로 찬양을 하던
동화 속에서와 같은 미니 성가대(남녀8명)의 아름다운 모습 등은 잊을 수 없는 목사님과의 추억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섭리는 오묘한 것이어서 우리교회에서 교사와 학생성가대 지휘자로 봉사하면서
신학교와 음대를 다니던 <베토벤> 김규현 교수가 바로 그 교회 출신 인 것을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야
우연히 알게 되었다.
결국 그는 이재은 목사님의 부흥회에서 받은 은혜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삼청교회 봉사로 보은을 한셈이다.
그는 현재 한국 음악비평가회회장으로 있으면서 음악저널 편집장이고 여러대학에 강의를 나가고
남서울교회 본성가대 지휘자로 있으면서 한국찬송가를 많이 작곡하여 발표하였다.
지금도 아무리 바쁜중이라도 김완호 목사님이나 내가 전화하면 만사를 제쳐놓고 나와서 옛정을 나누곤한다.

생각해보면,
목사님께서는 늘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셨다.
수 십 년이 지난 지금 목사님의 설교말씀 제목들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생활로 보여주신 그 모습들은  어느 설교 말씀보다도 강하게 내 심령에 들려오는 로고스가 되어있다.

66. 감신 4중창단 고흥배 목사님

감신 4중창단 고흥배 목사님
삼청교회의 옛날이야기

1959년 군에 입대하면서 천막교회 주일학교는 정덕용(장로) 혼자서 맡아하게 되었다.
다행히 그는 올갠을 칠줄 알아서 올갠반주를 하면서 아이들을 가르치려니
퍽 능율적(?) 이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로부터 두달 후 논산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치고 나온 나는 깜짝 놀라게 발전한
교회의 모습을 보고 경탄을 금할 수 없었다.

교회학교는 교사들로 꽉 차서 분반 공부를 하고 있었고 신학교에 다니는
웬 날씬한 미남자 하나가 교회학교 부장 겸 성가대 지휘자로 맹활약하고 있었다.

그는 감신 4중창단 멤버인 고흥배(현재 부평 부광감리교회 목사)선생 이었다.
고선생은 우리보다 3~5살 나이가 많으면서도 늘 우리와 함께 어울리면서
청년부, 교회학교, 성가대에서 활동하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때의 일이 아마 목회실습 겸 실습전도사 시무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고선생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웃음이 그치질 않았고 청년부나 교회학교나 성가대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봉사를 하게 만들었다.
그때나 이때나 전원이 청년부회원, 전원이 교사, 전원이 성가대를 하면서
주일날은 아침에 나오면 모두 저녁 밤이 늦어서야 헤어지곤 하였다.
그러면서도 모두들 즐겁게 일할 수 있었던 것은
고선생의 리더쉽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고선생은 27살에 동갑인 지금의 사모님과 결혼하셨는데 집이 먼고로
주일날 일이 늦게 끝나면 청년들과 같이 아무데서나 눈을 붙이곤 했었는데,
한번도 고선생의 얼굴에서 힘들다거나 지친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늘 무슨 일을 하던지 즐겁고 기쁜 모습으로 일을 처리하였다.

고흥배 목사님은 지금 부평에서 제일 크고 감리교회서 몇번째 갈
큰 교회(건평 약2,500평)를 증측중에 있다.
교회가 그렇게 크게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미루어 짐작해 보건데 그분의 중창단 활동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감리교 신학대학에는 학번별 4중창단이 있었는데 고선생이 활동할 때
몇년간은 대학 중창단 콩클대회에서 우승을 도맡아하곤 했다.
대학부의 감신 4중창단은 고등부의 숭실고등학교중창단과 함께
쌍벽을 이루고 있었다.

중창단의 무엇이 고선생을 성공적인 지도자로 만들었을까?

---다른 사람의 소리와 다른 사람의 감정과 다른 사람의 호흡에
내가 조화를 이루어 가는것---

고선생이 계신동안 온 교회가 평안하고 조화를 이루었으며 지금도 만나보면
여전히 함박꽃 웃음으로 우리를 맞이하시면서 입을 열면
금방 무슨 즐거운 소식이 쏟아져 나올 것만 같은 기다림을 갖게하는 목사님이다.

그 때 그 4중창단이 지금 다 생존들하고 계신지 알 수 없으나
그분이 좋아하면서 같이 불러주던 4중창 찬송가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는
늘 웃음이 활짝 핀 고흥배 목사님의 얼굴과 함께 내게 기쁨을 갖어다 주는 찬송가이다.

65. 코메디언 백금녀

코메디언 백금녀
삼청교회의 옛날이야기

살살이 서영춘과 뚱뚱이 백금녀는 유명한 콤비 코메디언이다.

그 백금녀의 집이 교회 가까운 곳에 있어서 그녀의 어머니와 수양아들 최수열이 삼청교회에 다니었다.

어머니는 독실한 신앙을 가지신 분으로 예배에 빠지는 일이 거의 없었으며

늘 딸이 믿음을 갖게되기를 기도하셨다.

한번은 어머니가 따님에게 교회에 같이 가기를 권했다.

[얘, 교회에 같이가자]

[교회에는 왜요?]

[함께 예수를 믿다가 함께 천당에 가자]

[어머니가 신앙이 좋으시니까 난 어머니 천당 가실 때 어머니 발뒤꿈치 붙들고 따라 갈거에요]

[얘, 극장에 들어갈 때 보니까 극장표 1장으로 둘이 못들어 가든구나. 천당도 마찬가지야]



어느 날 크리스마스 새벽송을 끝내고 돌아온 우리들이

지친 몸으로 난로가에서 이얘기저얘기하고 있을 때 백금녀가 들어왔다.

모두 반가히 맞아 들였다.

그녀는 우리에게

[전 부터 교회에 나올려고 생각은 하고 있었에요.

