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10일 토요일

그날에

하늘 문이 열리고
천사장의 나팔 소리 들릴 때

우리 주님 구름 타고
주님의 자녀들 만나러 오실 때

할렐루야 찬양하며
주님께 달려가리라

눈물의 강 고난의 바다에서
우리를 건져주시는 주님

해와 달이 경배를 하고
하늘의 뭇별들도 춤을 추리라

성도들이 찬양하리라
주님 앞에서 영광의 찬송 부르리라

2016년 11월 28일 월요일

예수

(2016.11.27.)
조환기 목사
성경 : 시편 139: 1~10, 마태 1:21
오늘은 대림절(Advent, 강림절) 첫 주이다, 대림절은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이다. 어떤 예수를 기다리는 것일까? 예수가 와서 세상을 심판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시편 1:2)
오늘의 본문 시편 139편 그리고 마태복음 1:21 은 유대교 신앙의 핵심,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담고 있다.
(1) 야훼여, 당신께서는 나를 환히 아십니다.(全知全能, 無所不在)
당신 앞을 떠나 어디로 도망치리이까? 하늘에 올라가도 거기에 게시고 지하에 가서 자리를 깔고 누워도 거기에도 계시며, 새벽의 날개 붙잡고 동녘에 가도, 바다 끝 서쪽으로 가서 자리를 잡아 보아도 거기에서도 당신 손은 나를 인도하시고 그 오른 손이 나를 꼭 붙드십니다. 
야곱의 하나님, 요나의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전지전능 무소부재하시다. 이 신앙이 분명하면, 이 신앙이 사람의 중심에 있으면 큰 과오를 범하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다 아신다. 주님은 다 아신다. 그러기에 그분은 위로하고 권면하고 마침내 심판하는 것이다.
사람은 단 한 번 죽게 마련이고 그 뒤에는 심판을 받게 됩니다.” (히브리 9:27)
우리는 지난 주 추수감사절 예배를 드렸다. 추수 감사절의 기원은 1620년 미국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에게서 유래했다. 16세기 종교개혁의 충격이 영국으로 밀려들자 대륙에서처럼 영국에서도 깊은 도덕혁명을 일으키게 되었다.
청교도(Puritan)란 주로 장로교인들 말하는데 그들은 성서와 칼빈주의 노선을 따라 영국에서의 교회 생활의 체제 및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개혁하고자 했다. 교회와 사회 전체 노선들을 관통하는 생활과 태도의 전면적인 개혁윤리였다.
매 시대에는 그 시대의 영웅상이 있었다. 청교도 시대의 영웅은 경건한 사람이다. 경건하다는 것은 일상생활 속에서 전능하신(전지, 무소부재) 하나님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이다. 경건한 사람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완전하심을 그의 삶의 표준으로 삼는다. 경건한 삶이란 곧 의로운 삶이다. 그 의란 공평한 정의 (even-handed)와 인색하지 않은 호의(open-handed)이고 세상은 의를 나타내는 곳, 의를 표현하는 곳이다.
청교도들은 그의 직업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엄격하게 감당함으로써 그가 지상에서 사는 동안 청지기의 사명을 얼마나 잘 감당했는가를 보고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갈 최후의 심판에 대비한다.
 
(2)예수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예수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것이다. 하고 일러 주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이야기이다. 예수라는 이름은 천사로부터 전해진 이름이다.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것이라는 뜻이다. 이 이름은 유대 사람들에게 흔한 이름이었다. 그러나 마리아의 아들 예수만이 그 이름값을 한 것이다.
천지에 있는 이름 중 귀하고 높은 이름. 나시기 전에 지으신 그 이름 예수
(찬송가80)
왜 예수 그 이름이 그토록 귀하고 높은가? 그 이름이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때문이다. 죄는 암이나 병균과 같아서 사람을 파괴하고 마침내 죽음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한 사람에게서 두 사람에게로 점점 퍼져나간다. 어떤 시대 어는 곳에서나 사라마을 불행하게 하고 큰 물의를 일으키고 멸망케하는 배후는 바로 죄이다. 이것은 불변이다. 죄로부터 구원받지 못한 사람, 죄로부터 구원받지 못한 사회는 불행하다.
 
