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오 목사 제공
♡ 내 미소는 나의 명함이다 ♡
미소는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나의 미소는 강력한 유대관계를 맺고
서먹한 얼음을 깨트리고
폭풍우를 잠재우는 힘을 갖고 있다.
나는 이 미소를 끊임없이 활용한다.
나는 늘 제일 먼저
미소 짓는 사람이 되겠다.
내가 그런 선량한 태도를 보여주면
다른 사람도
그것을 따라하게 된다.
어떤 현자는 말했다.
나는 행복하기 때문에
노래부르는 것이 아니라
노래부를 수 있기 때문에 행복하다.
내가 미소 짓기를 선택할 때
나는 내 감정의 주인이 된다.
낙담, 절망, 좌절, 공포는
내 미소 앞에서 다 사라져 버린다.
오늘 나는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을 선택하겠다.
나는 감사하는 마음의 소유자이다.
과거에 나는
어떤 우울한 상황을 만나면
크게 낙담하다가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
신선한 바람이
공기 중의 연기를 말끔히 걷어가듯이
감사하는 마음은 절망의 구름을
순식간에 없애버린다.
나는 남과 비교하지 않겠다.
나는 지금 이 순간 행복한 사람이다.
이런 감사하는 마음에는
절망의 씨앗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하느님은 나에게 많은 선물을 주셨다.
나는 이 선물을 늘
고마운 마음으로 기억하겠다.
과거에 나는 아주 여러 번
거지의 기도를 올렸다.
늘 더 내려달라고 요구했을 뿐
감사하는 마음을 바치지 못했다.
나는 탐욕스럽고,
고마워할 줄 모르고 존경할 줄 모르는
그런 아이 같은 사람이 되지 않겠다.
나는 내 시력, 내 청력, 내 호흡
이 모들 것을
감사하게 받아들인다.
만약 내 인생에서
이것 이상의 축복이 찾아든다면
나는 그 풍성함의 기적에
깊은 감사를 드릴 것이다.
나는 매일 매일을
웃음으로 맞이할 것이다.
나는 내가 만나는 사람마다
미소로 맞이할 것이다.
나는 감사하는 마음의 소유자이다.
오늘 나는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을 선택하겠다.
- 앤디 앤드루스
2018년 8월 15일 수요일
2018년 7월 22일 일요일
김준형 원로목사의 글
[지는 해가 더 아름답다]
누가
황혼이 인생의 끝이 라고 했나?
누가 노년이 인생의
종점이라고 했나?
아직도
뜨거운 가슴이 끓고
못다 이룬 사랑
그리움 되어 머물고 있는데
저녁에 부는 바람이
가슴을 설레이게하고
밤 하늘의 초승달 그 미소가
내 가슴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데.
누가
해 넘어 가는 모습이
인생의 정점과 같다고 했나?
누가 황혼을 수평선 넘어로
작아지는 돋단배 라고했나?
아직도
별빛 쏟아지는
밤 하늘 낭만을 즐기고 있고
거칠어 지는 숨소리는
가슴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데.
누가
황혼을 눈물을 흘리며 바라보는
내 모습 이라고 했나?
아직도
고동소리 우렁찬
가슴이 펄펄끓고 있는데
힘들고 어렵게 걸어 온 길 만큼
갈 길도 아직 많이 남아 있는데.
찬란한 삶을 활화산 처럼 뿌리며
떠 오르는 너도 아름답지만
삶의 끈을 한 아름 품고
웃음 지우며 산 넘는
해가 더 아름답다.
[지는 해가 더 아름답다]
누가
황혼이 인생의 끝이 라고 했나?
누가 노년이 인생의
종점이라고 했나?
아직도
뜨거운 가슴이 끓고
못다 이룬 사랑
그리움 되어 머물고 있는데
저녁에 부는 바람이
가슴을 설레이게하고
밤 하늘의 초승달 그 미소가
내 가슴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데.
누가
해 넘어 가는 모습이
인생의 정점과 같다고 했나?
누가 황혼을 수평선 넘어로
작아지는 돋단배 라고했나?
아직도
별빛 쏟아지는
밤 하늘 낭만을 즐기고 있고
거칠어 지는 숨소리는
가슴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데.
누가
황혼을 눈물을 흘리며 바라보는
내 모습 이라고 했나?
아직도
고동소리 우렁찬
가슴이 펄펄끓고 있는데
힘들고 어렵게 걸어 온 길 만큼
갈 길도 아직 많이 남아 있는데.
찬란한 삶을 활화산 처럼 뿌리며
떠 오르는 너도 아름답지만
삶의 끈을 한 아름 품고
웃음 지우며 산 넘는
해가 더 아름답다.
2018년 7월 11일 수요일
2018년 5월 30일 수요일
Hug
교회에서의 Hug는
용서와 화해와 사랑의 의미로 사용된다.
1980년대 Tres Dias 영성훈련에서 중요 프로그램으로 보급되어 Tres Dias에 참가한 교회 중심으로 기독교적인 표현으로 사용되어왔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교회에서는 그 의미가 많이 퇴색하여 버리고
오히려 교회 밖에서 더 활발하게 사용되는 것을 보고 마음에 그늘이 지는 것을 느낀다.
不俱戴天之怨讐로 지내던
남과 북의 지도자들이 만나 Hug하는 모습에 모두가 박수를 치며 기뻐하고 있다.
교회에서는 왜 저렇게 할수 없을까 서글픈 마음이든다.
교단과 교회들의 많은 泥田鬪狗를 보면서 깊은 반성을 해본다.
우리는 왜
저렇게 할 수 없을까?
용서와 화해와 사랑의 의미로 사용된다.
1980년대 Tres Dias 영성훈련에서 중요 프로그램으로 보급되어 Tres Dias에 참가한 교회 중심으로 기독교적인 표현으로 사용되어왔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교회에서는 그 의미가 많이 퇴색하여 버리고
오히려 교회 밖에서 더 활발하게 사용되는 것을 보고 마음에 그늘이 지는 것을 느낀다.
不俱戴天之怨讐로 지내던
남과 북의 지도자들이 만나 Hug하는 모습에 모두가 박수를 치며 기뻐하고 있다.
교회에서는 왜 저렇게 할수 없을까 서글픈 마음이든다.
교단과 교회들의 많은 泥田鬪狗를 보면서 깊은 반성을 해본다.
우리는 왜
저렇게 할 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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