그러나 막상 교회에 나오려니까 그게 쉽지 않더라구요]

[잘 오셨에요]

그녀는 더 이상 말을 않고 교회 한 옆 의자에 앉아 한 없이 기도하고 있었다.

오히려 떠들석하게 농담을 하던 우리가 경건해져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 날 만난 백금녀의 모습은 코메디언도 연예인도 아닌

예수님을 그리워하는 한 여인으로서 교회를 찾아온 것이었다.

우리는 그녀의 고민을 짐작하고 있었다.

남편과 이혼한 후 언니의 아들인 최수열을 아들 삼아 정을 붙이고 새 인생을 설계하고 있는 중이었다.

우리는 가끔 지방공연이나 외국공연으로 집을 비운 그녀의 집에서

최수열과 청년속 예배를 드리며 놀다가 오곤했었다.



우리는 당황했다.

모처럼 교회를 찾아온 그녀에게 어떻게 무슨 말로 얘기를 해주면 좋을까

하나님을 만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안타까운 그녀의 모습을 뒤로한 채

우리는 한사람 두사람 집으로 돌아갔다.

그녀가 교회를 찾은 것은 그게 마지막 이었다.

집을 멀리 이사간 후 어머니는 거동이 불편해지실 때 까지 삼청교회로 예배드리러 나왔는데

그 후 백금녀가 교회에 다닌다는 소식을 듣지 못한 채로 소식이 끊어지고 말았다.



지금도 나는 가끔 교회 구석을 두리번 거린다.

백금녀와 같이 교회를 찾았다가 맥없이 돌아가는 사람은 없는지...

우리가 보기에는 아무리 이상해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그가 만일 하나님께서 삼청교회로 보내주신 사람이라면 어떻게하나?

아니 그가 바로 상수리나무 아래서 아브라함이 만났던 천사이면 어쩌나?

백금녀가 어머니의 소원대로 믿음을 갖고 타계했으면 훨씬 우리들의 마음이 가벼울 터인데.....

64. 한기모 목사님- 한병칠 목사님

한기모 목사님- 한병칠 목사님

2002년 2월 3일 한기모 목사님의 막내 아드님인 한병칠 목사님이 삼청교회를 방문했다
삼청초등학교(지금은 폐교되어 재동초등학교로 통합)를 다닌 한 목사님은 삼청교회가 고향이라고 하였다

지금은 모두 63 ~88세가 된 44년 전의 고향사람들을 만난 한 목사님은 그리움과 감격으로 눈물을 감추지 못하였다
그 때 그 사람들은 옛 날들을 회상하며 함께 눈시울을 붉혔다

한병칠 목사님은 선친이신 한기모 목사님의 숨은 이야기들을 소개했다

친구인 조신일 목사님의 아들 조진걸 씨에게 눈을 하나 빼주어서 세상을 다시 보게 해주려 했으나 수술대에 누워서 검사한 결과 조진걸씨는 각막 이식으로는 눈을 뜰 수가 없어 중단 했던 일

3.1 운동 당시 제암리 학살 사건 이후 아무도 가려하는 이 없는 때 신학교를 졸업하고 첫번 사역지로 제암리교회를 택하였던 일

사후 시신을 연세대 해부학 교재로 기증한 목사님의 유해는 지금도 그 곳 해부학교실의 교재로 보관되고 있다는 이야기

미국유학에 성공하여 프로그램머로 대성하였을 때 아버지의 마지막 헌신을 보고 스스로도 그 고난과 가난의 길인 목회를 선택한 일

큰 아드님 한병일과 함께 사시던 사모님은 98세 되던 해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이야기 등

눈물과 감격의 오후예배 설교를 하였다

지금은 미국 노스 캘로라이나 에서 170명 모이는 답슨 백인 교회와 90 명 모이는 이웃 백인교회 두 곳을 맡아서 목회하는 미국 UMC 소속 목사님이시다
방글라데시 선교준비여행 후 돌아가다가 고향에 들렸다는 한병칠 목사님은 2002년 2월 6일 11시 KAL편으로 임지로 귀임했다

63. 한기모 목사님

한기모 목사님
삼청교회의 옛날이야기

최준호 목사님이 사임하시고 교인들의 뜻대로 이번에는 은혜스러운 목사님으로 천안지방에서 감리사를 지내신 한기모 목사님이 부임하시었다.
늘 인자한 웃음을 웃으시며 많은 가족과 함께 생활을 하시었다.

큰 따님은 결혼하여 군목으로 계신 남편 장기천 목사님(감독회장 역임)과 사택 끝방을 쓰셨으며 둘째 따님 병숙 누님은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를 다니던 미인이었고 큰 아드님 병일이와 둘째 병삼이는 배재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으며 막내 병칠이는 온 가족과 교인들의 사랑을 받는 귀염둥이 이었다.

한목사님은 옛날 분으로는 드물게 나팔을 잘 불으셨다.
부임하시는 날 코넷(트럼펫 보다 작은 나팔)으로 찬송가를 연주하셨는데 참 아름다운 연주를 해주셨다.
그리고 둘째 따님의 특별찬송은 그때까지의 삼청교회 음악을 업그레이드 시키고 말았다.
그 누님 덕에 비로소 발성을 생각하게 되었으며 모든 청년들이 멋있는 성악가의 음악을 흉내내게 되면서 성가대도 발전하게 되었다.
한병일의 베이스는 멋있는 저음으로 성가대에 안정감을 주었으며 누님과 함께 성가대가 처음으로 모양을 제대로 갖추게 되었었다.