사람이 새로 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나님나라를 볼 수 없다.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요한 3:3,5)
존 웨슬레 목사님은 그리스도의 완전을 강조했다.
그는 먼저 그리스도인의 불완전함을 몇 가지로 열거했다.
1. 지식 2. 실수 3. 결점 4. 유혹 그리스도인의 완전이란 이런 불완전함에서 면제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러면 어떤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은 완전한가?
기독교인의 생활에 있어서도 자연적인 삶에서처럼 여러 단계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 중 어떤 이는 갓 태어난 아기라 해도 하나님께로 태어난 이들은 죄를 범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완전합니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죄를 범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죄를 생각지도 않고 범하지도 않는다는 말이다. 이 얼마나 거룩하고 아름다운 일인가.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을 것이다(14:7)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본 사람이다(14:9)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네가 믿지 않느냐?(14:10)
예수와 하나님이 한분이시다.
이것은 이성이 아니라 믿음이다. 증명하거나 보여줄 수는 없다. 다만 믿을 뿐이다. 그러나 이 믿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죄를 범하지 않는다. 죄에서 구원을 얻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우리의 믿음의 근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만을 바라봅시다. 그분은 장차 누릴 기쁨을 생각하며 부끄러움도 상관하지 않고 십자가의 고통을 견디어 내시고 지금은 하느님의 보좌 오른편에 앉아 계십니다. (히브리 12:2)
예수는 이름과 같이 사셨다. 십자가는 그분의 이름이 완성된 것이다. 이름은 존재의 상징이다. 과연 예수는 아름답게 사신 것이다.
 
(3)한국교회는 민주화의 완성을 위해 몸으로 산 제사를 드려야 한다.
폴 틸리히는 지상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나라의 형상은 민주주의라 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은 고귀한 존재로써 평등한 존재라는 말이다. 평등성이 깨어지면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아래 사람이 있는 불행한 사회제도가 생긴다.
민주화에 역행하는 것은 마침내 사람을 사람답게 예우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을 사람답게 예우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역행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 역행하는 것,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 죄는 거기서 시작되고 그것이 죄이다.
예수는 사람을 죄에서부터 구원하신다. 오늘도 우리는 그 예수가 나에게, 우리에게, 이 나라의 모든 삶속에 찾아오시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이렇게 예수를 기다리는 사람은 죄의 세력과 맞서 싸워야 한다.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위해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며 살아야한다.

2016년 11월 13일 일요일

엘림회 기도문

은혜로우신 하나님
지나간 한 달도 우리를 지켜주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늙어 힘은 없어도
우리는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나안 복지
우리의 삼천리금수강산을 사랑합니다.
 
높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희망을 키워왔고
우리에게 주신 기름진 넓은 들을 바라보며 마음을 넓혀왔습니다.
 
반만년 오랜 세월 생명을 다 해 이 나라를 지켜왔고
대대로 이 땅에서 배우고 일하며 나라를 가꾸어 왔습니다.
 
아직 남북으로 나뉘어 통일을 이루고 살지는 못하지만
한 핏줄인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곧 하나가 되리라 믿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이 시끄럽습니다.
나라의 지도자가 잘못하여 지도자 자격이 없다고 야단들입니다.
 
