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24일 일요일

창세기 6장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주님이
들어도 되시는 말을 하고
주님이
보셔도 되는 것을 보며
주님과 함께 가도
괜찮은 곳에만 간다.
노아가 있어서
인류가 계속될 수 있었고
노아가 있어
생명들이 계속될 수 있었다.
주님과 동행한 사람이 있어
인류는 멸망당하지 않았다.

진리와 정의를 따라

진리와 정의를 따라
(요한 1: 5,예레미야 5:1)
2016.1.17.
조환기 목사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새해가 되었다 싶었는데 벌써 3주째를 맞고 있습니다. 
2016년이 쏜살같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새 해가 되면 
새로운 희망 속에 새로운 계획을 세웁니다. 
나는 여러분 각자가 세운 새해의 희망, 새해의 계획이 
아릅답게 이루어지기를 희망합니다. 

특히 우리 교회에 
서광이 비치기 시작하는 원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나는 우리교회의 표어를 생각하며
“진리와 정의를 따라”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행복을 얻기 위해 자기 나름대로 애를 씁니다. 

쟝 칼뱅(J.Calvin)은 사람이 사는 목적을
행복과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했습니다.

행복하기 위해 산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는 말입니다.

행복과 하느님의 영광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행복 없는 하느님(신)의 영광은
 IS처럼 잔인하고 살벌합니다.

하나님의 영광 없는 행복은
타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은
곧 진리를 추구하며, 정의를 실천하며 사는 것입니다.
 
(1) 진리를 따라
성서, 특히 요한복은은 
예수를 진리와 연결하는 곳이 많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5)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 8:31,32)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니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요 18:37)
 
진리가 무엇일까?
어떻게 말로 할 수 있을까?
 
존 롤스는 그의 책 정의론에서 
사상 체계의 제1덕목이 진리이다. 
이론이 아무리 정치하고 간명하다할지라도 
그것이 진리가 아니라면 
배척되거나 수정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세상은 
참과 거짓, 진짜와 가짜가 섞여 있습니다. 
(순복음, 진짜 참기름, 진박, 친박) 
참이 곧 진리입니다. 
참과 거짓은 빛과 어둠으로 상징됩니다. 
완전한 것이 오면 불완전한 것은 사라진다는 
사도 바울의 말씀 같이(고린도전서 13장10절) 
빛이 오면 어둠은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어둠은 진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예수께서 
낯선 여인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예배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이 있다 하더이다(요 4:20)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아버지께 예배하는 자는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영으로 드려야 하고 
하나님이 진리의 근본이시니 
진리로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과 진리의 예배란 

첫째 차별이 없어야 합니다. 
둘째 무지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일찍이 아인슈타인 박사는 
종교 없는 과학은 장님이고 
과학 없는 종교는 절름발이다. 
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M.S.Peck 박사는 
[악의 심리학]에서
 종교적 진리가 없는 과학은 
핵무기 생산에 이르게 되고, 
과학적 지식이 없는 종교는 
1978년의 인민사원 등의 
그릇된 카리스마 운동에 미혹되었다. 
고 역설했습니다. 
(장기천 사람이 되신 하느님이야기 P66)
 
새해 벽두에 실시된 북한의 핵실험은 
우리 사회를 진퇴양난에 빠뜨렸고 
지구촌에 큰 걱정거리를 안겨주었습니다. 

2014년에 발생한 구원파(세월호) 사고는 
우리사회에 큰 불신풍조와 상처를 남겼습니다. 
이 둘은 진리 없는 종교, 과학 없는 종교가 
얼마나 유해한지를 가르쳐주는 큰 교훈입니다.
 
2016년 우리 모두의 삶이 
아무리 고달프고 힘들지라도 
진리를 따라 사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느님께서 영광 받으실 것입니다.
 
(2) 정의를 따라
위의 책에서 존 롤즈는 
“사상 체계의 제1 덕목은 진리라 한다면 
사회제도의 제1 덕목은 정의이다. 

모든 사람은 전체 사회의 복지라는 명목으로도 
유린될 수 없는 정의에 입각한 불가침성을 갖는다. 

그러므로 정의는 
타인들이 갖게 될 보다 큰 선을 위하여 
소수의 자유를 빼앗는 것이 정당화 될 수 없다고 본다."
 
진리가 사상, 곧 참된 생각이라면 
정의는 진리를 실천하는 사회의 제도입니다. 

사람은 허리가 튼튼해야 힘을 쓸 수 있습니다. 
나라도 허리가 튼튼해야 합니다. 