가끔 군목으로 계시던 장기천 목사님이 외출나오시면 설교를 해주시곤 했는데 우리는 그때 처음으로 본훼퍼, 니체 등 신학자나 사상가의 이름과 사상을 들으며 뭔가 알듯말듯 아리송해 하면서도 어떤 새로움을 느끼곤하였다.
장기천 목사님은 감리교 신학대학을 1등으로 입학하고 1등으로 졸업했으며 미국유학을 마친 감리교 준재였다.
그러나 교회가 화재를 당했을 때 공부한 노트가 모두 타버려 퍽 애석해했다.
책은 다시 살 수 있으나 노트는 다시 구할 수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 후 목사님의 설교에서 신학자나 신학사상 얘기는 거의 사라졌으나 오히려 설교는 더 은혜로워져서 평동교회를 크게 부흥시켰고 동대문교회에서 사역하시며 감리교 감독회장 까지 하게되신 것은 아이러니컬 하게도 모든 설교자료가 소실 된후 성경과 기도에만 매달린 이유때문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한기모 목사님은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 시신을 기증하시었다.
지금도 목사님의 뼈가 의과대학에 보관되고 있다고한다.
삼청교회를 떠나시고 삼선교회를 거쳐 청량리교회 에서 마지막 목회를 하시었는데 삼선교회 수석장로인 문억 장로는 자기가 고등학교 때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 한 목사님에게서 세례를 받았다고 하면서 삼청교회 이후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막내 한병칠이 목사님이 되었다는 얘기는 들었으나 아직 만나지 못하였고, 사모님은 큰아들 한병일이와 미국 쌘프란시스코에 사시면서 우리 어머님이 그곳을 방문했을 때 크게 반가워 하시면서 삼청교회 근황을 물으셨고 병일이는 친구의 어머니가 오셨다고 어머니를 모시고 나가서 미국식 큰 잔치를 베풀어 준 일이 있었다.
그러나 90을 훨씬 넘기신 사모님이 아직 생존해 계신지 여부는 무심한 죄인 삼청교인은 안부를 모른 채 또 다른 새 봄을 기다리며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62. 임진국 목사님

임진국 목사님
삼청교회의 옛날이야기  

6.25 전쟁중 1.4 후퇴 후 서울이 다시 수복 되면서 오신 목사님이 임진국 목사님이다
6.25 전에 계시던 이하영 목사님과는 반대의 이메지를 가지신 분이다.
이하영 목사님은 깡마른 체구에 머리는 중머리를 면할정도로 짧게 깍으셨고 한복을 즐겨 입으셨는데
임진국 목사님은 늘 정장에 흰테안경을 쓰시고 체구는 넉넉해 보이셨든 분 이시다
인진국 목사님의 아드님이신 임한익 선생님은 청운초등학교음악선생,
boyscout 지도자, 어린이 음악가로 활동하신 분이다.

그 당시 서울에는 임시로 도강증(한강을 건늘 수 있는 허가증)을 받은 사람들만 출입이 허락 되었는데
전쟁의 상황이 유동적이어서 또 후퇴할 일이 생길 때를 위하여
주민의 수를 통제하기 위한 대책이 아니었나 추측된다.
교인은 30명을 넘지 안은 것으로 기억된다.
교회학교 교사회의나 간단한 모ㅎ임을 우리집 안방에서 열곤했는데
임진국 목사님은 예배를 드릴 때나 각종 모임을 시작할 때마다 반드시 부르는 찬송이 있었다.
<이 몸의 소망 무엔가 우리주 예수 뿐일세 우리 주 예수 밖에는 믿을 이 아주 없도다
굳건한 반석 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많은 찬송가 중에 왜 유독 그 찬송만을 부르셨는지 우리는 그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노인 목사님이 곡조를 아는 찬송이 별로 없으셔서 그런가보다고 웃곤 하였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그 찬송은 내가 고난 중에 기도할 때마다
주님의 음성으로 내 심령에 들려지고 있다.
고난중에 인자한 모습으로 내게 오셔서 말씀해 주시는 예수님은
<이 몸의 소망 무엔가 우리 주 예수 뿐일세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를 불러 주신 임진국 목사님의 모습이었다.

고성균 장로님은 임진국 목사님 계실 때 세례를 받았다.
김동성 권사의 막내 삼촌 김명한 선생과 친구사이로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다녔으나
아마 교회를 다니지 않으셨던 엄하신 부모님의 허락이 없어서 세례받는 일이 늦지 안았나 추측해 본다.
겨울 크리스마스 때면 학교 제자들을 행사에 참석케하여 교회가 아이들로 꽉 차고 넘쳤던 일이 기억난다.

노인목사님 이시면서도 새벽송을 꼭 하시었다.
그 연세에 어떻게 견디셨는지 궁금할 정도로 열심이셨다.
그러나 세월이 가고 서울에 사람들이 다 들어오게 되었을 때 교인들은 교회의 발전을 위해서는
젊은 목사님이 오셔야 한다고 하여 후임으로 최준호 목사님이 부임하게 되었다.
임진국 목사님은 삼청교회를 사임하면서 완전히 은퇴를 하시었는데
아드님이신 임한익 선생과 같이 살면서 여생을 보내신다는 말을 전해 들으면서도
돌아가실 때 까지 찾아 뵙지를 못하고 말았다.

그러나 지금도 고난을 위한 기도를 할 때면 신사복차림의 인자한 모습을 하신 임진국 목사님이
<이 몸의 소망 무엔가 우리 주 예수 뿐일세>를
예수님의 모습으로 들려주시곤 한다.

61. 최준호 목사님

최준호 목사님

임진국 목사님이 퇴임하시고 새로 최준호 목사님이 오시는 날이었다.

어머니와 나, 원복선 권사와 이구연 등
몇 사람이 새로 오시는 목사님을 기다리는데
오후 3시쯔음 웬 청년이 가방을 들고 들어 왔다.

"여기가 삼청교회 입니까?"
"녜, 어디서 오셨에요?"
"제가 오늘 부임하는 최준호 목사입니다."

우리는 황급히 일어나 목사님을 맞이하였다.

사모님은 초등학교 선생님이셨으며 돐이 조금 지난 종성이가 있었다.
사모님에게는 친정 동생들이 많았다.
7공주 집이라고들 했는데 목사님의 처제들이 교회에 오면
교회가 꽉 차는 기분이었다.