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시는 하나님
우리에게 바른 길을 보여주시옵소서
 
어떻게 사는 것이 의로운 삶인지
어떻게 사는 것을 하나님이 싫어하시는지
주여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어렸을 때 만난 우리 친구들이 모여
찬송과 기도를 드리며 주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주여 이 예배를 흠향하여 주옵시고
주님께서 홀로 영광 받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를 위하여 대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16년 9월 25일 일요일

우리가 믿고 있는 분

제자들 앞에서
무능하게 체포당해 끌려가신 분
(제자들이 얼마나 황당했을까)

모든 사람들이 보는데서
채찍질과 수모를 당하신 분
(정말 모든 능력을 상실했었을까)

사람들에게 잘 보이는 언덕에
십자가에 못박혀 처형당하신 분
(권력자들은 승리의 표시로 반항자들을 죽여 사람들이 잘 보이는 곳에 방치한다)

그러나
사흘만에 다시 사신 분
(하나님만 할 수 있다)

하늘로 승천하시면서
부탁 말씀을 남기셨다
(사명을 마치고 원래 계시던  곳으로 돌아가셨다)

모든 사람들을 제자로 삼고
세상 끝까지 내 증인이 되어라
(제자들의 의무이고 도리이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하나님만 하실 수 있다)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이심을 선포한 것이다)

우리는
얼핏 무능해 보이는
(세상의 안목으로는 그렇게 보인다)

그런 청년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주님의 제자들이다
(믿음이다. 영생의 길이다)

2016년 8월 1일 월요일

신도림역에서

금요일
6.25 피난시절 함께 다니던
초등학교 친구들을  만나러
수원역으로 가는 길에

신도림역에서
환승을 하려고 하는데

길바닥에 좌판을 벌리고
안경을 팔고있는 노인이 있었다.

플라스틱 돋보기가 약한듯하여
철테 돋보기를 살펴보았다.

마음에 드는 게 없어
그냥 일어나서 가려니
노인이 몹시 서운해하는 눈치다.

야, 이녀석아
삼천원 짜리 갖고
뭐 그리 째째하게  구냐
그냥 하나 사지!

내 안에서
누군가 나무래는  소리가  들린다.

다시 돌아가
돋보기를  사려니  반가워한다.

올해 몇이세요?

여든 아홉이에요.

정정하시네요.
그런데 이 더위에 밖에서
어쩌시려고.....

괜찮아요
아직 건강합니다.

돋보기를 사들고 인사를했다.

많이 파세요~

노인은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한다.

힘차게 살아가는 그런 노인을 보면
삶에 용기가 난다.

그날 수원에서
점심 때 만난 네 친구들은
65년의 지난 세월을 무용담 삼아
유쾌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을지로입구역에서

시청역 부근에서
친구와 점심식사를 같이하고

커피숍에서 이야기를 하다가 헤어졌습니다.

귀가 길에 을지로 입구역에 왔을 때
마음 속에 울림이 있었습니다

야, 너만 먹냐?

문득 주변을 살폈더니
쓰레기통에서
먹다버린
음료수가 조금 남은 컵을
찾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내 앞에는
김밥을 파는 가개가 있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김밥 드시겠습니까?" 했더니

"김밥이 어디있어요?"

"이리 오세요"

나는 작은 팩에 넣은 김밥을
그 사람에게 사주고
바로 옆가개에서 음료수를
사려고 했더니

"그냥 천원만 주세요.
내가 알아서 사먹을게요"

그 사람은 김밥과 천원을 받아들고
어디로인지 걸어갔습니다.

얼굴이 잘 생겼습니다.
지성적으로 생긴
50 전 후의 사람입니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나
지금 고난 중에 있는 사람입니다.

전철을 타고 오는데
또 마음에 울림이 있었습니다.

야, 너는 칠천원 짜리 콩국수를 먹고
이천원  짜리 커피를 마시면서
굶주린 사람에게는 겨우
삼천원 짜리 김밥과 돈 천원만 주냐

매일 하나님께
꿈을 이루어달라고
구하는 것도 많은 녀석이....

기도를 하고 잠을 자야겠는데
걱정입니다.

어떻게 기도를 해야할지....