나라의 허리를 중산층이라 합니다. 
나라마다 중산층을 유지하기 위해 
중산층을 두텁게 하는 정책을 세웁니다. 
여러 나라의 중산층을 비교해 봅니다.
 
#한국 (직장인 대상 설문결과)
1. 부채 없는 아파트 30평 이상 소유
2. 월 급여 500만 원 이상
3. 자동차는 2,000 CC급 중형차 소유
4. 예금액 잔고 1억 원 이상 보유
5. 해외여행 1년에 한차례 이상 다닐 것
 
#프랑스(퐁피두 대통령이 Qualite de vie 삶의 질에서 정한)
1. 외국어를 하나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하고
2. 직접 즐기는 스포츠가 있어야 하고
3.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어야 하고
4. 남들과는 다른 맛을 낼 수 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어야 하고
5. 공분에 의연히 참여할 것
6. 약자를 도우며 봉사활동을 꾸준히 할 것
 
#영국의 중산층 기준(옥스퍼드 대학에서 제시한)
1, 페어플레이를 할 것
2. 자신의 주장과 신념을 가질 것
3. 독선적으로 행동하지 말 것
4. 약자를 두둔하고 강자에 대응할 것
5. 불의, 불평, 불법에 의연히 대처할 것
 
#미국의 중산층 기준(공립학교에서 가르치는)
1. 자신의 주장에 떳떳하고
2. 사회적인 약자를 도와야 하며
3. 부정과 불법에 저항하는 것
4. 테이블 위에 정기적으로 받아보는 비평지가 놓여있을 것
 
이를 비교해보면 한국인에게는 없는 것이 있습니다. 
정의감입니다. 
오늘의 본문 예레미야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하나님은 한 사람을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만 있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衆寡不敵(중과부적)이란 말이 있습니다. 
소수로는 다수를 맞설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성서나 역사에는 
한 사람의 위대함을 증언하는 대목이 많습니다. 

한 사람은 숫자적으로는 보잘 것 없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길목에서 
그 한 사람이 결정적인 변수가 되는 것입니다.
 
살고자 하면 필히 죽을 것이고 
또한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니 병법에 이르기를 

한 사람이 길목을 잘 지키면 
천 명의 적도 떨게 할 수 있다
고 하였다. (명량해전의 이순신)
 
노아, 아브라함, 모세는 그 한 사람입니다.
예수는 역사의 길목에서 
역사를 바꾼 한 사람입니다. 

이순신은 조선역사의 존망의 길목에서 
조선을 구해낸 한 사람입니다.
 
동대문교회가 
여기에 다시 재건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감리교인들 에게 조차 
관심이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만일 여기에 
동대문교회가 다시 재건된다면 
그 것은 길목을 잘 지킨 
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많은 사람이 이 산에서 예배하고 
혹은 예루살렘에서 예배할 때 
하나님은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한 사람, 
몸으로 거룩한 제사를 드리는 한 사람, 
곧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 
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진리와 정의를 따라 사는 것이 
2016년 여러분의 모토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창세기 5장

창세기 5장
고대 인간의 수명
아담 930세
셋 912세
에노스 905세
게난 910세
마할랄렐 895세
야렛 962세
에녹 365세 승천
므두셀라 969세
라멕 777세
노아 950세(창세기9장)

창세기 4장

창세기 4장
가인의 후손은 없다
노아 홍수 때
셋의 자손 노아의 직계 가족 외에는
모두 죽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가끔
가인의 후손을 얘기한다.
혈통적으로는 아니지만
기질이 가인을 닮았기 때문이다.
동생 아벨의 제사는 흠향하시고
자기 것을 흠향하지 않으셨다면
동생을 대견하게 생각하고
칭찬해주는 것이 정상이다.
그리고 자기는 잘 반성한 후
내년에 정성을 드려
다시 제사를 준비하면 될 것이다.
동생을 질투하여
때려죽이는 것은
현대적 의식으로 생각해보아도
정상적인 삶의 태도가 아니다.
왜 그랬을까?
선악과의 지혜가 원인이다.
선악을 분별하여
스스로
선한 사람이 되려는 것이 아니라
선과 악을 정의하고
그것을 지혜와 기준으로 삼아
다른 사람을 정죄하려는
교만이 원인이다.
교회나 사회나
세상의 모든 혼란과 다툼은
선과 악을 구분하려는
교만한 자의 입에서 시작된다.
창세기 4장의 가인의 이야기는
그렇게 살면 잘못된 삶이라는 것을
삶의 계명으로 깨우쳐 주시는
말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