우리와 같은 또래의 이화여고 다니던 처제와 그 아래로 두명 정도가 자주 왔는데
우리와 성극도 같이하며 학생회 활동도 같이하곤했다.

수원 남양 출신의 최목사님은 젊잖은 미남이셨다.
그러나 달변가는 아니시어서 설교가 늘 부족하다고들 하였다.

그 때 옥인동 살던 한재현 선생이 성가대를 지휘하고
동부 삼청동 홍성배 선생이 주일학교를 맡았으며
청년부와 성가대에는 중동고등학교와 연대 철학과를 다닌 서성태 선생이 있었고
이대 정외과 안병숙 누님과
이구연, 김해성, 안병훈, 최광진, 임재천, 김재형, 송한규
김기숙, 조영자, 홍임선, 홍유선,김희원, 최민자, 원효정, 등이 학생회 멤버였고
교회 주택 끝방에 하숙생이 3명있었는데 그들도 청년회와 학생회에 동참하여서
중고청 합동 회의체인 [삐율라회] 총회 때는 약 60여명이 모였었다.

한동안 교회는 평안하였다.
그런데 박태선 장로와 나운몽 장로등의 부흥회가 시작되면서
각 교회는 자극과 도전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특별한 은혜는 특별한 사람들만의 것이어서
모든 사람들이 같을 수는 없었다.
(후에 박태선 장로는 천부교라는 것을 만들어서 기독교와는 전혀 다른 종교가 되었다.)

최준호 목사님이 퇴임하시고 천안지방 감리사를 지낸 한기모 목사님이 후임으로 부임하시게 되었다.

***서성태 선생은 장로를 거쳐 목회자가 되었으며,
     최준호 목사님은 후에 장로교 목회자가 되시었고,
     최준호 목사님은 부흥강사로 활약하시며 교단장을 역임하시고
     같은 교단에서 활동하시는 서성태 목사님은 최목사님 후임으로
     교단장을 역임하시었다***

60. M.Y.F.서울북지방연합회

M.Y.F.서울북지방연합회
삼청교회의 옛날이야기

1960년에서 1970년까지 10년동안 활발한 연합회 활동이 있었다.
연합회에 주로 참가한 교회는 삼청교회, 계동교회, 자교교회, 종교교회,세검정교회, 중앙교회,
인왕교회, 홍제교회,평동교회, 혜명교회 등 이었다.
활동의 중심은 삼청, 중앙, 세검정, 종교, 자교, 계동 등이었고 여타 교회는 따라오는 정도이었다.

삼청교회 출신 지방연합회 회장으로는 정권모(목사,현 기독교장로회신학연구소 소장), 나,
김득중(목사,현 감리교신학대학교 총장) 등이 역임하였다.

가) 정권모(목사)의 원래 이름은 정덕길이다.
그는 정덕용 장로를 따라서 삼청교회로 나온 진천 출신인데 한국신학대학을 다닐 때
이미 깊은 신학사상에 몰두해 있었으며 신앙과 신학을 얘기할 때는 늘 정색을 하고 항상 진지하게 얘기하였다.
그는 사람을 잘 웃기는 재주가 있어서 전국연합회 주관 수련회(매년 여름 입석캠프장에서 열렸음)
기간중에는 인기를 독차지하곤 하였다.
경향신문과 기독교방송국에서 기자생활을 하면서 한신대학원을 졸업했는데 기독교 방송국 빈방을 빌려
혼혈아를 위한 예배를 시작하면서 기독교장로회 특수목회자로 유명하게 되었고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목포 제일교회 담임목사로 있다가 주모자로 수배되는 바람에
목회를 중단하고 스위스 바젤대학에 유학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는 시도 잘 써서 젊었을 때 청주에서 시화전을 열기도 했었는데 설교를 할 때는 평소와 달리
진지하고 심각한 표정으로 말씀을 전하였다.
삼청교회에서 청년기를 보낸 그의 목회활동이나 가정생활은 독특하다.
항상 의와 불의에 대한 지적이 확실하고 소신껏 일하면서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지금도
시내 어느 큰 교회에 설교를 하러 갔다가도 교회에서 대접하는 점심식사를 사양하고
아내와 둘이서 손붙들고 걸으며 교보삘딩 뒤 간이분식집에서 싸구려 수제비를 사먹곤 한다.

나) 경복고등학교를 1등으로 졸업한 4번타자 야구선수 김득중(목사)
고등학교 동창인 내 사촌 원우현(황숙희 권사의 장남, 현 온누리교회 장로)의 권유로 삼청교회에 나오게 되었는데
삼청교회와 안동교회중 어느 곳으로 정할까하고 망서리고 있을 때
청년들의 심방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 때 우리는 모두 매일 만나다싶이 하면서 지냈는데 우리들 중 누가 주일 날 빠지면 의례
즉시 심방하여 못 나온 이유를 파악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었다.
그는 청와대 넘어가는 길 오른 쪽에 있던 국회 관사에 살았는데 열병으로 주사를 맞으며
힘들게 투병하고 있을 때 문병 온 우리들이 그러케 고마웠다는 것이다.
그 후 그는 삼청교회에 정착하였고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종교학과를 졸업하고
감리교신학대학에 학사편입했으며 미국 뜨루대학에 유학하여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하여
신약학교수로 명성을 얻었으며 특히 그의 복음서 강좌는 지금까지 한국신약학계에서 독보적이다.
감신대를 졸업할 때 졸업논문을 영어로 제출한 최초의 졸업생이기도하다.
경복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할 때 학교와 집에서는 당연히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이나 상과대학
또는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갈 줄로 알고 있었는데 종교학과를 간다고 하니까
학교에서는 실망하고 아버지는 <저 녀석이 교회에 다니더니 미쳤다>고 꾸중을 하셨다고한다.
그러나 40년이 지난 지금 그는 목사와 대학교 총장이 되었으니 학교선생님이나
부모님의 기대에 못지 안는 큰 성취를 한 셈이다.