말세의 징조

말세의 징조일까
온 세상이 찜통일세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더워도 추워도 살 수 없는 것을

예수님 재림
이제는
아무도 들으려하지 않는다

오히려 웃으면서
교회문을 나서고 있다

하나씩 다가오고 있는
말세의 징조들

그건 모두
광신도들의  헛소리라고
비웃으면서

아, 정말
뜨거운 여름과 추운 겨울이
내 곁에 와있는데도

2016년 7월 19일 화요일

기도 속 보물섬

옛날처럼 오래된
그 어느날

삼각산 형제봉
기도터에 올라

대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눈을 떠 보아라
무엇이 보이느냐

바쁘게 일하고 있는
개미가 보입니다


무엇이 보이느냐

숲을 이루고 있는
소나무들이 보입니다

그리고 또
무엇이 보이느냐

나무를 오르내리는
청설모가 보입니다

그런데 너는
그것들 보다 불행하냐

내가 이렇게
너를 만나고 있는데도
너는 불행하냐

나는 너를 믿는다
삶의 저 끝에서
너를 기다리고 있다

힘차게 살아가며
뚫고 지나와 보렴

그날 이후
삶의 모든 것이 행복이 되었다

모두
하나님의 뜻과 선물이기에

2016년 6월 12일 일요일

엘림회 기도문


좋으신 하나님
지난 한달 동안도 주님의 사랑과 은혜 가운데
우리를 지켜 주시오니 감사합니다.
봄을 주어 꽃과 나비의 아름다움을 보게 하신 하나님
여름을 주어 우거진 나무들과 숲을 보게 하시오니 감사합니다.
 
어릴 때 만난 우리들이
몸은 늙어 깊어가는 가을처럼 되었으나
마음은 주님 앞에 어린아이 되어
삶속에 꽃을 피우고 사랑의 열매를 맺으려고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어떻게 사는 것이 아름다운 삶인지
원하옵나니 우리들의 삶이
주님 앞에 아름다운 열매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말씀의 사자를 우리 앞에 세우셨아오니
말씀으로 우리에게 계시하여 주옵시고
그 말씀이 우리들 삶에 등대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들의 찬양을 받으시옵소서.
우리들의 예배를 받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를 위하여 대신 죽으신
우리 주님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16.6.11. 
 

2016년 4월 21일 목요일

맨얼굴로 살아가기

나는
내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존재한다.

- Jacques Lacan, 1901~1981 -

우리는 누구나
자신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거나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라캉에 따르면
불행히도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과
실제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은
일치하지 않는다.

전자가 페르소나라면
후자는 맨 얼굴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페르소나를 찢어버리고
맨얼굴이 드러나도록 해야한다.

오직 그럴때에만
우리는 자신의 삶을
연기가 아니라
삶으로서 살아낼 수 있기때문이다.

- 강신주의 철학이 필요한 시간 중에서 -

2016년 3월 10일 목요일

어머니, 할머니

할머니와 어머니를 따라
예배당에 다닐 때
할머니의 언행이
내 믿음의 기준이었다

할머니가 소천하신 후에는
어머니가 교회의 모습이었다

8년 전 오늘 새벽
어머니가 할머니를 따라가신 후
교회의 모습을 되찾고
믿음을 다시 세우기 위하여
애쓰고 있을 때

산소 앞에서
흐느끼고 있는 나에게
따듯한 빛과 정다운 음성으로
나를 위로해 주신 분은

어머니의 모습으로
늘 내 곁에 계셨던 주님이었다

사랑하는 방현아
그 음성 속에 모든 답이 있었다

믿음이란
따듯한 마음으로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었다

2016년 1월 24일 일요일

창세기 6장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주님이
들어도 되시는 말을 하고
주님이
보셔도 되는 것을 보며
주님과 함께 가도
괜찮은 곳에만 간다.
노아가 있어서
인류가 계속될 수 있었고
노아가 있어
생명들이 계속될 수 있었다.
주님과 동행한 사람이 있어
인류는 멸망당하지 않았다.

