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12일 월요일

광화문 네거리 전도

광화문은 경복궁의 정문이므로
원래는 세종로 네거리라고 표현해야 하지만
통상 광화문이라고 하면 세종로 네거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감리교장로회 서울년회 연합회에서
매달 한번씩 감리교본부 건물앞에서 만나
예배를 드리고 노방전도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교보빌딩 앞이 배정되었습니다.

12월 24일 우리들은 싼타모자를 하나씩 쓰고
헤어져 노방전도를 시작하였습니다.

한 30분 지났을 때 중동인으로 보이는
젊은 부부(30전 후)가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
오고 있었습니다.

Merry Christmas!
하면서 전도지를 주어도 본척만척 하였습니다.
나는 전도물을 아기의 유모차에 놓으며
다시
Merry Christmas!
했더니 그는 반사적으로 전도물을 집어서 팽캐쳐 버렸습니다.

나는 그 전도물을 다시 줏으며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 보았습니다.

함께 전도지를 나누어주고 있는 다른 장로님과
『아마 회교도들일 거야
  반사적으로 동뎅이를 치는구먼
  역시 대단한 사람들이야』
말하면서 서로 웃고 있었습니다.

한 참을 가던 그들은 멀지감치서
가던 길을 멈추고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무슨 이상한 기분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나는 즉시 그들을 향하여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Merry Christmas! 하면서 몇번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그도 따라서 손을 흔들며 몇번을 돌아다 보면서
사라져 갔습니다.

전도물을 나누어 주면 받지 않고 거절하는 사람들은 있어도
준 것을 면전에서 동뎅이치는 사람은
평생에 처음 겪는 일이었습니다.

중동인이 사라져간 곳에는
요즈음 새로 지은 주로 외국의 부호들이 묵는
호텔이 있습니다.

아마도 중동의 부자가 그곳에 머물면서
시내 구경을 하고 들어가는 길이었겠지요.

그리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나라가 참 많이 발전하였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만일 그 사람이 살고 있는 나라 수도에서
그런 전도물을 받고 동뎅이 쳤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세계인들에게
평안하게 마음놓고 활보할 수 있는 곳이 되었습니다.

하기야
몇년 전에는
남쪽을 방문한 북한 사람들이
길에서 항의 시위를 하던 외국인을
우리의 면전에서 두들겨 패주어도
우리는 내버려 두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면서 생각해 봅니다.
과연 중동은 물질의 풍요 속에서도
버려지고 있는 지역이구나....

생태적으로 복음을 거절하는 나라가 되었으니
어찌 구원이 있을 수 있을까?

파우스트의 교훈이 생각납니다.
마귀는 가난과 고통으로 닥아오지 않고
부귀와 평안으로 우리를 꾀어
천국을 포기하게 만들어 간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세계의 경제대국으로 발돋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걱정이 됩니다.

우리도 기독교의 중심지였던 구라파처럼
풍요속에 쇠퇴의 길을 걷는 기독교가 되지 않아야 할터인데...

교회의 모든 일이
돈과
돈의 힘으로
돈 때문에
돈에 의하여
잘못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터인데....

그렇게 되면
기름이 많은 것을 신의 축복으로 알고
복음을 거부하고 있는 사람들과
무엇이 다를까?

전도를 하면서
나와 우리들의 교회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
노방전도가 끝난 후
교보빌딩 뒷골목에서 저녁식사를 하러 들어갔더니
그곳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이
싼타크로스가 4명이나 왔다고 환하게 웃으며
반겨주었습니다.
그리고 선물을 달라고 졸라들 대었습니다.

우리는 몇개 남은 사탕을 그분들과 나누며
환하게 웃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역시 우리나라는 참 좋은 나라이구나!
복음을 기쁘게 받아드리고 있는.....


2007.12.27.

온양 백암교회


학교 공부를 하다가 말고
애국자인 양 군에 자원입대하였는데
그 이듬 해에 3.15부정선거가 있었고
4.19때에는 서울에 출동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사단장이 출동을 보류하는 바람에
서울 거리에서 학교 친구들과 맞닥드리는 불쌍사는
면할 수 있었습니다.

1960년 말 제대하고 복학 준비를 하고 있을 때에
사모님이 찾으셔서 교회에 가보니
목사님이 온양에 부흥회를 인도하러 가셨는데
내려와서 찬양을 도와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저는 사모님이 주신 주소를 갖고
기차를 타고 온양역에 내렸습니다.
그곳에는 온양 백암교회 담임 전도사님이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 해 정월에는 눈이 많이 내려서
온 천지가 하얀 색으로 덮여있었습니다.
전도사님과 눈길을 걸으면서 이얘기 저얘기를 나누었습니다.