다) 연합회 활동은 1년에 한번씩 배화여고 배구코트장에서 열리는 배구대회가 있었고
매달 교회를 순회하면서 드리는 연합회 주관 순회헌신예배가 있었다.
배구대회가 있는 날은 모든 교인들이 같이 참가하는 축제의 마당이었다.
이 때는 각 교회가 야외예배 대신 이 날을 야외예배겸 교인들 친목행사로 이용하였는데
당시 지방회 청년부 간사로 있던 이재은 목사님이 각 교회 담임목사님들에게 부탁하여 그렇게 되도록 힘을 써 주시었다.
삼청교회청년부도 몇번 우승을 했었는데 조명래, 안계갑, 심재현 등 배구를 잘하는 진천출신들과
연세대 배구선수이었던 김실(이필연 권사님 차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삼청교회에는 수십명의 청년들이 있었는데 주로 진천 출신들이 주축을 이루었다.
진천출신 들은 정덕용장로가 인도해 왔으니 결국 정장로는 교회 중흥에 큰 이바지를 한셈이다.
저녁 시간 배구대회가 끝나고 시상식에서는 우승팀에게 우승컵이 수여되었는데
각 교회에서는 이것을 퍽 영예스러운 것으로 생각들 하였었다.


라) 서울 북지방 목사님들
청년부간사 담임목사 이재은 목사님, 중앙교회 박용익목사님, 계동교회 차현회목사님,
궁정교회 최요한목사님, 세검정교회 김봉록목사님, 인왕교회 유경식목사님, 평동교회 장기천목사님,
홍제교회 김기동목사님, 자교교회 김광우목사님, 종교교회 서형선부목사님 등은
북지방에 있는 청년들을 위하여서는 마치 공동으로 목회하시는 것처럼 만날 때마다 다정한 충고와
사랑을 아끼지 않으셨다.
지금 종로지방에 있는 60세 전후의 교인들은 다 그 당시 북지방 목사님들이 길러낸 <목양작품들>이다

59. 오후 2시에 부른 X-MAS 새벽송

오후 2시에 부른 X-MAS 새벽송


1951년 1월 4일 <서울>을 포기하고 후퇴한 유엔 연합군은
<평택>을 기준으로 좌우전선을 연결하여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었다.

우리는 <수원>에서 서쪽으로 남하하여 피란을 가게 되었는데
<병점>, <와우리>를 거쳐 <발안장터>를 지날 때에 보니
중공군이 이미 그곳에 도착하여 있었다.

<와우리>에서 한 달간을 중공군점령지에 있던 우리는
<발안장터>로 옮기게 되었는데
<발안장터>는 유엔군과 공산군과의 전쟁터 중간이 되어 있었다.

<발안장터>에서 발이 묶인 우리는 1주일간을 꼼짝 못하고
우당탕거리는 탱크에서 쏘는 포소리를 들으며 지날수 밖에 없었다.

어느날 흰 치마를 어깨에 두른(멀리서 보면 흰 눈과 구분이 잘 안되었다)
공산군 두명이 꽁지가 빠지게 북쪽으로 떠난 반 나절 쯤 후
유엔군의 탱크가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정찰하고 오더니
그 다음날 아침 긴 차량행열이 꼬리를 물면서
북쪽으로 진군하기 시작하였다.

우리가 본 것은 바로
1.4.후퇴 후 다시 유엔군이 반격하는 장면을 본 것 이었다.

우리는 다시 전선에 묶일가봐
얼른 보따리를 짊어지고 올라오는 군 차량행열을 반대로 내려가며
유엔군 지역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할머니께서는 길을 가다 말고 진군하는 유엔군 차량들을 보면서
연신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하면서 절을 하시었다

우리가 피란 간 곳은
셋째 숙모님의 친정인 화성군 우정면 호곡리 버마지란 곳으로
남양을 마주 바라다 보고 있는 <삼기>라는 바닷가 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바닷가에 나가 굴과 조개를 줏어다 먹고
방궤를 잡아다 나문쟁이라고 하는 바닷가 어린 풀과
들에서 달래, 냉이, 맹이를 뜯어다 함께 넣고 국을 끓여 먹었다.

그 곳에 있는 동안 전쟁의 피해는 없었다.
우리는 주일이 되면 그 곳에서 약 십리가 먼 거리에 있는 조암리 장터에 있는
<조암교회>(현재 삼청교회 출신 이종옥 목사 시무)로 예배를 드리러 다녔는데
조암리 입구 언덕바지에 있는 작은 집이 교회 예배처소 이었다.

교회의 간판은 물론 없고 마루에 가루연탄을 진흙에 이겨 넣고 때는 난로를 피워놓고
예배를 드리었다.

교회에는 아이 어른 모두 합쳐서 이십여명이 모ㅎ이었고
목사님 대신 남자 속장님 한 분이 예배를 인도하고 계시었다.

한 삼개월쯤 되었을 때 장로교 장로님 한분이 피난민으로 오시었는데
속장님이 하시던 설교와 장로님이 하시던 설교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우리는 목사님 없이 계속 예배를 드리었는데
한 반년 쯤 되었을 때 목사님을 모시고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그날은 특별히 조암장터의 큰집을 빌려 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인근 각처에 흩어져 있던 교인들이 모두모ㅎ여
그 집 마루는 말할 것도 없고 마당 가득히 교인들이 앉고 서고 하면서
예배를 드리었다.

목사님이 주관하시는 예배가 시작되자 마자
장내는 곧 울음바다가 되었고
예수님의 자녀로
새 힘을 얻고 힘차게 살아갈 것을 다짐하며 예배는 은혜스럽게 끝났다.

그해 여름과 가을이 다가고 겨울이 되었다.
12월이 오고 크리스마스가 되어 서울에서 처럼 새벽송을 돌게 되었다.

