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28일 월요일

예수

(2016.11.27.)
조환기 목사
성경 : 시편 139: 1~10, 마태 1:21
오늘은 대림절(Advent, 강림절) 첫 주이다, 대림절은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이다. 어떤 예수를 기다리는 것일까? 예수가 와서 세상을 심판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시편 1:2)
오늘의 본문 시편 139편 그리고 마태복음 1:21 은 유대교 신앙의 핵심,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담고 있다.
(1) 야훼여, 당신께서는 나를 환히 아십니다.(全知全能, 無所不在)
당신 앞을 떠나 어디로 도망치리이까? 하늘에 올라가도 거기에 게시고 지하에 가서 자리를 깔고 누워도 거기에도 계시며, 새벽의 날개 붙잡고 동녘에 가도, 바다 끝 서쪽으로 가서 자리를 잡아 보아도 거기에서도 당신 손은 나를 인도하시고 그 오른 손이 나를 꼭 붙드십니다. 
야곱의 하나님, 요나의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전지전능 무소부재하시다. 이 신앙이 분명하면, 이 신앙이 사람의 중심에 있으면 큰 과오를 범하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다 아신다. 주님은 다 아신다. 그러기에 그분은 위로하고 권면하고 마침내 심판하는 것이다.
사람은 단 한 번 죽게 마련이고 그 뒤에는 심판을 받게 됩니다.” (히브리 9:27)
우리는 지난 주 추수감사절 예배를 드렸다. 추수 감사절의 기원은 1620년 미국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에게서 유래했다. 16세기 종교개혁의 충격이 영국으로 밀려들자 대륙에서처럼 영국에서도 깊은 도덕혁명을 일으키게 되었다.
청교도(Puritan)란 주로 장로교인들 말하는데 그들은 성서와 칼빈주의 노선을 따라 영국에서의 교회 생활의 체제 및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개혁하고자 했다. 교회와 사회 전체 노선들을 관통하는 생활과 태도의 전면적인 개혁윤리였다.
매 시대에는 그 시대의 영웅상이 있었다. 청교도 시대의 영웅은 경건한 사람이다. 경건하다는 것은 일상생활 속에서 전능하신(전지, 무소부재) 하나님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이다. 경건한 사람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완전하심을 그의 삶의 표준으로 삼는다. 경건한 삶이란 곧 의로운 삶이다. 그 의란 공평한 정의 (even-handed)와 인색하지 않은 호의(open-handed)이고 세상은 의를 나타내는 곳, 의를 표현하는 곳이다.
청교도들은 그의 직업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엄격하게 감당함으로써 그가 지상에서 사는 동안 청지기의 사명을 얼마나 잘 감당했는가를 보고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갈 최후의 심판에 대비한다.
 
(2)예수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예수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것이다. 하고 일러 주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이야기이다. 예수라는 이름은 천사로부터 전해진 이름이다.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것이라는 뜻이다. 이 이름은 유대 사람들에게 흔한 이름이었다. 그러나 마리아의 아들 예수만이 그 이름값을 한 것이다.
천지에 있는 이름 중 귀하고 높은 이름. 나시기 전에 지으신 그 이름 예수
(찬송가80)
왜 예수 그 이름이 그토록 귀하고 높은가? 그 이름이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때문이다. 죄는 암이나 병균과 같아서 사람을 파괴하고 마침내 죽음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한 사람에게서 두 사람에게로 점점 퍼져나간다. 어떤 시대 어는 곳에서나 사라마을 불행하게 하고 큰 물의를 일으키고 멸망케하는 배후는 바로 죄이다. 이것은 불변이다. 죄로부터 구원받지 못한 사람, 죄로부터 구원받지 못한 사회는 불행하다.
 
사람이 새로 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나님나라를 볼 수 없다.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요한 3:3,5)
존 웨슬레 목사님은 그리스도의 완전을 강조했다.
그는 먼저 그리스도인의 불완전함을 몇 가지로 열거했다.
1. 지식 2. 실수 3. 결점 4. 유혹 그리스도인의 완전이란 이런 불완전함에서 면제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러면 어떤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은 완전한가?
기독교인의 생활에 있어서도 자연적인 삶에서처럼 여러 단계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 중 어떤 이는 갓 태어난 아기라 해도 하나님께로 태어난 이들은 죄를 범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완전합니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죄를 범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죄를 생각지도 않고 범하지도 않는다는 말이다. 이 얼마나 거룩하고 아름다운 일인가.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을 것이다(14:7)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본 사람이다(14:9)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네가 믿지 않느냐?(14:10)
예수와 하나님이 한분이시다.
이것은 이성이 아니라 믿음이다. 증명하거나 보여줄 수는 없다. 다만 믿을 뿐이다. 그러나 이 믿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죄를 범하지 않는다. 죄에서 구원을 얻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우리의 믿음의 근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만을 바라봅시다. 그분은 장차 누릴 기쁨을 생각하며 부끄러움도 상관하지 않고 십자가의 고통을 견디어 내시고 지금은 하느님의 보좌 오른편에 앉아 계십니다. (히브리 12:2)
예수는 이름과 같이 사셨다. 십자가는 그분의 이름이 완성된 것이다. 이름은 존재의 상징이다. 과연 예수는 아름답게 사신 것이다.
 
(3)한국교회는 민주화의 완성을 위해 몸으로 산 제사를 드려야 한다.
폴 틸리히는 지상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나라의 형상은 민주주의라 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은 고귀한 존재로써 평등한 존재라는 말이다. 평등성이 깨어지면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아래 사람이 있는 불행한 사회제도가 생긴다.
민주화에 역행하는 것은 마침내 사람을 사람답게 예우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을 사람답게 예우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역행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 역행하는 것,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 죄는 거기서 시작되고 그것이 죄이다.
예수는 사람을 죄에서부터 구원하신다. 오늘도 우리는 그 예수가 나에게, 우리에게, 이 나라의 모든 삶속에 찾아오시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이렇게 예수를 기다리는 사람은 죄의 세력과 맞서 싸워야 한다.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위해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며 살아야한다.

2016년 11월 13일 일요일

엘림회 기도문

은혜로우신 하나님
지나간 한 달도 우리를 지켜주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늙어 힘은 없어도
우리는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나안 복지
우리의 삼천리금수강산을 사랑합니다.
 
높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희망을 키워왔고
우리에게 주신 기름진 넓은 들을 바라보며 마음을 넓혀왔습니다.
 
반만년 오랜 세월 생명을 다 해 이 나라를 지켜왔고
대대로 이 땅에서 배우고 일하며 나라를 가꾸어 왔습니다.
 
아직 남북으로 나뉘어 통일을 이루고 살지는 못하지만
한 핏줄인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곧 하나가 되리라 믿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이 시끄럽습니다.
나라의 지도자가 잘못하여 지도자 자격이 없다고 야단들입니다.
 
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시는 하나님
우리에게 바른 길을 보여주시옵소서
 
어떻게 사는 것이 의로운 삶인지
어떻게 사는 것을 하나님이 싫어하시는지
주여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어렸을 때 만난 우리 친구들이 모여
찬송과 기도를 드리며 주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주여 이 예배를 흠향하여 주옵시고
주님께서 홀로 영광 받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를 위하여 대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