진리와 정의를 따라

진리와 정의를 따라
(요한 1: 5,예레미야 5:1)
2016.1.17.
조환기 목사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새해가 되었다 싶었는데 벌써 3주째를 맞고 있습니다. 
2016년이 쏜살같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새 해가 되면 
새로운 희망 속에 새로운 계획을 세웁니다. 
나는 여러분 각자가 세운 새해의 희망, 새해의 계획이 
아릅답게 이루어지기를 희망합니다. 

특히 우리 교회에 
서광이 비치기 시작하는 원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나는 우리교회의 표어를 생각하며
“진리와 정의를 따라”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행복을 얻기 위해 자기 나름대로 애를 씁니다. 

쟝 칼뱅(J.Calvin)은 사람이 사는 목적을
행복과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했습니다.

행복하기 위해 산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는 말입니다.

행복과 하느님의 영광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행복 없는 하느님(신)의 영광은
 IS처럼 잔인하고 살벌합니다.

하나님의 영광 없는 행복은
타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은
곧 진리를 추구하며, 정의를 실천하며 사는 것입니다.
 
(1) 진리를 따라
성서, 특히 요한복은은 
예수를 진리와 연결하는 곳이 많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5)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 8:31,32)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니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요 18:37)
 
진리가 무엇일까?
어떻게 말로 할 수 있을까?
 
존 롤스는 그의 책 정의론에서 
사상 체계의 제1덕목이 진리이다. 
이론이 아무리 정치하고 간명하다할지라도 
그것이 진리가 아니라면 
배척되거나 수정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세상은 
참과 거짓, 진짜와 가짜가 섞여 있습니다. 
(순복음, 진짜 참기름, 진박, 친박) 
참이 곧 진리입니다. 
참과 거짓은 빛과 어둠으로 상징됩니다. 
완전한 것이 오면 불완전한 것은 사라진다는 
사도 바울의 말씀 같이(고린도전서 13장10절) 
빛이 오면 어둠은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어둠은 진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예수께서 
낯선 여인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예배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이 있다 하더이다(요 4:20)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아버지께 예배하는 자는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영으로 드려야 하고 
하나님이 진리의 근본이시니 
진리로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과 진리의 예배란 

첫째 차별이 없어야 합니다. 
둘째 무지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일찍이 아인슈타인 박사는 
종교 없는 과학은 장님이고 
과학 없는 종교는 절름발이다. 
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M.S.Peck 박사는 
[악의 심리학]에서
 종교적 진리가 없는 과학은 
핵무기 생산에 이르게 되고, 
과학적 지식이 없는 종교는 
1978년의 인민사원 등의 
그릇된 카리스마 운동에 미혹되었다. 
고 역설했습니다. 
(장기천 사람이 되신 하느님이야기 P66)
 
새해 벽두에 실시된 북한의 핵실험은 
우리 사회를 진퇴양난에 빠뜨렸고 
지구촌에 큰 걱정거리를 안겨주었습니다. 

2014년에 발생한 구원파(세월호) 사고는 
우리사회에 큰 불신풍조와 상처를 남겼습니다. 
이 둘은 진리 없는 종교, 과학 없는 종교가 
얼마나 유해한지를 가르쳐주는 큰 교훈입니다.
 
2016년 우리 모두의 삶이 
아무리 고달프고 힘들지라도 
진리를 따라 사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느님께서 영광 받으실 것입니다.
 
(2) 정의를 따라
위의 책에서 존 롤즈는 
“사상 체계의 제1 덕목은 진리라 한다면 
사회제도의 제1 덕목은 정의이다. 

모든 사람은 전체 사회의 복지라는 명목으로도 
유린될 수 없는 정의에 입각한 불가침성을 갖는다. 