그 때 그날은
눈이 오지 않고 비가 왔다.

우리는 우산을 쓰고 새벽송을 돌았다.
사방 십리에 퍼져 있는 교인들 집을 돌며
차도 먹고 밤참을 먹다보니 날이 새었다.

그래도 우리는 새벽송을 계속 다녔다.
결국 마지막 간 집은 새벽송을 인도하시던 여선생님 댁이었는데
피곤하니 그냥들 가자고 하는 것을 우리는 끝까지 다하자고 하면서
대낮에 우산을 쓰고 새벽송을 불렀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주의 부모 앉아서 감사기도 드릴 때
아기 잘도 잔다 아기 잘도 잔다>

새벽송이 끝나고 선생님댁에서 주는 점심을 먹으며
마루에 걸린 괘종시계를 보니 오후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그때의 새벽송이
삼청교회에서 총리공관 새벽송을 마치고
황금색 응접실에서 중국차를 먹으며 지내던 것 보다
훨신 더 아름다운 크리스마스로 기억되고 있다

58. 겨울에 여름이야기

겨울에 여름이야기
삼청교회의 옛날이야기

1950년 3월1일
3.1.절 기념행사가 동대문 운동장에서 있었다.
기념행사가 끝난 후 종로 화신 앞까지 시가행진이 있었는데 3.1.절이라고 하여 <3 .1.="">이 선두에 서게 되었다. 
<3 .1.=""> 중에서도 북부단부(삼청동,팔판동)가 호르라기를 하나씩 입에 물고 
호르라기를 불면서 지휘자의 지휘봉 싸인에 맞추어 제일 선두에서 행진하였다.

머리에는 붉은 글씨로 3.1.정신이라고 쓴 흰띄를 두르고 3.1.운동가들의 고생을 생각하자며
발에는 짚신을 신었다.
대열은 동대문운동장에서 종로 화신백화점 앞까지 이어졌었다.
가슴을 쫙 펴고 행렬의 제일 앞에 섰던 우리는 무슨 이상한 기분과 보람같은 것을 느꼈다.

1949년 여름 나는 동네 아이들과 함께 <3 .1.="">에 입단했다. 
임광남 장로가 교회 큰길 건너편 골목 유명한 복주우물 근처에 살았던 팔판동 토박이이니까
어쩌면 이 일을 혹시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매일 저녁 지금의 총리공관 앞에 있던 구미집에 방 하나를 빌려 쓰던 사무실에 모여서
군가를 배우고 마당에서 제식 교련도 하였다.
가끔 비상나팔을 불면서 비상소집 훈련도 했었다.
1950년 봄이 되면서 소년단 복장이 나온다고 하였다.
그 중 중대장 노릇을 하던 중학생이 하나 입고 왔는데 카키색 유니폼에 색실이 달린
호르라기를 달고 미군이 쓰는 것 같은 <할로모자>(챙없는 모자를 우리는 그러케 불렀다)를
쓴 모습이 퍽 근사해 보였다.
그런데 공짜로 줄줄 알았던 유니폼이 적잖은 돈을 내야한다는 바람에 모두 실망하고 있었다.

그해 여름은 무척 더웠다.
모두들 땀에 절어 옷을 짜서 입을 정도로 더운 여름이었는데 6월 25일 드디어 전쟁이 터졌고
점심은 평양에서 먹고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는다고 큰소리 치던 정부는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가 버린 채 서울은 3일 만에 공산군 세상이 되어 버렸다.
그해 여름, 3.1소년단의 비상나팔은 한 번도 울리지 않았다.
하기야 중대장으로 있던 예비역 소위도 숨어버렸을 때이니까 누가 나팔을 불라고
지시할 사람도 없었다.

곧 <팔판동 인민위원회>가 조직되고 팔판동에서 제일 큰 집에 살던 30대의 젊은이가
위원장에 취임하였다.
그리고 <여성동맹위원장>에는 우리 아래 집에 살던 산파가 취임하였다.
거의 매일 이런 저런 회의가 소집되었고 모든 집회는 금지되었다.

그날부터 삼청교회 예배가 중단되었다.
그 때 할머니(길영숙 권사)께서는 주일이 되면 한복을 깨끗이 갈아입고 전 처럼
성경과 찬송을 들고 예배당에 가시었다.
예배당에 가실 때마다 가족들과 여러차례 싱강이가 벌어졌다.
<집에서 예배드리세요>
<집에서 기도해도 하나님은 다 들으실거에요>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하시면 할머니의 대답은 단호하였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무엇이 나쁘다고 못하게 하는지 모르겠다.
막지마라. 사람이 한번 죽기밖에 더하겠니?>
할머니는 빈 예배당에서 혼자 기도하고 찬송하고 성경읽고 하시면서 한 시간의 예배를
드리고 오곤 하시었다.
우리는 할머니의 찬송소리가 밖으로 들릴까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다리곤 하였다.
어떤때는 교회에서 나오시다가 그들에게 발각된 적이 있었다.
<할머니 지금 뭐하다 나오시오?>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나옵니다>
<할머니 예배를 금지시킨 것 모르시오?>
<압니다. 그러나 나는 예배를 중단 할 수가 없어요>
<할머니! 젊은 사람이 그런 소리를 했으면 벌써 목에 칼들어갔오!!>

더운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
며칠을 우당탕 거리면서 총알과 파편이 쌩쌩거리고 날아다니는 바람에 지하실에
몸을 피해야했던 우리는 중앙청에 태극기가 걸린 것을 보고서야 국군이 입성한 것을 알았다.
그리고 석 달후 1월 4일 우리는 온 가족들이 보따리를 이고지고 피란 길에 올랐다.