한 30~40분 걸어 교회에 도착하였습니다.
교회는 작은 시골교회 이었습니다.
그곳에서 강사로 오신 이재은 목사님이 반겨 주셨습니다.

목사님은 설교하기 전
찬양을 하나씩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때에는 월요일 저녁에 개회 예배로 부흥회를 시작하면
토요일 아침 폐회예배로 끝을 맺곤 하였습니다.
수요일 저녁에 도착한 저는
새벽기도를 뺀 나머지 시간 8번의 찬양을 하였습니다.

제가 불렀던 찬양은
내 주를 가까이 하려함은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저 장미꽃 위에 이슬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예수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질 때
등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성가대가 있었습니다.

마루바닥으로 된 예배당에는
모두 방석을 깔고 앉아서 예배를 드리었는데
예배당 강도상 근처 오른 쪽에 의자 두개가 있고
앞줄에는 여자 네 사람, 뒷줄에는 남자 네 사람이 앉아있었습니다.

해군에서 제대한 지 얼마 안된 분이 지휘를 맡으셨는데
화음이 제대로 맞지 않고 박자도 엇갈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의 얼굴에는
하나님을 향한 열정과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경건함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분들의 찬양을 보고 들으면서
천사들의 찬양을 듣는 듯 도취하고 말았습니다.

아!
얼마나 아름답고 신령한 노래인가

저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찬양을 드리었는데
그분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평생을 두고
그 때의 그 아름다운 성가대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 때의 그 신령한 노래를 부르던
거룩한 찬양대를 이야기하곤 하였습니다.

요사이는 교회마다 아름다운 성가대가 있고
웅장한 관현악단이 함께 찬양을 드립니다.

그러나
그 아름답고 멋있는 찬양을 들으면서도
자꾸만 옛날 온양에서 듣던
그 8명의 미니 성가대가 더 경건하고 거룩하게
떠오르곤 합니다.

나 스스로의 편견일 수 있습니다.
과연
하나님께서는 어떤 찬양을 더 기뻐받으셨을까
늘 그것이 궁금할 따름입니다.
.............................................................
금요일 저녁 예배가 끝나고 잠을 자려는데
모두 추워서 잠을 못이루고 있었습니다.

방은 두 칸인데
아래 칸은 아기가 있는 사모님이 주무시고
윗칸에는 강사 목사님과 그 옆에는 강사를 따라온 제가 자고
맨 윗묵에는 담임 전도사님이 주무셨습니다.

자기 전에 군불을 때기는 하였지만
아래칸만 밍큰 할 뿐 윗칸은 냉기만 가신 정도였습니다.
목사님은
어 추워 뭐 좀 없나
하시면서 두리번 거리시더니
그 날 성만찬을 하고 남긴 포도주가 들은 주전자를 집으시고
흔들어 보시더니 남은 포도주를 몇모금 잡수셨습니다.
(그 때는 상점에서 파는 진짜 포도주를 사용했습니다.)

조금 후
으~ 추워 .. 조금 났군~
하시면서 잠이 들으셨습니다.

요즈음은 도저히 이해가 안가는 대목입니다.
교인들이 산에서 나무를 해다가 1주일 분이라고 하면서
부엌 옆에 놓고 가면
전도사님과 사모님은 그것을  7등분하여 밥을 짓고
군불을 때고 살아야 했습니다.

주위에 나무는 많이 있었지만
남의 산에 가서 함부로 가랑잎을 긁어 올수도 없고
남의 산에서 썩어 떨어진 삭쟁이도 함부로 줏어 올수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전도사님이 그것들을 줏어다 땠어도
동네사람들은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겠지만
전도사님은 그것을 지키고 계셨습니다.
........................................................................
저는 온양의 백암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미니 성가대와 함께
추위에 벌벌 떨며 추위를 견디고 목회를 하시던
전도사님이 생각납니다.

목사님이 되신 전도사님은 얼마 후
다른 교회로 옮기시어 목회를 하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불행하게도 그 목사님의 성함을 잊어버렸습니다.
지금 쯔음 은퇴하시고 70대 중반이 지나셨을 터인데
근황을 알 수가 없습니다.

거룩한 예배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할 수 있는 교회
신령한 예배를 드리는 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그 해 겨울
눈길을 걸으며 찾아간
온양 백암교회를 떠올려 보곤 합니다.

2007.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