그러므로 정의는 
타인들이 갖게 될 보다 큰 선을 위하여 
소수의 자유를 빼앗는 것이 정당화 될 수 없다고 본다."
 
진리가 사상, 곧 참된 생각이라면 
정의는 진리를 실천하는 사회의 제도입니다. 

사람은 허리가 튼튼해야 힘을 쓸 수 있습니다. 
나라도 허리가 튼튼해야 합니다. 

나라의 허리를 중산층이라 합니다. 
나라마다 중산층을 유지하기 위해 
중산층을 두텁게 하는 정책을 세웁니다. 
여러 나라의 중산층을 비교해 봅니다.
 
#한국 (직장인 대상 설문결과)
1. 부채 없는 아파트 30평 이상 소유
2. 월 급여 500만 원 이상
3. 자동차는 2,000 CC급 중형차 소유
4. 예금액 잔고 1억 원 이상 보유
5. 해외여행 1년에 한차례 이상 다닐 것
 
#프랑스(퐁피두 대통령이 Qualite de vie 삶의 질에서 정한)
1. 외국어를 하나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하고
2. 직접 즐기는 스포츠가 있어야 하고
3.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어야 하고
4. 남들과는 다른 맛을 낼 수 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어야 하고
5. 공분에 의연히 참여할 것
6. 약자를 도우며 봉사활동을 꾸준히 할 것
 
#영국의 중산층 기준(옥스퍼드 대학에서 제시한)
1, 페어플레이를 할 것
2. 자신의 주장과 신념을 가질 것
3. 독선적으로 행동하지 말 것
4. 약자를 두둔하고 강자에 대응할 것
5. 불의, 불평, 불법에 의연히 대처할 것
 
#미국의 중산층 기준(공립학교에서 가르치는)
1. 자신의 주장에 떳떳하고
2. 사회적인 약자를 도와야 하며
3. 부정과 불법에 저항하는 것
4. 테이블 위에 정기적으로 받아보는 비평지가 놓여있을 것
 
이를 비교해보면 한국인에게는 없는 것이 있습니다. 
정의감입니다. 
오늘의 본문 예레미야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하나님은 한 사람을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만 있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衆寡不敵(중과부적)이란 말이 있습니다. 
소수로는 다수를 맞설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성서나 역사에는 
한 사람의 위대함을 증언하는 대목이 많습니다. 

한 사람은 숫자적으로는 보잘 것 없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길목에서 
그 한 사람이 결정적인 변수가 되는 것입니다.
 
살고자 하면 필히 죽을 것이고 
또한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니 병법에 이르기를 

한 사람이 길목을 잘 지키면 
천 명의 적도 떨게 할 수 있다
고 하였다. (명량해전의 이순신)
 
노아, 아브라함, 모세는 그 한 사람입니다.
예수는 역사의 길목에서 
역사를 바꾼 한 사람입니다. 

이순신은 조선역사의 존망의 길목에서 
조선을 구해낸 한 사람입니다.
 
동대문교회가 
여기에 다시 재건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감리교인들 에게 조차 
관심이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만일 여기에 
동대문교회가 다시 재건된다면 
그 것은 길목을 잘 지킨 
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많은 사람이 이 산에서 예배하고 
혹은 예루살렘에서 예배할 때 
하나님은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한 사람, 
몸으로 거룩한 제사를 드리는 한 사람, 
곧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 
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진리와 정의를 따라 사는 것이 
2016년 여러분의 모토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창세기 5장

창세기 5장
고대 인간의 수명
아담 930세
셋 912세
에노스 905세
게난 910세
마할랄렐 895세
야렛 962세
에녹 365세 승천
므두셀라 969세
라멕 777세
노아 950세(창세기9장)