5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또 1월4일이 다가온다.
산에서도,들에서도, 얘배당에서도, 기도원에서도 우리는 마음 껏 소리질러 기도 할 수 있고
내 힘껏 재주껏 소리질러 주님을 찬양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걱정이 되는 것은

을 보면서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 때와 입장이 달라진 것은, 내게는 많은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삼청교회 교우들과
많은사랑하는 친구들과 이 땅에서 복받고 살아야 할 아들과 딸과 사위와 손자가 있기 때문이다.
모쪼록 주님의 은혜로 평안한 날들이 우리에게 계속 주어져야 할 터인데....................

57. 웅변대회

웅변대회
삼청교회의 옛날이야기

1950년대 중반 삼청교회 삐율라회(중등부, 고등부, 청년부 연합기관)주관으로 웅변대회가 있었다.
작은 양철지붕의 판자집교회였으나 서울 시내 여러교회에 공문을 보내어 접수를 받은 결과
약 20여교회가 참가하였다.
작은 교회가 어떻게 그런 행사를 주관하였을까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나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 당시 회원들 중에는 중동고를 졸업하고 연대 철학과에 재학중이던
서성태(현재 그리스도교 목사)선배와 사촌 서성국, 후에 아나운서로 이름을 날린
선린상고의 송한규, 서울고의 안병훈(현 조선일보 부사장), 성동고의 이구연, 용산고의 김해성
등이 있었는데 모두 다니는 고등학교에서 웅변으로 일가견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 중 서성태 선배는 박정희시대 공화당 공천으로 국회의원에 출마하여 명연설을 하기도 했었다.
그럴 정도니 교회만 작았지 웅변대회를 주최할만큼 당당한 실력들이 있었다.
물론 1등은 삼청교회출신이었느데 누구였는지 기억이 나지 안는다.
아마도 송한규가 아니었나 추측된다.

연사로 참가했던 이강소(현 도봉교회 장로)선배는 교회에서 제일 인기가 있던 수도여고 출신
조영자 선배와 연애결혼을 하게되었으니 결국 웅변대회가 연분을 맺어 준 셈이었다.

그 때 심사위원으로 오신 분이 있었는데 나중에 총평을 해 주면서 한 사람씩 장단점과
고칠점을 얘기해 주었다.
내게는 그 때 얻은 상식이 직장생활 할 때와 권사로 설교를 하게 될 때 큰 도움이 되었다.

송한규가 아나운서가 되었을 때 일이다.
그는 <이 주일의 노래>란 프로를 맡았었는데 여기서 이주일은 코미디언 이주일이 아니고
매 주일 한 곡씩 방송국에서 선정한 새 노래를 소개하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방송이 시작되면 아나운서가 시그널 뮤직과 함께 <이주일의 노래>란 멘트가 나오는데
송한규는 웅변하듯 인토네이션이 너무 강하여 우리는 그것을 웅변을 하던 습관 때문이라고들 하였다.

그 후로는 웅변을 하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1회로 끝나고 후로는 개최되지 안았다.
그보다 제일 큰 이유는 군사정부시절 말하는 것이 통제되는 사회였으니 누가 웅변을 좋아하드래도
감히 웅변대회를 열자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오늘 날 우리 사회는 토론하면서 생각을 해야할 일이 너무 많다.
서로 자기의 소신과 주장을 펼치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 논리적으로 토론해 보는 것,
그것은 바로 민주주의 연습이 될 것이다.

56. 최광진 Story

최광진 story
삼청교회의 옛날이야기

삼청교회의 역사에 빼노을 수 없는 인물이 최광진이다.
교회학교 유년부장을 오래하였고 교회주보를 원지를 가리방으로 긁어 등사판으로
밀어서 만들 때 오래동안 그 일을 맡았었으며 언제나 우리 모임의 선두에 있었다.
휘문중학교 다닐 때 중등부 회장을 지냈고 고등학교 2학년 때 입산하여
약 1년간 철학 서적을 읽고 하산 하였다.
만화를 잘그려서 만화가로도 활약했으나 교제하는 힘이 부족하여
만화가로 대성하지 못하고 많은 고생을 하였다.
가끔 교회 종탑을 사무실 삼아 몇달씩 칩거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 때는 출품할 만화를 그릴 때 이었다.

그는 신앙토론을 할때는 늘 선두이었고 사상을 얘기할 때에도 늘 독보적 이었다.
그의 영향으로 우리 모두는 소위 철학이라는 단어에 빠져들었다.
우리는 설익은 철학이라는 뜻으로 개똥철학이라고들 하였다.

그는 기도를 잘하였다.
실제로 많은 기도를 하는 것을 보았다.
그의 서모는 집에서 술장사를 했는데 이 것이 싫어서 집보다는
교회에서 생활을 많이 하였다.
책을 몇권 싸들고 교회에 와서 공부를하고 책을 읽다가 교회에서 잠든 그를
쉽게 볼 수 있었다.
교회에 있는 시간이 남보다 많던 그는 교회일을 많이 하였다.
홍성배 선생님처럼 그도 많은 봉사를 하였다.

어떤 때는 장사 잘되게 해달라고 집에서 굿을 했다.
그러면 그는 자기 방에서 큰소리로 찬송가를 불렀다.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데서 맑은 가락이 울려나네
하늘 곡조가 언제나 흘러나와 내 영혼을 고이 싸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그러면 무당이 서모에게 부탁을 한다는 것이다.
저 학생이 찬송가를 불러서 신이 안 내리니 찬송가를 못 부르게 하라고.
그러면 그는 더 크게 부르곤 하였다.
예수 믿는 것을 싫어했던 서모는 예배를 드리고 돌아와서 밥을 먹는 그의 밥상에
신발을 던지며 나무랐다.
그래도 그는 술취한 서모에게 대들지 않고 신발을 밥상에서 내려놓고
그 밥을 다 먹었다.

그는 가정을 선교지로 생각하고 기도를 해왔고 온 가족이 교회를 다니는 우리 집을
매우 부러워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목수였다.
어쩌면 그 친구도 예수님과 같이 복음을 선포하는 일에
전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고행하는 스님처럼 많은 고생을 하였고 중년에 서모와 사랑으로 화해했으며
결혼하여 성남에 살고 있으면서 금자탑 학원의 국민윤리 강사를 했었는데
침뢰교단에서 목사를 하라고 권한다는 얘기를 들은 후
지금까지 근 십년 간 행방을 알 수가 없다.

환진갑이 다 지난 최광진의 찬송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하다.
그가 평생을 사랑하던 찬송가

~~내 맘속에 솟아난 이 평화는 깊이 묻히인 보배로다
나의 보화를 캐내어 가져갈 자 그 누구랴 안심일세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55. 박태선 장로

박태선 장로
삼청교회의 옛날이야기 (삼청교회 청년들을 위한 얘기)

6.25 이후 박태선 장로의 부흥회가 서울 전체를 뒤흔들었다.
남대문교회의 장로로 있던 그는 사업에 실패하고 사경을 헤메던 중
하나님의 은혜로 몸의 피가 다 빠져나가고 하나님의 신령한 피를 받았다고
하면서 설교를 하고 다녔다.

삼청교회에서도 일주일간 부흥회를 하였다.
설교를 하면서 예수를 제대로 믿어야 한다면서 성경책을 들어서
강도상의 책받침을 뚜드리는 바람에 책받침이 다 쪼개지고 말았다.
모두 죄지은 사람의 심정으로 아무소리들 못하고 있었다.
집회가 끝나면 배를 주므르는 안찰을 하였는데 죄가 없는 사람은
배가 물렁물렁하고 배가 딱딱한 사람은 죄가 많아서 그렇다면서
더욱 힘을 주어 주물렀다.
나와 김갑기의 차례가 왔다.
배를 만지니까 간지러워서 배에 힘을 주게 되었다.
그랬더니 더 한참을 주므르는데 웃음을 참느라고 곤역을 치뤘다.
김갑기가 안찰을 받자 물어 봤더니 똑같이 웃음을 참느라고
배에 힘을 많이 주었다고 한다.
<우리는 역시 죄가 많은 사람들인가봐>하면서 웃고 말았다.

그 후 박태선 장로는 신앙촌을 만들었고 후에는 기독교와는 아무 관계없는
천부교를 만들어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하다가 그도 결국 죽고 말았다.
그가 다녀간 후 교회에는 큰 불란이 있었고 그 후유증은 거의 3년이 넘도록
계속 되었다.

나는 지금도 마찬가지로 생각한다.
교회 강도상에는 아무나 서서는 안되고 또 아무나 세워서도 안된다는 확신이다.
왜냐하면 그 곳은 생명수가 흘러나오는 지성소이기 때문이다.

요즘 교회학교에서는 대체로 청년들에게 신비주의를 가르치지 않는다.
그것은 기독교에 기적이 없거나 자신이 없어서가 아니다.
박태선 장로의 경우처럼 잘못에 빠질 우려도 있어서 이지만
그 보다도 청년들에게는 수 십년의 세월이 은사로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꿈꾸는 미래를 위하여 40년 계획을 세워보자
그리고 기도하면서 도전해보자
무엇이 불가능한가
주먹을 쥐면 바위를 부술 것 같고
눈을 감으면 저 1000억 개의 은하계가 있는 광활한 우주를 상상하게 되는
젊음을 은사로 주신 하나님이 얼마나 감사한 분 이신가 ?

54. 홍성배 선생님

홍성배 선생님
삼청교회의 옛날이야기

나의 교회학교 선생님은 배재고등학교를 다니시던 홍성배 선생님이다.
긴 얼굴에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껑충한 키에 쉰 목소리의 홍성배 선생님은
절대로 미남이 될 수 없는 분이다.그러나 교회학교 교사로서의 그분의 열정은
지금까지 거의 그 유래를 볼 수가 없을 정도이다.
삼청교회의 역사를 통틀어 본다면 김완호 선생님(지금은 목사님)정도가
비슷할 정도이다.

그 분은 동부삼청동에 살던 분인데 집은 잘사는 가정이었고
늘 학교가 끝나면 집으로 가는 도중에 교회에 들려 기도를 하고
다음 주에 교회학교에서 사용할 물품들을 준비하셨다.
그분은 특히 성경장면들을 미리 그림으로 그려서 한장씩 보이면서
설교를 하는 시청각 교재를 사용했는데 <가미시바이>라고 하는 것으로
아이들에게 굉장히 인기가 있었다.

내가 중학교에 들어가고 그 분은 청년이 되었을 때 일이었다.
한번은 <교회학교 기>가 필요하다고 했더니 금방 어디서
붉은 공단 2미터 정도를 갖고 오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자기의 혼수용으로 어머님이 귀하게 준비해 노은 것을 죽 찢어가지고 온 것이었다.
모두 어이가 없어 하면서도 교회학교에 대한 그분의 열정을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었다.

하나님의 섭리는 오묘한 것 이어서 홍성배 선생님은 교회에서
제일 아름다웠던 삼청초등학교 정문 근처 경찰관사에 살던 미인과
전격 결혼을 하면서 교인들을 다시 한 번 놀라게 하였고
지금은 모 교회의 목사님으로 훌륭한 목회를 하신다고 듣고 있다.

내가 홍성배 선생님을 생각할 때 마다 늘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은
지금 껏 살아 오면서 그 분만큼 열정적으로 교회에서 봉사를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주일 아침이면 전도를 하기 위하여 두부장사 종을 딸랑딸랑 치면서
앞장 서 가시는 그분을 따라 교가를 부르면서 동네를 한바퀴씩 돌던 일이 생각난다.

~~~한양성의 북악산 밑 삼청주일학교는
천진스런 유년들을 주께 인도하는 곳일세
  영광의 우리구주 우리의 대장이 되시도다
만만세 삼청동 유년 주일학교 만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