창세기 4장

창세기 4장
가인의 후손은 없다
노아 홍수 때
셋의 자손 노아의 직계 가족 외에는
모두 죽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가끔
가인의 후손을 얘기한다.
혈통적으로는 아니지만
기질이 가인을 닮았기 때문이다.
동생 아벨의 제사는 흠향하시고
자기 것을 흠향하지 않으셨다면
동생을 대견하게 생각하고
칭찬해주는 것이 정상이다.
그리고 자기는 잘 반성한 후
내년에 정성을 드려
다시 제사를 준비하면 될 것이다.
동생을 질투하여
때려죽이는 것은
현대적 의식으로 생각해보아도
정상적인 삶의 태도가 아니다.
왜 그랬을까?
선악과의 지혜가 원인이다.
선악을 분별하여
스스로
선한 사람이 되려는 것이 아니라
선과 악을 정의하고
그것을 지혜와 기준으로 삼아
다른 사람을 정죄하려는
교만이 원인이다.
교회나 사회나
세상의 모든 혼란과 다툼은
선과 악을 구분하려는
교만한 자의 입에서 시작된다.
창세기 4장의 가인의 이야기는
그렇게 살면 잘못된 삶이라는 것을
삶의 계명으로 깨우쳐 주시는
말씀이다.

2016년 1월 21일 목요일

친구의 E-mail

하나님은
부서진 것들을 사용하신다'는
히브리 격언이 있습니다.

단단한 곡식이 부서져야
빵이 됩니다.
포도주도, 향수도
잘게 부서짐을 통하여
만들어 집니다.
단단하고 질긴 음식도
우리의 입 안에서 고르고
잘게 부서져야 소화되어
영양분이 됩니다.

사람도 원숙한 인격과
신앙을 갖추려면 반드시
부서지는 과정을 밟아야 합니다.
부서짐의 size가
성숙의 size이기 때문입니다.

가을이면 시골에서는
도리개질 하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거두어들인 곡식을
앞마당에 펼쳐 놓고
사정없이 도리개로 후려칩니다.

곡식들의 신음소리에도...
(왜, 나만 때려?!)
곡식들의 저항소리에도...
(이제, 그만 좀 때려?!)
농부는 아랑곳 하지 않고
한참을 내려칩니다.

그러나, 사실 알고 보면
아프라고 때림이 아닙니다.
미워서 때림도 아닙니다.
껍데기를 벗겨내기 위함입니다.
알곡과 쭉정이를
가려내기 위함입니다.
더 잘게 부수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농부이신 하나님도
우리에게 
도리개질을 하실 때가 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말이죠.
우리는 너무 아파,
차마 소리도 못 냅니다.
'왜, 나만 때리냐고?'
불평도 합니다.
'이렇게 힘들고 어려워서야
누가 예수를 믿겠느냐고'
투덜대기도 합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도리개질은
멈추지 않습니다.
더 많이 부서지라 하심입니다.
더 많이 깨어지라 하심입니다.
더 많이 죽으라 하심입니다.

도리개질의 강도가
하나님 사랑의 깊이입니다.
왜냐하면, 부서져야 사용하시고,
부셔진 만큼
쓰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건강하세요  윤형선

창세기 3장

무엇이 선한 것이고
무엇이 악한 것인가

그것은
선악과를 먹고 깨달은
지혜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만
정할 수 있는 기준 섭리이다

인간의 수명이
생명나무 과실로 연장될 수 없다

하나님의 방법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다

스스로를 희생하신
거룩한 아가페 사랑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영생의 길을 열어주셨다

창세기 2장

아내가 있는 곳이
에덴동산이다

세상의 근원인 4대강이
에덴동산에서 시작되지 않는가

삶의 내용
행복의 모든 것은

아내와 함께 살고있는
에덴동산이다

아내 때문에
선악과를 먹었을까

행복의 본질을 잊어버리고
지혜로운 자가 되려는

나의
어리석음 때문이었다


창세기 1장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얼마나 
은혜스러운 말씀인가 

이 세상은 
마귀가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섭리하시고 
하나님이 정리하실 것이다 

마귀가
인간을 유혹할 수는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대적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